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래연 May 02. 2024

수호천사는 종종 인간의 옷을 입고 돌아다닌다









눈보라 치는 설원에 나타난 구원의 지팡이


    새해가 시작된 지도 꽤 되었다. 나는 봄을 조금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리며 내심 눈이나 좀 더 내려주었으면 하고 중얼거린다. 겨울마다 나는 헌 양말 깁듯 마음을 만지작거린다. 잘 꿰매어졌는지 가끔 뒤집어가며 남은 날들 역시 살 만할 거라고 스스로를 토닥이곤 한다. 


    하지만 작년의 나는 의기양양하게도 웅대한 피레네 대자연 속으로 갔다. 대학원생 선아 씨는 연수 시절 만만한 소일거리처럼 등산을 다니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고 한다. 그녀는 라케트(테니스 라켓처럼 생긴 눈신발)가 처음에는 너무나 무겁고 불편해서 이런 것을 신고 어떻게 걷나 싶었는데 계속 신고 걷다 보니 그것이 마치 몸의 일부처럼 여겨졌다고 한다. 사실 몸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이례적으로 마음을 잡아끄는 피레네가 아니라면 이런 레포츠가 그다지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경험상 딱 한 번만 해보겠다고 생각했다.





눈신발을 신고 하는 피레네 겨울 등반, 이하 사진들은 가이드 베라나르가 찍은 것들




     생애 처음의 완전한 설산, 락 데스탱Lac d'éstaën에서였다. 피레네 지역 설화에 나오는 곳이다. 이야기에는 아프리카 말리의 소년이 호수 속 궁전에서 요정과 만나는데, 실제 가서 본 이 산 정상의 호수는 흰 눈으로 덮인 백록담 같아서 흡사 그 안에 요정이 살고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완전한 설산은 내 생애 처음이었다. 이때는 파키스탄 친구들이 함께 했다. 그 무리 속에는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가 있었는데 나머지 친구들이 이 친구의 손과 발이 되어 주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달타냥과 삼총사라 불렀다. 벌써 몇 번의 산행을 같이 하는 독일 친구 안나도 있었다. 안나는 다음 날 문학 시험이 있어 돌아오는 차 안에서 빨간 망토나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프랑스의 동화에 대해 암기하고 있었다.









    산에 도착하면 시작 지점에서 그 테니스 라켓 같은 눈신발을 신는다. 설산은 고되다. 거북한 눈신발보다도, 끝없이 이어지는 백색 풍경이 주는 울렁증 때문이다. 희다 못해 푸른빛이 돌기까지 하는 눈.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스틱으로 눈을 찔러보면 안이 파랗다. 눈에는 파란 심장이 있어 푸른 혈맥이 돌아다닌다. 나는 눈 위에 이따금씩 글씨를 쓰고 돼지도 그리면서 하얀 울렁증을 다독여 산꼭대기로 나아갔다. 오르고 나면 이후는 만사 행복이다. 눈 위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고 마시며 스틱으로 눈뭉치를 날려 장난도 친다. 눈 위에 대大자로 눕기도 한다. 




    진짜 각별한 재미는 내려갈 때다. 처음엔 몰랐다. 앞서가던 사람들이 왜 산꼭대기 첫 경사면에서 느닷없이 시야에서 사라지는지를. 그곳에는 피해갈 수 없는 급경사면이 기다리고 있어 여기서는 미끄럼틀 타듯 엉덩이로 쭉 미끄러져야 하는 거였다. 눈을 질끈 감았다. 무섭기는커녕 엄청 신나는 놀이였다. 수직 낙하는 한없이 즐거웠다. 간혹 누군가 무서워해서 망설이면 다른 누군가가 기어올라가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서로 도와 첫 관문을 넘고 나면 또 한동안은 느긋한 내리막길을 걷는다. 나는 미끄러질 만한 곳이 또 없나 살폈고 미끄럼질은 몇 번이고 더 이어졌다.





    이 시즌에는 피레네의 겨울을 만끽하려고 수업을 일주일이나 열흘씩 제치고 아예 스키장에 처박혀 사는 친구들이 반마다 한둘은 있었다. 운동 싫어하는 나마저도 이참에 스키를 배우겠다고 덩달아 친구들을 따라갔는데 이 한 번의 출행은 다소 아찔한 사태로 이어져 처음 한 번이 그대로 마지막이 되고야 말았다. 지금은 이 험난했던 기억을, 느긋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따스한 카페에 앉아 회상하지만, 내 넋은 한때 저 피레네 꼭대기에 매달린 적이 있다.


    스키 인원은 등산 때보다 훨씬 대규모여서 커다란 버스로 이동했다. 내리자마자 스키 신발을 신었는데 이걸 신고 걷는 것부터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키 작은 민지는 13세용 아동용 점프 수트를 사서 입고 나타났다. 


    그래도 오전에는 나쁘지 않았다. 학교에서 이끌어주는 강습은 따라 할 만했다. 오전에는 ‘아나방’en avant(상체를 앞으로 숙인 자세)과 ‘샤스 네주’chasse neige(발 앞을 모으는 제동자세)하고 ‘비라주'virage(회전)등을 배웠다. 낮은 언덕에서 요 몇 가지만 연습하니 뭔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이대로 낮은 땅에서 놀아야 옳았다. 



    그러나 나는 점심식사 후 동행인들을 따라 ‘만만한 경사’로 간주되는 언덕으로 향했다. 그런데 리프트 행로가 하염없이 길어지는 것이 무주의 4배는 족히 넘을 듯했다. 조금씩 코끼리 뜯어먹듯 내려가면 된다고 순진하게 생각하면서도 서서히 불길함이 밀려왔다. 정작 도착한 곳은 블루 피스트. 나를 데려간 자들의 실수였다. 재앙이었다. 그런 급경사에서 ‘아나방'자세 유지 같은 것은 이론에 불과했다. 떼굴떼굴 굴러 내려가고 싶었다. 걷다 미끄러지다를 반복하다보니 그 아마득한 길이가 실감나면서 절망이 찾아들었다. 차라리 기절해버려서 구조당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게다 가장 나쁜 것은 때맞춰 퍼붓는, 평지에서라면 오로지 낭만적이었을,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폭설이었다.


    별 수 없이 세월아 네월아 발이 푹푹 빠지며 걷는데 이 하얀 지옥의 한가운데 어떤 아저씨가 나타났다. 산타클로스처럼 생긴 그는 메독에서 포도경작을 하는 분으로, 수십 년 경력의 스키 달인이어서 모든 행로들을 꿰고 있었다. 그는 나를 조금씩 가르쳐가며 도우려 했지만, 절대로 적응 못할 경사 위에서 사지를 벌벌 떠는 내게 교육은 무리였다. 그다음 단계로 그는 더 나은 길이 있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당장에는 가던 길이 그나마 나아 보여서 일단은 거부했다. 아저씨는 더 나은 길로 사라졌다. 


    처음에는 비교적 완만해 보였던 길이 어느덧 감당할 수 없는 경사의 마성을 드러냈을 즈음 때맞춰 스키 달인이 다시 나타났다. 이젠 투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가 만들어주는 길을 따라 무릎을 붙인 채 횡단했다. 과연 새 길은 초반에만 몇 번의 큰 선회를 요구할 뿐 이후는 곧 거의 평지였다. 마침내 출발 지점이 보였고 나는 완전히 맥이 풀려서 아저씨의 스틱을 두 손으로 붙들고 다리를 브이 자로 벌린 샤스 네주의 자세로 질질 끌리다시피 종착점으로 돌아왔다.








    그 직전까지 악마 같던 눈은 다시 축복의 메시지로 돌변했다. 휴게소 2층에서 뱅쇼를 마시며, 내가 지나온, 여전히 폭설 속에 잠겨 있는 긴 길을 바라보니 완전히 몇십 분 전하고는 딴 세상에 있는 것만 같았다. 따뜻한 음색으로 온몸이 감싸이는 기분이었다. 실제 음악이 흐르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러고 보면 내가 살아온 심리적 경사면들도 저 길보다 덜 험하지는 않았는데 그 길엔 거의 언제나 저런 산타클로스가 나타나 주었었다. 나는 종종 인간의 껍질을 입고 돌아다니는 수호천사를 믿는다. 심지어 이 ‘천사군’에 속하는 인물들은 당번처럼 교대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삶의 회오리 속에 어지러워하면서도 희한하게 삶에 대한 공포를 잊곤 한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휴식은 길지 않았다. 돌아가는 버스에 재빨리 올라타야 했다. 폭설의 경사면을 겨우 벗어난 나를 품고 달리는 버스는 설국의 섬유로 감싸인 누에고치 같았다. 아늑한 버스 속, 우리 일행은 와인 모임을 만들 궁리를 했다. 일행 중에는 앞으로 외놀로그œnologue(와인연구가)가 되려는 꿈을 가진 친구가 있어 그는 르클레르에서, 국내라면 몹시 비쌀 와인이 꽤 괜찮은 가격으로 팔리는 것을 봐두었으니 몇 명이서 갹출하여 굉장한 와인들을 마셔보자고 했다. 바람직한 계획이었다.     







    바로 그 날 저녁, 나의 거처에서 파티를 열었다. 피레네 갔던 멤버들에 더해, 에리나와 가영도 왔다. 나는 또 홍합탕을 준비했다. 

    아뿔싸! 이날 에리나와 가영의 첫 대면은 호의와 예의로 가교를 잇는 보통의 첫 만남 장면이 아니었다. 가영의 매 순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발성은 수더분한 인상과의 콘트라스트로 인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욱 뒤통수 맞은 기분이 들게끔 했다. 나와 한국어로 말할 때는 그럭저럭 공손하던 그녀는, 에리나를 소개해주자 유창함을 넘어 공격적이기까지 한 프랑스어로 질문을 퍼부어댔다. 언어 모드의 전환이 태도의 변화까지 불러오는 현상이었다. 


   “에리나는 영국에서 무슨 공부를 했어?” “거기서는 무슨 일을 했어?” “여긴 왜 온 거야?” “여기 어학원에서는 언제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어?”

    취조라도 하듯이 도발적인 어조로 틈도 주지 않고 계속 물어 부쳤다. 그러더니 누구도 물어본 적 없는 자기의 신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기 온 지는 불과 얼마 되지 않는데 그동안 프랑스어의 진전은 학교에서가 아니라 거의 일을 하면서 얻은 것이다, 생초보에서 불과 1년 만에 중 고급 수준의 프랑스어를 이룩했다 등등.


   그러나 그녀의 자부심에 찬 진술은 사실과 달랐다. 예전에 나탈리 선생님은 그녀가 포에서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이미 프랑스어를 정말 잘 말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저번 모임 때는 스위스에서 이미 한두 학기 강의를 들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옆 사람들은 어이없는 나머지 방관하였고, 에리나도 잘 참고 있었다. 나는 다음 날 에리나의 방으로 찾아갔다. 에리나는 가영의 허풍 때문에 자신의 프랑스어 진전이 형편없는 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다. 가영의 말은 오롯한 진실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이후 델프 시험 결과가 게시되었을 때 그토록 의기양양했던 가영이 몇 안 되는 탈락자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았을 때 별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가영은 처음 만나는 에리나에게 공격적이었을 뿐 아니라 자기와 친한 친구들에게도 그리 상냥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필립이 스페인으로 가게 되었을 때, 필립과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았던 프랑신느는 그들의 관계가 장거리를 극복할 수 있을지 불안해했다. 우리들은 모두 입을 모아 필립이 의리를 지킬 거라고 말해주었는데 프랑신느는 걱정에 가득 차 이렇게 물어왔다. “가영이 그러는데, 필립은 학교에서 볼 때마다 항상 여자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더래, 사실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