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 - 중앙정보부

From 1919 to 2022

by 시드니


박정희는 쿠데타로 대통령이 되자 중앙정보부를 만들었다. 중정은 종대의 가족이 남한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종대의 딸이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발칵 뒤집혔다. 중정은 퇴근하는 서희를 붙잡아 그 자리에서 끌고 갔다.


중정 수사관은 거칠게 서희를 겁박했다. 종대와 어떤 방법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냐는 것이었다. 서희는 전쟁 중에 종대를 본 이후에는 모른다고 소리쳤으나, 돌아온 것은 야멸찬 따귀였다.


스미스는 대사관 내 CIA를 통해 서희가 중정에 잡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희의 집에는 이미 중정 요원이 분옥을 감금하고 있었다. 스미스는 그 길로 중정을 찾았다. 스미스는 담당관을 만나 고성 끝에 서희를 데리고 나왔다. 스미스는 서희에게 왜 자신의 존재를 말하지 않았느냐고 화를 냈지만, 서희는 그저 울었다.


중정은 스미스의 시퍼런 서슬에 서희를 내놓았지만, 서희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이후 서희에게는 언제나 그림자가 있었다.


스미스는 분옥과 서희에게 차라리 미국에 갈 것을 강권했지만, 분옥이 질겁했다. 만주 벌판을 헤맸던 기억에 치가 떨려 종대도 따라가지 않았는데, 이제와 태평양을 건너라니 말도 안 된다며 일본군도 견디고 전쟁도 버텼는데 중정은 별것 있겠냐고 호기를 부렸다.


서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분옥과 미국으로 갈 용기도 없었지만, 그림자처럼 감시하는 중정도 무서웠다. 그렇다고 스미스에게 선택을 물을 수도 없었다. 스미스는 너희 모녀가 살길은 미국으로 가는 것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어느 날 스미스가 서희를 불렀다.


"서희 난 이제 곧 미국으로 돌아간다. 정말 엄마와 미국으로 갈 생각이 없나"

"엄마가 저리 싫어하니 엄마를 두고 갈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죠"

"내가 가고 나면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거다"


서희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서희에게 스미스가 떠난다는 것은 말은 종대가 떠난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서희는 종대를 그리 보내듯 스미스도 붙잡을 수 없었다.


"서희 올해 몇 살이지?"

"한국 나이로는 스물여섯이에요"

"다 컸구나! 부산에서 우리 처음 볼 때가 열넷인가 그랬지?"

"네"

"나는 너를 딸처럼 생각했다"

"네 엄마도 저도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널 시집보내고 싶다"

"네?"


스미스는 한국을 떠나게 되면서 분옥의 모녀를 남겨두고 가는 것이 눈에 밟혔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해방 후 일본에 주둔하던 스미스가 대위 때 한국에 와서 문관으로 남으면서까지 십여 년을 넘게 있었던 것은 분옥과 서희의 탓이 컸다.


분옥이 처음 미군정에 면접을 왔을 때 스미스는 담당관이었다. 분옥은 저녁에는 집에 가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스미스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분옥은 집에 어린 딸이 있어서 해가 지면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미스는 껄껄껄 하면서 크게 웃었다.


분옥이 부산에서 스미스를 찾기 전까지 스미스는 서희를 본 적이 없지만, 스미스는 미군정에 있을 때 분옥이 가능하면 늦지 않도록 배려했다. 그러다 전쟁이 나고 분옥과 서희는 거지가 되어 부산에 있는 스미스를 찾아왔다. 분옥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지만 분옥은 그저 눈물만 흘렸고, 서희는 그런 엄마를 보고 엉엉 울었다.


스미스는 분옥에게 서희를 양녀로 삼고 싶다고 했으나, 분옥은 우리 집안을 뭐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분개했고, 인연을 끊자고 하는 터에 스미스는 통사정을 해서 분옥을 달랬다. 스미스는 분옥이 그토록 분노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분옥과 서희를 위하는 길이 아니라면 더 고집할 이유도 없었다. 분옥과 서희는 대사관의 남은 음식을 몰래 가지고 가서 먹었지만, 스미스가 주는 음식은 받지 않았다.


스미스는 그런 분옥의 모녀가 이상했다. 하지만 내치지도 못했다. 전쟁에서 수도 없는 죽음과 버려진 가족을 보았는데, 왠지 이 모녀는 잊히지 않았다. 빌어는 먹어도 얻어는 먹지 않겠는다는 이 이상한 모녀는 스미스에게 전쟁에서 얻은 업보 같았다.


스미스는 치밀해야 했다. 자신이 한국을 떠나고 나면 분옥과 서희는 중정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었다. 중정은 서희가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종대와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분옥과 서희를 위한 또 다른 스미스가 필요했다.


도무지 스미스는 분옥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리 이 땅을 고집하는지 따지고 보면 두 모녀가 이곳에 남겨둔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깨끗하게 미국으로 건너와 새 삶을 시작하면 될 일을 무슨 미련이 있다고 그 고집을 부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서희가 결혼을 해야 했다. 혼기도 다되었고 서희에게 남편을 만들어 주는 것이 스미스를 대신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제 시집갈 나이가 됐잖아?"


서희의 얼굴이 빨개졌다.


"어떤 남자가 좋아? 사귀는 사람이 있어?"

"무슨 말씀이세요. 흥 저 그런 사람 없어요"

"그래서 어떤 남자가 좋은데, 나 한국 사람 많이 알고 있다고. 허허허"

"몰라요!"


서희는 빨개진 얼굴로 스미스의 방을 뛰쳐나왔다. 서희는 스미스의 방을 뛰쳐나왔지만 뛰는 가슴이 멈춰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여자 나이 스물여섯이면 노처녀였다. 전쟁통 피난살이에 분옥의 극성으로 기어코 대학까지 마치다 보니 어느새 그 나이가 되어버렸다.


분옥은 내심 서희에게 남자가 생기길 바랐지만, 종대 때문에 어디 중매를 부탁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이제는 중정까지 저리 설쳐 대니 분옥과 서희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오히려 대사관에서 일하는 서희를 보고 미군들이 접근한 적이 있었지만 스미스의 엄포에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서희도 남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녀귀신의 될 생각도 없었지만 세월에 치이다 보니 잊고 있었다. 종대가 있었으면 벌써 시집을 가 애를 낳았을 나이였다. 생각해보니 집안에 남자가 있었던 때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3.1운동 때 벌써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서희가 태어나자마자 독립군이 되어 만주로 떠난 뒤 사실상 돌아오지 않았다. 그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 집안에 남자가 어떤 존재인지 서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서희 생각해 봤어?"

"네 좋은 사람이 있으면 시집갈게요"

"어떤 사람이면 좋겠는데?"

"우선 엄마 허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겠지요"

"그리고 조국이나 민족 그런 거 말고 가족이 우선인 사람이면 좋겠어요"


서희가 울고 있었다. 스미스는 두 모녀와의 지난날 그녀들이 울지 않았던 날을 기억하기 어려웠다. 기막혀서 울고, 서러워서 울고, 배고파서 울고, 슬퍼서 울고, 억울해서 울고, 아파서 울고, 살려달라고 울었다.


"서희 왜 울어? 그만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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