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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Sep 18. 2022

인생은 와일리와 크레이그처럼

로즈 와일리, 마이클크레이전 전시 in 한가람미술관

그대로다. '인생은 와일리와 크레이그처럼'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로즈 와일리는 86세의 영국 켄트 출신의 여류화가다. 중년의 나이에 미술공부를 시작해 화가의 길로 들어서서 70대부터 서서히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은 영국의 대표적인 미술관, 테이트모던에서 전시회를 가질 만큼 요즘 가장 '핫(hot)'한 예술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자신의 나이보다 작품 자체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바람을 공개적으로 밝힐 정도로 작품만큼 화제가 되는 건 노년의 그녀 나이다.


와일리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10대 소녀그림을 보는 건 갇. 우리네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유쾌하면서 무척 따뜻하게 표현했다. 특히, 그녀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슴, 고양이, 새... 동물들은 다양한 감정을 담은 얼굴을 하고 저마다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일상 속 동물들에 대해 이렇게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은 어떤 성격일지 새삼 궁금해졌다. 그리고 로즈 와일리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도 꽤나 많이 그렸다. 세상을 향한 어떤 편견도 삐딱함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시선이었다.


10대 시절. 내가 세상을 바라보았던 그 마음도 그랬을 테지? 그런데 왜 지금은 그때의 마음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까? 와일리의 '시소걸(가위 소녀)' 그림은 중학교 때 할리퀸 소설에 푹 빠져 종종 '백마 탄 왕자와 멋진 사람에 빠지는' 상상을 즐겨했던 내 모습을 꼭 닮았다. 내가 저랬다고?


마이클 크레이그는 백발의 영국 화가다. 그의 새하얀 머리카락은 노랗고, 빨갛고, 까맣고. 다채롭고 화려한 색상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그의 작품들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런 분이 어떻게 이렇게 세련된 그림을 그려냈을까. 그가 만들어낸 색다른 색상의 조화와 깔끔한 표현력에서 나는 20대 청년의 느낌을 받았었다. 선반 위 물컵을 오크나무라고 이름 붙임 것과 여러 가지 알파벳을 섞어서 만들어낸 그림은 심지어 10대 아이의 기발함도 있었다. 사실 70대의 노신사의 그림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도대체 영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곳일까. 로즈 와일리부터 마이클 크레이그까지. 이렇게 멋진 감각의 노작가들이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나라. 이제 40대의 중간을 지나고 있는 나에게. 앞으로 다가올 나의 노년을 상상해 보면 조금은 우울해진다. 그리고 우울감의 가장 큰 부분은 나이듦에 대한 주위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다. 주름 가득한 얼굴과 희끗한 머리, 구부정한 등과 허리.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어가는 나의 신체적 변화로 인해 마음까지 나이 먹을까 봐 걱정이 된다.


아직 20~30년 후인 미래의 모습이지만 '뭐, 인생이 그런 거지'하며 담대하게 세월을 맞이할 용기가 조금은 더 필요하다. 그래서 이제야 예전과는 조금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 비록 겉모습은 나이가 들었을지언정. 마음과 감각만은 계속 더 젊어지고 싶다는 것. 즉, 세월에 대한 마음의 역행이다. 뭐든 안되든 생각은 자유니까.


그리고 20~30년 후에는 40대인 지금보다 더욱 생기 있고 감각적인 생각과 표현을 맘껏 하면서 노년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 잠시 생각해 봤다. 가장 먼저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는 것이 아닐까. 사실 내 마음의 나이는 지금보다 20대 때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나의 20대. 그땐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난 줄 알았다. 가족, 친구, 직장동료... 나를 둘러싼 세상 사람들로부터 나는 귀를 닫아버렸다. 내가 마음대로 정한 기준(여자, 20대, 직장인, 싱글...)에 따라 "내가 전부 옳다"착각이 주는 안도감을 세상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의 전부인 줄만 알았다. 당시 내게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사람, 새로운 도전은 그냥 귀찮고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마음속 감옥에 가두고 변화를 두려워하던 20대 그 시간보다 내 마음에 주름이 많았던 적이 또 있을까?


다행히 30대 초반. 근처 스포츠센터에서 운동을 시작하면서 내 마음속에도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때는 몰랐다. 극도로 폐쇄적이고 두려움만 가득했던 내면생긴 작은 변화가 무엇인지. 새로운 것이 가져다준 신선한 자극과 마음속 일렁임들. 물론 지금도 내 마음속엔 펴야 할 주름이 여전히 많다. 하지만 그다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최소한 그것들을 어떻게 펼 수 있는지 방법은 알고 있기에.


'인생은 와일리와 크레이그처럼!'

가장 먼저 나는 '세상 쓸데없는' 나이먹음에 대한 걱정부터 날려버려야 한다. 직업이든, 음식이든, 공부든, 사람이든, 패션이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경험하고 실패하기를 즐기는 것이다. 먼 타국에서 살고 있는 두 예술가의 삶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 인생이 좀 더 근사해 보인다는 걸.

최근 마이클 크레이그 전시에서 사 온 물건이 하나 있다. 샌들이 그려진 조그만 손거울이다. 그냥 평범한 신발 그림이지만 왠지 마음에 들었다. 크레이그가 그런 샌들을 신는지는 모르겠지만. 작업을 할 때는 그걸 신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분명히 머릿속에 떠올렸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손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샌들 신은 사람들이 아닌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는 백발의 멋진 화가떠올릴 테니까. 하루에 최소 두 번. 나는 그 거울을 꺼내어 내 얼굴? 아니, 내 마음의 주름이 몇 개나 남았나 자꾸만 세어볼 것이다. "하나, 둘, 셋..."


#로즈와일리 #마이클크레이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영국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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