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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여자 Oct 24. 2021

치열한 고교부! 어떻게든 튀어야 심사위원에게 보인다

더이상 취미가 아니다 

중학교 백일장은 개인의 입신양명에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입상자가 모두 문예창작학과나 국어국문과 계열을 희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교 백일장은 다르다. 전국 단위의 백일장은 대학입학에도 직결되기도 한다. 


중학교 때부터 국어와 영어를 좋아했고, 크고 작은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이과를 선택했다. 이과를 좋아해서? 아니다. 지극히 감상적인 이유로 문과를 선택했다. 


'수학Ⅱ가 너무 멋지잖아!'


자기 주제도 모르고, 성향을 무시한 체 이과에서 공부하는 건 쉽지 않았다. 수학Ⅱ, 물리Ⅱ, 화학Ⅱ는 최악이었다. 그나마 국어, 영어, 세계사, 독일어 과목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당연히 대신도 좋지 않았고, 대학은 멀고도 멀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 심부름으로 3학년 층에 올라갔다. 3학년 전공 게시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이화 백일장> 포스터를 발견했다. 한 학교에서 3명만 참가할 수 있는 백일장이었다. 그날이 접수 마지막날이기도 했다. 나는 그 게시풀을 떼어 내 담임선생님께 가져갔다. 


"선생님, 저 이 백일장 나가고 싶어요."


3학년이 1명만 신청한 상태라 나도 참가할 수 있었다. 결국 이 백일장의 내 입시 운명을 바꿔놓았다. 


백일장은 이화여대 강의실에서 실시됐다. 대학 백일장은 처음 나가보는거라 떨리기도 했다. 전국에서 글 좀 쓴다는 여학생들이 참가했을 것이다. 

이 백일장은 제목을 미리 정해주고 그에 맞는 작품을 쓰는 방식이었다. 제목은 '보이지 않는 불빛'이었다. 이제 정해신 시간 내에 짧은 소설을 써내면 된다. 

다른 친구들을 보니 연습장에 따로 줄거리 개요도 적지 않고 바로 쓰는 것 같았다. 나도 제목에 맞춰 소설을 써내려갔다. 그런데 쓰면서도 불안했다. 


'이렇게 무난하게 써서 심사위원 눈에 들 수 있을까?'


이미 시간을 흐르고 있었고, 빠르게 써내려갔지 때문에 이미 소설이 거의 완성 되어 가고 있었다. 느낌이 않좋았다. 그저그런 평범한 소설이 됐다. 

나는 주저 없이 손을 들었다. 


"종이 좀 다시 주세요."


다시 백지가 됐다.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제출하고 나가는 학생도 있었다. 딱히 좋은 생각이 들어서 종이를 바꾼 건 아니었다. 대책이 없었다. 그때 딱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심사위원 눈에 들어야 해!


간절했다. 이왕이면 보란듯이 수상하고 싶었다. 최선을 다했는데 떨어진다면? 어차피 이 백일장에서 떨어지더라도 잃을 건 없다. 이미 수 없이 떨어져 봤으니까 괜찮다. 그러니까 후회 없도록 파격적으로 쓰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제목이 어려웠다. '보이지 않는 불빛'을 어떻게 하면 문학적으로 비유하고, 소설로 잘 쓸 수 있을까? 에라, 모르겠다. 동성애 이야기를 쓰자. 여고생이 여자 친구를 사랑하는데 그 마음이 '보이지 않는 불빛'처럼 느껴졌다. 사랑하는 마음이 어찌 남녀를 가리겠는가. 그냥 썼다. 정말 시간이 없어서 어떻게 마무리 했는지도 모르게 쓰고 나왔다. 


그리고 소설 부분 차하에 입상했다. 차하면 3등이다. 대부분 3학년이 수상했는데 2학년인 내가 상을 받았다고 했다. 상을 받고서야 알았다. 이 대회에 입상하면 문학특기자 전형으로 수시 원서 접수를 할 자격이 주어진다. 이과반 담임선생님은 상을 받아온 나를 신기해 했다. 그리고 전교생 앞에서 시상식을 했다. 이제 문학특기자 전형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그 후로 더 많은 대회를 나갔을까?

아니다. 


"넌 이미 수시 자격을 갖췄으니까 백일장 대회 기회를 다른 친구들에게 양보해라." 


그래서 그 후로는 학교 대표로 대학 단위, 전국 단위 백일장을 나가지 못했다. 그 후로 문예반 학생이나 문과 학생이 대회에 참가했다. 하지만 상장을 받아오는 친구는 없었다. 

3학년이 된 후 이과에 속해 있지만 문과 시험을 지원하는 학생이 됐다. 2학기 부터는 명지대, 인하대 등 문학특기자 수시 전형을 보러 다녔다. 상을 준 이화여대는 1차 합격을 했다. 2차는 수능 언어영어 3% 안에만 들면 최종합격하는 상황이었다. 


2학기 내내 난 언어영역만 공부했다. 그런데 결과는 불합격. 그해 수능 만점자가 66명이나 나온 물수능이었다. 심지어 수능 만점자가 서울대를 떨어진 기록적인 해였다. 수능 국어 3개를 틀렸는데, 2개만 틀렸어도 합격? 모르겠다. 진짜 너무 쉬워서 내가 수학 주관식을 모조리 맞췄으니까. 


수능이 끝나고 동덕여대에 문학특기자 전형 입시를 보았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합격 전화를 받았다. 문학특기자들은 2학년 때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를 고를 수 있었다. 부모님은 교직과정이 있는 국어국문과를 권하셨지만, 난 글쓰는게 좋았다. 문예창작학과로 정했고, 이후 3년동안 참 많은 것을 배웠다. 현업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계신 교수님 그리고 소설가 분들의 수업을 들을 수 있어 행복한 4년이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건 고2때 참가했던 이화 백일장 덕분이다. 그때 심사위원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나는 이과를 선택해 후회했던 것처럼, 다른 과를 선택하고 후회했을 수도 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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