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너 없는 세상이고 그래서 나는 정말 죽고 싶지 않았어
최진영 작가의 글이 내 취향과 맞나 보다.
음울하고 침잠하는 분위기의 문체와 사건들.
행복보다는 불행이 가까운 인물들.
그래도 부정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밀리의 서재를 휙휙 넘기다 읽게 된 책이었고 그냥 한번 볼까, 하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야 최진영 작가의 작품임을 알았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표지도, 제목도 왠지 스릴러 같았는데 농도가 남다른 사랑 이야기였다.
구와 담의 사랑이 담긴 소설.
도입부에서 죽은 구를 먹는 담이 눈앞에 선히 그려져 충격적이다가
그녀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하는 순간 마음이 저릿해 견디기 힘들었다.
구와 담은 불운하고 어두운 인생을 짊어졌다.
부모님 없이 이모와 둘이 사는 담과 부모가 물려준 것이 빚밖에 없는 구.
돈이 없어 맞아죽은 구의 끝이 얼마나 비통했는지.
사채업자 손에 구를 뺏기게 되면 쓸만한 장기가 전국구로 흩어질 것을 예감한 담은 구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구를 먹어서 담의 생이 끝나야만 구가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게.
그의 죽음이 그녀의 죽음 뒤에 오게.
문장이 다 좋고 깊어서 꼭 누가 떠나거나 죽는 장면이 아니더라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때가 많았다.
담을 보는 것은 괴로웠고,
보지 않는 것도 괴로웠다.
더 가까워지고 싶었고 행여 더 가까워질까 겁이 났다.
나는 아무 희망 없이 살면서도 끝까지,
죽는 순간에도 어떻게든 살고 싶었는데,
그건 바로 담이 너 때문에.
희망 없는 세상에선 살 수 있었지만
너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가 않아서.
죽음은 너 없는 세상이고 그래서 나는 정말 죽고 싶지 않았어.
구와 담의 서로를 향한 마음을 더듬어 읽었다.
언제 그렇게 깊어졌을까.
애초에 서로를 알아보고 깊은 자리를 파놓은 것일까.
둘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과정이나 사랑의 시작이 뚜렷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둘은 진리가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사랑하게 되며,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고유한 사랑이라 여긴다.
그 정도는 되어야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아직 멀었다.
누군가를 뜯어먹을 정도로 사랑하기엔 나는 심히 심약하다.
필사노트를 이 책 덕에 간만에 꺼내게 됐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많았다.
짙고 깊은 사랑은 아프다. 그렇다고 가볍고 싶진 않은데.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구와 담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