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지 Jun 06. 2019

안녕 '그린 치킨'

하이메 아욘, Serious Fun in 대림미술관

Anything you look at can be the starting of an idea. You just need to look properly.
주변의 모든 것이 아이디어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저 제대로 관찰하면 되는 거죠


전시회의 시작과 끝은 과연 어디일까?

내가 전시회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일까. 아니면 미술관 입구? 혹은 미술관 입구를 지나 해당 전시장의 입구나 출구의 푯말 그 바로 앞에서부터일까? 사람마다 그 정의가 전부 다르지 않을까. 전시회의 출발과 끝을 바라보는  관점의 정의. 전시회 하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무척 새삼스러운 하루를 회상한다. 미술관. 그 공간에 머문 시간은 고작 2시간이었다. 하지하루가 지난 지금까지 그 공간이 내게 준 감성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무엇이 나를 아직도 전시회에 붙들어 두고 있는 걸까? 아직 끝나지 않은 '하이메 아욘, Serious Fun' 전시회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평일 오후. 늦은 봄이 주는 햇살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진다. 서울 구도심 통의동에 위치한 대림미술관. 한남동의 '뮤지엄'과는 또 다른 느낌의 공간이다. 그리고 미술관 '옆집'의 친절한 안내문구가 적힌 담장을 마주한다. 담장 너머 이웃한 누군가의 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좁은 동네 골목길에서 나는 잠시 멈췄다. 낡았지만 익숙한 풍경이 주는 정겨움이 미술관 주위를 차분하게 감싸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들어선 미술관 건물 입구도 조금은 남다르다. 입구와 출구가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1층의 한쪽은 입구, 반대쪽은 출구였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을 기념품숍, 화장실, 스티커사진, 사물함 등 부대시설로 채웠다. 그래서 처음 들어섰을 때 조금은 정신이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잠시 헤매다 보면 2층 계단으로 올라가라는 방향표시가 보인다. 많아야 20개 남짓의 계단을 하나씩 오르며 조금은 복잡한 마음을 추스른다. 동시에 나를 기다리는 위층 '공간'에 대한 설렘도 함께 오르기 시작한다.


Jaime Hayon 하이메 아욘(1974년생~, 스페인 태생). 사실 나는 그를 설치 예술가 정도로만 생각했다. 더욱이 놀이동산에나 있을법한 목마 비슷한 '녹색 '을 탄 우스꽝스러운 그의 사진. 이것만으로도 내게 그는 도대체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렇게 미술관 2층, 유쾌함 가득 한 그의 상상력의 세상으로 나는 들어선다.


안녕?
나는 그린 치킨이야.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우리도 만들어진 이유와 사정이 있지. 내 친구들의 이야기 한 번 들어볼래?


전시관 입구에서 나를 정중하게 맞이하는 그린치킨. 이 닭을 보자마자 얼마 전 다녀온 예술의 전당 'M. Chat 토마 뷔유'의 긍정 고양이들이 바로 떠올랐다. '아니 이 치킨은 왜 여기 있지?' 닭의 친구들이면 개, 고양이, 염소 등등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가축들을 말하는 건가? 조금은 무모한 나의 상상은 그 짧은 순간에도 어김없이 튀어나온다. 


그렇게 들어 선 전시 공간에서 맞닥뜨린 그의 첫 번째 친구들. 당연히 나의 예상을 아주 과감? 하게 벗어난다. 바로 Crystal Candy Set. 열대과일들을 모티브로 한 크리스털 작품이었다. 그리고 다음 공간 의외의 친구들. 7개의 유리 화병들이다. '아프리칸도 가족의 사연 Modern Circus & Tribes'.


아프리카 전통 마스크와 의복 등 장식 미술에서 영감을 얻어 베네치아 유리 공예 전문 브랜드 '나손 모레타'와 협업하여 만들어 낸 작품들이었다. 노란색 벽면을 바탕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색의 화병들이 오묘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반대편 벽면 유리벽 너머 서커스를 연상시키는 형형색색의 또 다른 오브제들이 똘망똘망, 올망졸망 자리를 잡고 나를 맞이한다. 그렇게 한층씩 올라갈 때마다 그린치킨의 오브제 친구들이 모양만큼 다양한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메 이욘, 그는 바로 오브제*를 주로 대상으로 하는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이다.

* 오브제(프랑스어: Objet)는 프랑스어 'Objet'에서 온 말로, 예술 용어, 철학용어로 쓰임. 작품에 쓴 일상생활 용품이나 자연물 또는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하여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를 이르는 말이다. (출처:구글 검색)


한때 그는 패션 브랜드 베네통의 디자이너 이기도 했다. '그린치킨'의 선명녹색이 주는 친숙함이 도대체 어디서 왔나 했더니 바로 그가 초창기 몸 담았던 베네통이었다. 그는 현재 스페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터로 평가받고 있다. 더욱이 유럽과 북미의 수많은 브랜드들과 예술과 디자인, 그리고 첨단 기술과연계를 통해 예술의 무한한 확장성을 전 세계에게 증명하고 있다. 평범한 사물은 그의 손길을 통해 '특별한 의미와 스토리'를 담게 된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로 다시 태어나 세상 사람들과 교감다.

I think we're all a little bit like cooks at the end. We just use the ingredients and just create something quite special about it.
저는 우리 모두가 결국 요리사와 같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늘 주변에 있는 재료로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잖아요.


그의 전시공간 중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공간, '가구가 반짝이는 푸른 밤 Funiture Galaxy'. 바로 고전미와 현대적 디자인의 세련미를 절묘하게 조합한 그의 '의자들'이 있는 곳이다. 이 예술가의 호기심과 의외성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 인 걸까? 이런 나의 고민은 나름의 기능, 의미  그리고 이야기담은 흰색의 의자들이 고요하게 떠다니는 푸른 밤하늘의 공간 속에서 더욱 깊어기지만 한다. 더욱이 이 작품들은 덴마크 프리츠 한센, 스페인 BD 바르셀로나 디자인, 이탈리아 마지스 등 수많은 하이엔드 브랜드들과 그가 협업한 결과물이다.



예술에서 타 분야와의 협업이 갖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요즘 예술가들은 본인의 재능뿐만 아니라 그 재능을 더 확장하고 성장시킬 수 있다면 그 누구와도 협력이 가능한 '포용성'까지 갖춘 듯하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예술가의 모습은 이랬다. 기본적으로 늘 '고독'하다. 그리고 그 나름의 예술 세계에 대한 '고집'을 바탕으로 위대한 '예술 작품들'만들어 내는 뭐 그런거? 이걸 읽으면서 '빈센트  고흐'를 떠올렸다면 맞췄다.


하지만 하이메 이욘처럼 요즘 소위 잘 나가는 예술가들은 조금은 다른 모습이. 우선 그들은 고립과 고독이 아닌 '고민'을 한다. 그리고 혁신과 창조를 위한 과감한 '협업'을 선택한다. 결국 그 바탕에는 예술가의 '유연함'과 '포용력'이 탄탄하게 깔려 있다. 그래서 하이메 이욘의 시선은 기본적으로 '곡선' 모양이다. 유연한 곡선으로 그는 사람과 사물을 자유자재로 표현한다. 곡선만큼 더 선명하고 또 아름답게 모든 것의 '포용성'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그래서 그의 오브제들은 수많은 곡선들의 향연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Look yourself. We're round. We're not square. Things should be round. Round with coherence.
자신을 한 번 바라보세요. 우리는 어느 한 군데도 각진 곳이 없이 모두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처럼 사물도 둥글둥글해야 하는 것이죠.


일상에서 마주치의자들. 그리고 이것들을 무심하게 깔고 앉는 평범한 가구로만 생각했던 나. 전시회 단일층 한쪽 공간을 모두 독차지한 '들'만의 특별한 공간이 내 앞에 다. 의자들의 역습인가!? 평범했던 의자들은 이제 전시회의 주인공이 되어 사방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채 하얗게 그리고 격조 있게 내 앞에서 빛나고 있다. 상상이 되는가. 이런 상황에 갑작스럽게 던져진  모습을. 그때 나는 소위 '컬처쇼크'란 걸 아주 오랜만에 경험했다. '녹색 치킨'에 올라 탄 익살스러운 예술가의 전시에서 이렇게 품위 있고 절제된 디자인을 마주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의자 하나하나는 각각 이질적인 모양과 질감을 간직한 채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빛나고 있었다.

The 'source' of my creativity is probably passion accompanied by a very personal way of seeing things : the third eye with which you see the things around you.
제 창작의 '원천'은 아마도 열정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저만의 방식에 있을 것입니다. 바로 주변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제3의 눈이지요.


매 순간 의자와 한 몸이 되는 인간과의 교감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느끼는 감정에 대한 깊은 고민. 의자 등받이와 팔걸이의 모양, 소재, 색상 등 적당한 무게감과 깊이를 가지면서도 절제되어 표현된 그의 감성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마냥 익살스럽고 가벼울 것만 같은 하이메 아욘의 반전이랄까. 푸른 밤하늘 속 하얀 의자들은 사물과 사람에 대한 그의 따뜻한 시선으로 마감되었기에 내게 더없이 특별하다가온다. 당장 올라가서 그 아이들의 팔걸이에 안기고 싶었지만 그 순간 발밑 '눈으로만 보세요' 안내문구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다. 디자인을 통해 느끼는 '행복'이란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의자 하나로 이렇게 따뜻한 감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예술가의 열정에 다시금 감동한 순간이었다.

I believe that design should provoke emotions. Design should make you feel good. Create happiness.
디자인은 사람의 감정을 자극해야 하며, 사용하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거죠.

  

격조 있으면서 세련된 소파와 의자들. 이건 그의 일부분이다. 기본적으로 그는 유쾌함과 자유분방함 그리고 남다른 열정을 가진 투우나라(매년 7월 '산 페르민 축제'에 백만명의 사람들이 고작 몇분의 전력질주를 위해 스페인 북부의 작은 도시로 몰려든다.), 스페인 출신의 디자이너다. 마드리드와 캘리포니아에서 스케이트보드와 벽화(그라피티)즐기는 예술가. 이는 얼마 전 관람했던 대만계 미국 이민자 예술가 '제임스 '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제임스 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생명과 죽음, 욕망 등 우리 삶의 흑과 백이 공존한다. 하지만 이욘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따뜻하지만 열정 가득한 호기심. 이것이 하이메 이욘 예술의 핵심이다. 그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인생을 조금은 가볍게 바라보라고.  


이런 면모는 벽화를 리메이크 한 회화 작품들(상상이 현실이 되는 꿈 Dream Chatcher)과 '수상한 캐비닛 Cabinet of Wonders'속 70여 점의 그의 오브제를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캐비닛 선반에 모터 기능을 달아 움직이는 바나나와 해맑은 표정의 원숭이 오브제를 보면서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그대로 간직한 예술가다운 그의 면모를 다시금 느꼈다.

For me, work is a learning curve of playfulness. I've always felt like a child, which makes me very happy because I absolutely love the beauty and simplicity of a child's energy, mind and drawings. There is excitement and wonder in it.
제 작업은 즐거움의 연속입니다. 어린아이의 에너지와 마음, 그리고 드로잉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과 천진난만함이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이죠. 그래서 제 작품은 재미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이 전시회를 위해 미술관에 도착하기 까지. 두 시간 남짓 시간 동안 겪었던 도로에서의 지루한 교통정체. 내비게이션 안내를 놓쳐 낯선 한남동의 고급 주택가를 불안하게 가로지르며 느꼈던 긴장. 

그리고 미술관에 무사히 도착한 안도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주차장 '만차'라는 실을 게 된 순간조금은 짜증스러운 감정 등등. 하루에도 몇 번씩 다양한 감정의 굴곡을 경험하는 현실 속 적나라한  모습이다.


나를 마냥 가볍고 유쾌하게만 살 수 없게 만드는 이런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들. 그 가운데 하이메 아욘의 '그린치킨과 그의 친구들'과의 우연한 만남 있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Serious fun) 묘한 친구들을 만난 기분이랄까?


앞으로 새로운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야 할 이유,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하이메 이욘, 이 낯선 스페인 예술가와의 만남 마치 미술관 출구를 나선다. 늦은 오후. 더욱 깊어진 햇살이 건물  아담한 뜰을 비추고 있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따뜻함과 유쾌함으로 충만했던 그의 전시회. 그 때문일까? 유난히 숨겨진 곡선들이 돋보이는 풍경이다. 그다지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내 앞에 있었다. 매번 전시회 관람 후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예술의 세계는 참 오묘한 뭐 그런 거 같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좋은 공간이 좋은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인식 덕분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
생각보다 많은 답이 타이밍에 있다.
- 최인철 교수 <마음읽기> -








이전 02화 봄날의 밝은 즐거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