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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Oct 24. 2022

봄날의 밝은 즐거움

"앙리 마티스 탄생 150주년" 마티스 특별전 : 재즈와 연극

일요일 아침. 눈을 떴다. 암막 커튼 양쪽이 야무지게 내려진 방안은 아직 깜깜하다. '7시쯤 되었을까?' 무심하게 휴대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한 나는 화들짝 놀랐다. 8시 40분. '아! 늦었다' 잔뜩 흐린 날씨에다 커튼까지 쳐놓고 그냥 잠이 들어버린 내 잘못이다.


'아, 갈까 말까?' 하지만 매번 그렇듯 애매한 상황에서 나는 그냥 '하는 편'이다. 세수만 간단히 하고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현관을 나섰다. 9시가 조금 넘었다. 다행히 생각보다 많이 늦어지진 않았다. 습관처럼 동네 빵집을 들러 텀블러 하나를 가득 채우고 토스트를 샀다. 어제부터 내린 빗줄기는 가늘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회색빛 하늘과 함께 3월 이른 봄의 기운을 다 덮을 듯 내린다. '늦었는데 날씨까지 이 모양이람.'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한참을 달려 고속도로를 벗어나 서울 시내로 들어가니 어느새 비가 그쳤다. 그제야 회색빛 아스팔트와 자동차 행렬 너머 화사하게 핀 흰 벚꽃길이 눈에 들어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산책로 양옆으로 벚꽃나무와 연두색 푸른 나뭇잎들이 다정하게 늘어선 모습에 나도 모르게 "봄이구나!" 감탄이 나왔다. 늘 직접 운전을 하다가 오늘은 조수석 앉아 바깥 구경의 특권을 한껏 누려보았다. 화사한 봄길에 마음까지 풀어져버렸는지 나는 휴대폰을 들고 빨간색 동영상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저는)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한 시간 정도는 나를 위해 휴식의 시간을 가지려고 항상 노력해요."

"그래서 주말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늘 그런 시간을 위해 비워둔답니다."

"오늘 차도 막히고 비까지 내리지만, 밖은 벚꽃이 활짝 피었네요.(웃음)"

"앙리 마티스 아저씨를 두 번째 보러 가는 지금, 느낌이 어떤가요?"

"처음엔 좀 얼떨떨하게 (뭐가 뭔지도 모르고) 보고 왔지만, 두 번째는 또 어떨지 무척 궁금해요."

그렇게 나는 비 오는 봄날, 마음씨 좋아 보이는 프랑스 예술가 '앙리 마티스'의 순수함과 평온함의 세계로 달려갔다.


지하 1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미술관 로비에 들어서자 책가방을 사이좋게 맨 꼬마 손님들의 동그랗고 까만 뒤통수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전시장 입구에서 열체크를 위해 얌전히 줄을 서있다. 그리고 재잘재잘 소곤소곤. 전시관 로비는 이렇게 '봄날의 새소리'를 가득 품어 한껏 들뜬 분위기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다행히 대기 없이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출발이 좋다!'


벌써 두 번째 방문이다. 지난겨울 처음에 이 전시를 왔을 땐 전시관 바닥의 화살표를 따라 걸으며 눈과 귀를 최대한 열어 무엇이든 다 이해하리라는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두 번째는 나도 모르게 입구부터 여유를 부린다.


"내가 꿈꾸는 것은 균형과 평온함의 예술, 즉 안락의자처럼 인간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정시키는 예술이다"

한참을 이 문구 앞에 서 있었다. 균형과 평온함. 마티스가 추구한 균형의 의미는 무엇일까. 안락의자처럼 편한 예술은 도대체 어떤 것이지?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간 단어는 '균형'이었다. 그의 드로잉부터 *컷아웃(종이오리기)까지. 모든 작품에서 그가 느꼈던 균형에 대한 고민이 묻어 있었다. 선과 여백, 색깔과 드로잉, 화려함과 단순함, 흑과 백, 빨강과 검정, 곡선의 여인과 직선의 사물, 따뜻함과 차가움,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


* 컷아웃 cut-out : 종이오리기 예술. 자연을 패턴화 한 무늬와 강렬한 색상. 순수함과 정열. 간략하고 함축적인 형태. 20~21세기 추상미술, 미니멀리즘 디자인에 폭넓은 영향. <출처 : 마이아트뮤지엄 홈페이지>


'오늘 나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가지고 갈 수 있을까?'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프랑스 북부 캉브레시 출생. 강렬한 색채가 특징. 피카소와 함께 야수파 화가, 20세기 최고의 예술가로 불림. 유화, 드로잉, 조각, 판화, 컷아웃, 책 삽화 등 방대한 작품 활동. 작품을 통해 "조화, 순수, 평온"을 추구함. <출처 : 마이아트뮤지엄 홈페이지>


사실 스무 살 청년 마티스의 첫 직업은 법률 공부를 갓 마친 변호사였다. 세상 모든 것을 하얀 종이 위 까만 법률 문구의 텍스트 안에서 규정해야 하는 일에서 그는 과연 무엇을 느꼈던 걸까. '하얀 종이 위'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딱딱한 글자 대신 부드러운 곡선과 여백, 색채를 입혀가는 그림은 분명 다른 것이었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데생과 수채화를 배우러 다녔던 젊은 마티스. 혈기왕성한 이 청년에게 법률 사무소에서 보내는 건조한 일상에서 느껴졌을 진짜 세상과의 '불균형'. 그리고 내면의 열정과의 '충돌'. 어쩌면 이런 것들이 평생 작품을 통해 어떻게든 '균형'과 '조화' 그리고 '평화'의 지점을 찾아보려 했던 '예술가 마티스'를 탄생시켰는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편안한 법률가의 인생을 버리고 (피카소와 함께 1900년~1908년 '야수파'로 본격적인 유명세를 타기 전, 꽤 오랫동안) 지독히도 가난했던 예술가의 삶을 걸었던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스스로 증명했기에. 나에게 앙리 마티스는 그의 수많은 작품보다 그 인생 자체가 가장 예술적인 '작품'이다.  


노년의 마티스는 오랜 지병으로 직접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상태에까지 놓인다. 하지만 젊은 시절 이미 변호사의 길 대신 가난한 예술가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에게 붓 대신 '가위'를 집어 드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 개 작품을 위해 그는 수백 번 오리고 또 오렸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 위대한 종합예술가 '앙리 마티스'로 만들어낸 '컷아웃'(종이오리기) 작품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컷아웃 예술은 드로잉, 판화, 삽화 등 수십 년 예술가의 길에서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던 마티스 인생의 거의 막바지에 어쩔 수 없이(?) 집어 든 가위에서 나온 것이다. 그 순간 얼마 전 다녀온 영국의 86세 화가 '로즈 와일리' 전시에서 만난 'Scissors girl(가위 소녀)'의 가위와 마티스의 가위는 내 기억저장소에서 묘하게 오버랩되었다. 영국과 프랑스. 각기 다른 나라와 시대를 풍미한 노년의 예술가 두 명이 가위라는 공통의 분모를 가진 것이 과연 우연일까?


걷기조차 힘든 마티스가 급기야 침대에 책상을 설치해서 작업을 해야했다. 얼마 전 나도 사고로 거의 한 달 반을 집안 침대에서만 지냈다. 그리고 그 시간의 대부분을 글쓰기와 책으로 채웠었다. 막상 지나고 보니 무료하다거나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통해 내면이 채워진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머리까지 같이 멈추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몸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머리와 마음으로 쏠리게 되고 더 많은 생각들로 하루 종일 나의 머릿속은 더 바쁘게 움직였다. 사진 속 하얀 노트를 앞에 두고 펜을 든 마티스. 이런 아이 같은 해맑음은 어떤 장애도 가볍게 넘어버리는 예술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마티스가 '컷아웃'으로 1947년 출간한 <재즈> 시리즈인 블루 누드(Blue Nude, 1952). 1952년 11월 8일 고향인 르 카토-캉브레지에 마티스 미술관이 개관되면서 <블루 누드> 연작이 제작된다.

어찌 보면 그냥 평범한 사람도 몇 번 파란 색종이를 이리저리 잘라서 붙이면 될 것 같이 무척 단순해 보이는 '블루 누드' 작품. 하지만 이 작품 하나를 위해 마티스는 우리 인간의 관절 움직임을 수없이 관찰하고 오리기를 반복해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한다. 균형과 조화. 작은 조각 하나라도 제대로 잘라내기 위해 그가 치열하게 자르고 또 잘라내는 장면들이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휙휙 지나갔다.    


로사리오 성당. 여기까지 정리하고 보니 나를 두 번째 방문으로 이끈 진짜 이유를 드디어 찾아낸 느낌이다. 바로 이 공간 때문이다. 앙리 마티스 특별전의 마지막 섹션이자 그의 마지막 예술품인 로사리오 성당. 며칠 전 우연히 SNS를 검색하다가 어떤 분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이 곳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았다. 연둣빛을 머금은 노랗고 파란 스테인드 글라스가 바닥까지 은은하게 비추는 성당의 내부가 선명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잊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전시회 티켓을 예매했다.


흐린 봄날, 늦잠에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 결국 나를 이곳으로 다시 이끈 것은 그냥 알 수 없는 '느낌'이자 '끌림'이었다. 평화로움. 앞서 언급한 마티스가 추구한 몇 가지 가치 중에 '안락의자 같은 안정'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한때 그의 병간호를 했던 어린 소녀가 이후 수녀가 되어 다시 그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 수녀가 일할 새로운 성당을 짓는데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부탁을 받는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 그의 곁에서 도움을 준 소녀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그는 성당의 사제복부터 벽돌 한 장까지 직접 챙기며 마지막 예술가로서의 열정을 '로사리오 성당'에 쏟아 붙는다. 마티스와 작은 소녀의 인연은 생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었던 마티스에 어떤 영감을 주었던 것일까.


실물로 구현된 로사리오 성당은 내게 소녀의 '순수함'과 '싱그러움' 그리고 노년의 마티스가 (마지막 열정을 불태움으로써) 비로소 가질 수 있었던 '평화로움' 같은 게 느껴졌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 준다면.' 노년의 마티스는 어린 소녀에게 이런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그리고 로사리오 성당에 소녀에 대한 고마움과 감동을 있는 그대로 녹아 넣은 게 아니었을까. 내 상상의 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만 간다.


로사리오 성당의 평화로움도 뒤로하고 전시회 출구를 향해 나가려는 순간. 오른쪽 벽면에 얌전하게 붙은 그의 마지막 문구가 슬쩍 보인다.


"그림들이 봄날의 밝은 즐거움을 담고 있었으면 했다."(앙리 마티스)

2021년 3월 잔뜩 흐린 봄날, 그렇게 앙리 마티스는 '봄날의 밝은 즐거움'을 내게 듬뿍 선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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