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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May 24. 2021

'우리는 서로를 소유하지 않아요'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in 마이아트뮤지엄

We belong to nobody, and nobody belongs to us
우리는 서로를 소유하지 않아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나오는 대사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구에게도 구속되고 또 상처 받기 싫었던 홀리(오드리 헵번 역)가 사랑을 고백하는 폴(조지 페퍼드 역)에게 차갑게 던진 말이다. 달튼이 '영화의 순간들'을 위해 왜 이 대사를 골랐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는 멋지게 차려입은 홀리가 고급스러운 뉴욕의 번화가 어느 상점 쇼윈도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 속에 그 대사를 담았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4월부터 강남의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남미 부에노스아이레스 태생 일러스트레이터 '맥스 달튼'의 전시. 이미 나는  전시를 두 번이나 다녀왔다. 그리고 7월에 전시가 끝나기 전 마지막 세 번째 방문까지 계획 중이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가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무작정 전시회찾아갔던 터에 '맥스 달튼'이란 이름조차 내겐 무척 낯설었다. (오늘 퇴근길 전시 후기를 마무리해야지 생각하면서 또 한 번 맥스 달튼이란 이름을 잊어버린 나를 다시금 자책했다.)


처음 달튼의 전시회 입구를 들어서던 날. 일단 작가보다는 작품들에 집중하자는 마음이었다. 스타워즈, 킹콩, 반지의 제왕, 가위손, 새, 기생충 등 내가 살아온 시간에서 알만한 몇 개의 영화들. 그가 그만의 순간을 담은 작품들을 천천히 지나치며 걸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 눈을 잡아 끈 것이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대사와 뉴욕 거리 한복판에 서서 상점 안을 들여다보는 오드리 헵번의 도도한 모습이었다.

시대를 거슬러 '사랑스러운 여성'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번의 영화 속 모습과 그 대사는 묘하게 어울렸다. 사실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평범한 사랑 영화이지 않을까 생각만 하다 여주인공이 왜 저렇게 시니컬한 대사를 하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영화 리뷰를 다시 찾아보고 여주인공 홀리 캐릭터를 조금 더 알아보싶어 졌다. 권력을 가진 남자들을 통해 신분상승을 꿈꾸는 허영심 가득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가 바로 홀리였다. 키우던 고양이의 이름도 지어주지 않을 정도로 뭔가에 얽매이는 걸 두려워했던 홀리에게 한 그녀를 향한 한 남자의 순수한 마음이 어떻게 비쳤을지 이해가 조금은 되었다.


이런 게 바로 전시회의 매력이 아닐까. 뭔지 모르지만 궁금증을 가지게 만들고. 그래서 평소에는 그냥 무심하게 '그렇겠지' 하면서 지나쳐 버린 것도 다시 찾아보게 만드는 것.


자연스럽게 '달튼이 왜 저 대사를 골랐을까'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 그가 한 인터뷰를  열심히 찾아봤다. 마침 이번 전시 직전에 한국의 어느 잡지사와 진행한 인터뷰가 있었다. (우연히 그날 생일이었던) 인터뷰 진행자를 위해 그가 준비한 케이크 그림달튼의 재치 있는 답변들. 단어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유쾌함과 섬세함이 느껴졌다.


작품은 역시나 작가를 담는 그릇이다. 작품 전반에 녹아든 빈티지한 색감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생동감 넘치는 다양한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 작품은 그냥 달튼 그 자체였다.

비틀즈 '10년'

그럼 그런 성향은 또 어디서 온 것일까? 그의 특별한 출신 배경이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유대계 오스트리아인 아버지와 일본 오키나와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달튼.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남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라고 한다. 덕분에 그는 스페인어, 독일어,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까지 가능하다고 한.

                                                                            


이제 한국 나이로 47세인 이 작가보다 더 '다채로울 수' 있는 인생이 또 있을까. 그림뿐 아니라 기타리스트, 영화 일러스트, 삽화작가, 음악 앨범 디자인 등. 그가 지금까지 뛰어든 분야를 보면 내가 알고 있던 장르적 경계나 형식이 무색해진다. 그저 '세상' 자유로운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두 번째 궁금증도 해결된 것일까. (그 순간은 진심인)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 한 사람에게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를 구속시키는 그런 맹세들. 다양한 인종과 국적과 문화를 태생적으로 품고 자라온 그에게 조금은 답답해 보이지 않았을까.


우리는 서로를 소유할 수 없다,
단지 있는 그대로 바라볼 뿐


오히려 투명한  가운데 두고 무심한 듯 상점 안을 물끄러미 바라보그녀의 모습이 달튼에겐 훨씬 매력적으로 비치지 않았을까. 비록 영화의 실제 결말은 홀리와 폴이 다시 만나며 그 유명한 문리버(MoonRiver)가 잔잔하게 흐르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도 홀리가 브라질로 그냥 혼자 떠났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 순간은 무모한 결정 같아 보여도 다음이 또 궁금해지게 만드는 인생, 조금은 멋지지 않을까.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 대사


전시회 한쪽 자그마한 벽면에 적힌 이 문장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홀리가 티파니 매장 안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의 마음이 바로 이런 것 아니었을까. '티파니 & 코우' 보석상자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모습을 상상하면서 설레는 그 감정.


아직은 열어보지 않은 내 인생의 남은 페이지들은 어떤 이야기일까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 맥스 달튼 전시는 그렇게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게 와서 담겼다.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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