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의 원흉은 내가 아니었다.
가정사가 민원으로
20년 전 교직 경력 2년 차 때 민원에 한참 시달린 적이 있었다.
"차별하지 말아 주세요."
민원의 시작은 이랬다. 대체 뭘 차별했다는 건지 의아했다. 혹시 내가 놓치는 부분이 있나 싶어서 다른 아이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혹시 너희들 차별하니?"
"모르겠는데. 누가 뭐래요?"
몇 명에게 물어봐도 그 아이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별게 없다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넘겼다.
"선생님, 차별하신다고 들었는데..."
또 다른 학부모로부터 들었다. 뒤에서 이상한 소문을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지역교육청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대회에서 자녀가 탈락하자 불공평하다며 민원을 제기했다는 연락도 받았다. 순식간에 이곳저곳 걸리는데 마다 민원을 제기해 민원 풍년을 만들고 있었다.
결국 반학부모 들을 교실에 모이도록 했다. 어떤 점에 불만들이 있으신지 앞에서 말씀들 하시면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해명할 것은 해명하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통해 소식들을 듣고 있던 학부모들은 막상 면대면 상황에서는 조용했다. 뭐가 있어야 말을 하는데 아이들은 교실에서 깔깔 거리며 잘들 놀았다. 민원 제기를 시작했던 그 아이조차도 연신 웃었다.
"선생님 저희들은 지금으로 만족해요."
한 아이의 엄마가 말을 꺼내자 다들 끄덕이셨다. 민원 주동자 단 한 명만 빼고.
그날 저녁 이메일로 장문의 글이 왔다. 자신을 고등학교 교사라고 소개하면서 민원 제기한 아내에 대한 변명과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길게도 적었다. 글을 읽으면서 느꼈다. 이 자가 주동자란 사실을 말이다. 조목조목 반박했고 가장 마지막에 한 문장 덧붙였다.
"같은 직종에 계신데 본인과 똑같은 학부모 만나셔서 꼭 민원으로 시달려 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학년이 끝나고 반학부모들이 저녁때 보자는 연락이 왔다. 1년간 수고하셨다며 저녁을 산단다. 민원에 시달렸기에 마주하기 거북했고 당연히 거절했다. 학부모들이 학교 문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릴 줄은 몰랐다. 결국 연행되듯이 끌려갔다. 화장실을 간다고 하면서 음식값을 결제하려다 쫓아온 한 학부모에게 결려서 그마저도 실패했다. 이튿날 음식값만큼 아이들 간식을 사주는 것으로 금전관계는 청산했다.
식사 자리에서 민원 제기한 학부모 가정사를 들었다.
"그 집 애 아빠가 매일 만원씩 생활비를 준다네요."
하루 만원으로는 식비도 부족하다. 그 돈으로는 집밖으로의 외출은 엄두도 나지 않았을듯 싶었다.
'누군가를 만나서 차 한잔 마실수 있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 금액!'
그 아이의 엄마는 아빠란 사람으로부터 철저하게 통제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지를.
이제와 생각하니 그 엄마의 민원은 억압하는 남편에게 받은 스트레스의 표출이었지 싶다. 그 대상은 가장 만만해 보이는 아이의 담임인 나였던 것이었고.
학부모들의 가정사를 알 수 없는 마당에 이런 날벼락같은 민원은 어찌 대처해야 할지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난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