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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Oct 24. 2021

“I am just Me! 난 그냥 나야!”

길모퉁이에서 다시 만난 빨강머리 소녀 앤

“I am just Me! 난 그냥 나야!”

2남 2녀의 셋째. 나에겐 오빠, 언니 그리고 동생이 모두 있다. 어찌 보면 나는 태생부터 애매하게 사이에 낀 사람일지도 모른다. 공부 잘하는 장남 오빠, 귀염둥이 막내 남동생 그리고 동네에서 한 미모 하는 언니까지 두었다. 그에 비해 나는 머리가 썩 좋지도 딱히 자랑할만한 재주도 없었다. 조용하고 수줍음 많았던 나는 어디서나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없던 아이였다.


그에 반해 바로 위 세 살 많은 나의 언니는 타고난 애교와 예쁜 외모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했다. 어릴 때는 그런 언니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구경만 했던 나는 중학생 되자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외모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시작한 것이다. 아침마다 먼지가 끼어 뿌연 작은 손거울 뚫어지게 쳐다보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급기야 용돈을 모아 몰래 화장품을 사서 얼굴 여기저기를 톡톡 두드려가며 가리고 가렸다. 그러고도 모자라 교실에 앉아 하루 종일 수십 번을 손거울을 꺼내보고 또 꺼내봤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언니에게 느꼈던 나의 외모 콤플렉스를 이겨내려 몸부림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모에 그리 집착하면서도 집 밖을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였을까. 그때는 1층에서 엄마가 음식점을 운영하셨고 우리 가족은 가게 2층에 살았다. 화창한 봄날 오후. 엄마가 2층으로 불쑥 올라오시더니 방문을 열며 "OO아 제발 밖에 나가서 좀 놀아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당시 나는 할리퀸 소설에 푹 빠져 있었다.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외모의 여자 주인공이 멋진 남자를 우연히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골인하는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 매번 스토리는 뻔했지만, 여주인공의 머리 색깔은 '칠흑 같은' 검정, '햇살같이 빛나는' 금발, 강물처럼 흐르는' 갈색으로 계속 바뀌었다.


이쁜 언니를 두었기에 시작된 외모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소심한 아이가 꼭꼭 숨었던 곳은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사각형의 할리퀸 소설책이었다. 중학교 때 음식점 건물 2층 어두컴컴한 방 안에 앉아 처음 펼쳤던 할리퀸 소설책은 이후 추리소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그리고 인문학과 철학책으로 점점 다양해져 갔다. 그리고 이제 마흔 살이 넘어 '그 아이'가 직접 쓴 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몇 년 전 나의 사춘기와 유난히 많이 닮은 또 다른 소녀를 만났다!


"이 세상엔 좋아할 것이 이렇게 많다는 게 너무 근사하지 않나요?”

엉뚱, 고집불통, 낭만, 괴짜. 하지만 사랑스러운 주근깨를 가진 한 소녀의 순수함. 정말 세상은 근사한 그 무엇인 걸까?


평범한 수요일 오후. 다른 날보다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나는 퇴근을 서둘렀다. 오늘 누군가를 꽤 오랜만에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퇴근 시간. 발걸음을 재촉해 주차장으로 급히 달려가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다 갑자기 앞 유리가 뿌옇게 보였다. 비다! 파란 하늘, 쨍쨍한 햇볕과 함께 눅눅한 무더위까지 견뎌야 했던 요 며칠. 언제 그랬냐는 듯 너무너무 반가운 비가 내린다.


약속 장소로 향하는 도로 위. 앞 유리의 와이퍼는 '쓱싹쓱싹' 비를 쓸어내리며 경쾌하게 움직인다. 동부간선도로. 오늘도 막힌다. 하지만 웬일인지 짜증스러운 경적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느닷없이 끼어드는 예의 없는 차도 없다. 유리를 통해 보이는 바깥세상은 특별할 것이 없는 회색빛의 '빌딩 숲'이다. 하지만 그 순간 평소와는 다른 낯선 느낌이 든다. 궁금했다. 뭐지? 도로는 여전히 막히고 비까지 내린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먼 여행지를 떠나는 사람처럼 편하고 심지어 느긋하기까지 하다.


내 기억 속 그 소녀의 엉뚱함과 당돌함에 비하면 정체되는 도로는 그냥 귀엽게 봐줄 수 있는 뭐 그런 마음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유독 많았던 도로 위 여정의 끝에 전시회가 열리는 건물이 드디어 보인다. 비를 머금어 더욱 짙어진 녹색의 '서울숲' 속 갤러리아 포레. 그 건물 지하 1층. 소녀가 나를 기다리는 공간이다. 아주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불타는 듯 진한 빨강 머리는 여전하다. 그리고 내 기억 속 모습보다 조금은 더 성숙한 느낌이다. 세월이 지났으니 그 소녀도 자랐겠지. 이렇게 내가 나이를 먹은 것처럼.


앤 셜리. 지금 그냥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떨린다. 사실 <내 이름은 빨강머리 앤> 전시를 가기 전만 해도 이렇게까지 이 소녀를 좋아했다고 느끼진 않았다. 전시회 입구 양 갈래로 땋은 앤을 본 순간. 내 마음은 벌써 그 아이를 처음 만났던 그때의 동심. 그 시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앤 셜리를 본 것일까 아니면 어린 내 모습을 본 것일까. 그만큼 반가웠다. 마음 한편 어릴 적 꽤나 동경했던 그 소녀를 나는 몹시도 그리워하고 있었다.


“앤, 잘 지냈니? 넌 여전히 사랑스러운 말괄량이 소녀구나. 그리웠어. 많이...”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고아, 그게 제 운명인 줄로만 알았죠. 고아가 된 저는 이곳저곳을 전전했어요. 토마스 아주머니의 집에서는 저보다 어린아이 넷을 보살폈죠... 그다음 해먼드 아주머니 댁에는 아이가 여덟 명이고, 쌍둥이가 세 쌍이나 됐답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아빠를 모두 잃어버린 아이. 그 이후 이 아이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숙명처럼 세상에 혼자 버려진 앤에게 다른 아이들은 같이 뛰어놀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돌봐야 하는 절박함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절망감으로 견뎌내던 그 어린 소녀는 우연히 매튜와 마릴라 남매의 집에 입양된다. 매튜 아저씨와 함께 처음으로 초록 지붕 집으로 가는 길. 둘을 태운 마차는 하얀 꽃눈이 내리는 가로수길을 지나고 있다.


태어나서 세상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했던 소녀가 드디어 '누군가의 앤'이라는 소속을 갖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했을까. 소녀에게 세상은 더 이상 절박한 그 무엇이 아니었다. 그 절망감에 가려져 있었던 진짜 세상의 눈부신 것들이 이제 소녀의 눈앞에 활짝 펼쳐진 것 아닐까?


눈부신 것들에겐 아름다운 이름이 필요해!

"정원, 과수원, 시냇물, 그리고 숲. 이 정겨운 커다란 세상 모두가 멋져요. 오늘 아침 같은 날은 살아 있다는 게 그저 기쁘지 않으세요? 하지만 그렇게 멋진 장소를 가로수 길이라고 해선 안 돼요. 그런 식의 이름에는 아무 뜻도 없으니까요. 잠깐만요, 이렇게 불러야 해요. 기쁨의 하얀 길."


이상야릇한 통증을 느껴본 적이 있으세요? 아주 기분 좋은 짜릿한 통증이요. 고상하게 아름다운 걸 볼 때면 전 늘 그래요. 에이번리에 처음으로 온 날도 그랬죠. 매튜 아저씨랑 '기쁨의 하 길'을 처음으로 지나던 순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이 장면에서 <빨강머리 앤>의 저자 루시 몽고메리가 왜 앤을 공상을 좋아하는 소녀 캐릭터로 만들어 냈는지 이해가 되었다. 루시 자신도 두 살 때 엄마를 먼저 하늘로 보내고 아버지의 재혼으로 앤처럼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니는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루시 몽고메리는 지옥 같은 현실을 살면서도 공상과 순수함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앤에게 기적처럼 마릴라 아줌마와 매튜 아저씨라는 따뜻한 가족을 선물한다. 그리고 하얀 꽃눈이 내리는 길을 '기쁨의 하얀 길'이란 이름으로 불러줄 수 있었던 앤이 가진 낭만적 감성은 선물에 딸린 옵션이랄까.


무엇보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저자 자신에게 따뜻한 가족이란 테두리와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마음은 그 누구보다 절실한 의미를 갖지 않았을까.

<빨강머리 앤 ; Anne of Green Gables> 저자 '루시 모드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 1874~1942).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 클리프턴(현재 지명은 '뉴런던') 태생.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의 재혼으로 새로운 곳으로 이사. 대학에서 문학 공부, 교사 생활. 자신의 어린 시절 담은 앤의 이야기를 서른 살, 1904년에 썼지만,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한다. 결국 2년을 다락방에서 묵히다가 1908년 미국의 한 출판사에서 출간되면서 대성공을 거둠. 이후 30여 년간 대표적인 캐나다 여류 작가로 활동.


사랑하는 가족, 매튜와 마릴라

앤에게 엄하지만 강한 여성상을 가르쳐준 마릴라 아줌마, 그리고 앤의 덤벙거림과 엉뚱함까지도 말없이 지지해 주고 또 사랑해 준 매튜 아저씨. 세상 그 누구보다 앤을 있는 그대로 봐주었던 두 사람의 존재는 그 소녀가 성장하는 동안 '타고난 그녀 다움'을 유지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네 모든 낭만을 포기하지는 말아라, 앤. 조금은 낭만적인 게 좋아. 물론 너무 지나치지 않다면 말이야. 조금은 간직하도록 해라, 앤. 조금은 말이야."


"매튜 아저씨는 저를 이해하세요. 첫눈에 알았죠, 우리가 마음일 통할 거라는 걸요."


마릴라는 부드럽게 아른거리는 난롯불과 그림자 아래서 다정한 눈을 앤을 바라보았다. 조금이라도 더 밝았다면 절대 드러나지 않을 표정이었다. 마릴라는 사랑을 말이나 표정으로 쉽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렇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아도 마음속 깊이 이 말라깽이 잿빛 눈의 소녀를 더욱 깊고 강한 애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초록 지붕 아래 포근한 가족의 테두리에서 그렇게 앤은 자기다움을 지켜내면서 누구보다 주체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빨강머리 앤>이 살았던 1900년대 초 캐나다는 뒤늦은 산업화의 영향으로 많은 것들이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여전히 여성은 여전히 투표권을 갖지 못했고 관공서에서 일을 할 수도 없었다. 집이라는 공간과 가족이라는 관계의 테두리에 갇힌 여자들. 당시 사회는 여성에게 아이를 낳고 돌보는 존재 그 이상을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앤에게 매튜와 마릴라와 함께 살고 있던 초록 지붕 집의 의미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구속이나 속박이 결코 아니었다.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편견과 싸우다가 잠시 투정도 부리고 쉴 수 있는 안식처였다. 얼마나 소중했을까. 그렇게 앤에게 두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고아라는 가혹함을 선사했던 세상 속에서 그녀가 의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앤의 빨강머리

"제 머리를 가지고 비웃지만 않으면 괜찮아요. 제 머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면 화가 폭발해버리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앤의 빨강머리가 주는 의미는 무척 특별하다. 서양인의 1~2%만 가진다는 빨강머리 사람에 대한 사회적 편견. 거기에 여성이라는 또 다른 프레임이 더해지면서 순간순간 폭발할 수밖에 없었던 깡마른 소녀의 절규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세계 인구의 1~2%를 차지하는 '빨강머리(red hair 또는 ginger hair)에 대한 서양에서의 편견과 이에 따른 콤플렉스는 상당하다. 빨강머리는 불같은 성격, 신랄한 말을 많이 하고 열정적이고 남들보다 생기가 넘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초등학교 시절, 작은 TV 화면 속에서 마릴라 아줌마에게 때론 길버트에게 소리를 꽥 지르는 말라깽이 소녀에게 왜 그리 눈길이 갔는지 그때는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소녀는 다시금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천방지축 뛰어다니면서 늘 자신을 표현하려 애썼던 앤은 내가 보고 싶었던 진짜 내 모습 아니었을까. 앤은 창피함을 무릅쓰고 그냥 소리 지르고 저질렀지만 사춘기의 나는 그러질 못했기에 더 끌리는 '통쾌함' 뭐 그런 거?


내 기억 속 <빨강머리 앤>의 결말은 조금은 의아한 것이었다. 당시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이야기에 익숙했던 나. 왕자 덕분이든 스스로 했든 어쨌든 반전을 일으키는 주인공의 멋진 결말을 기대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앤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초록 지붕으로 다시 돌아온다. 시력을 잃어가는 마릴라 아줌마와 함께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전시회의 마지막 장은 그렇게 앞을 알 수 없는 막다른 '길 모퉁이'를 선택한 앤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앤 셜리. 그녀는 결국 당시 시대가 새롭게 요구하던 진취적이고 깨어있는 여성이길 포기한 걸까. 이번 전시의 기획자는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앤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주체적인 선택을 한 것. 새로운 미래를 스스로 설계한 것.' 제가 아끼는 소중한 것들을 위해 꿈의 방향을 조금 바꾸는 것도 아주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제 삶은 제 스스로 결정하는 거니까요. 이름 끝에 'e'를 붙이기로 했던 것처럼요.


우리가 마주치는 인생의 수많은 길 모퉁이들. 

그 선택 하나하나 다음 길이 어떤 모습일지 예측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의 삶은 가혹하리만치 바로 앞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시공간이다. 이 빨강머리 소녀가 마지막에 선택한 초록지붕 집에서의 삶. 앤에게는 그토록 원했던 대학에서의 공부보다 그 집이 가진 안식이 더 소중했던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내면 깊숙한 자신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던 것 아닐까.


결국 보이지 않는 '세상의 근사함'을 이미 깨달은 한 소녀가 그냥 '그녀답게' 선택한 것뿐이었다.

언제나 삶은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뜻밖의 방향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그런 순간마다 화내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저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듯이 더 좋은 것을 기대하는 마음. 앤의 그 마음을 닮아, 앞으로 우리 앞에 주어질 삶의 모퉁이들을 반갑게 맞이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앤 셜리. 나의 사랑스러운 말라깽이 주근깨 소녀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I am just Me! 난 그냥 나야!




"엄마, 여기 한번 봐줘요"

"어디?"

"여기요, 여기. 없앨 수 있는지 같이 병원 한번 가봐요"

며칠 전, 이제 곧 중학생이 되는 아이가 자기 얼굴을 봐달라며 내 방으로 불쑥 들어왔다. 남자아이라서 크면서 한 번도 자신의 외모에 이러쿵저러쿵 언급한 적이 없었기에 나의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들고 있던 펜을 놓고 얼굴을 들어 아이의 눈을 바라봤다. 진심으로 자신의 외모에 대해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갑자기 어릴 적 교실에 앉아 손에서 거울을 거의 놓지 않았던 중학교 때 내 모습이 떠올라서 속으론 '쿡'하고 웃음이 났다. 동시에 이 아이에게 다가올 사춘기는 어떤 것들로 채워질까. 엄마인 내가 어느 정도까지 관여해야 맞는 것일까 잠깐 혼란스러운 감정이었지만 난 내 방식대로, 아이는 아이 방식대로 그렇게 각자의 사춘기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

"그래 한번 가보자. 그리고 결정은 네가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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