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 - 굶주림

From 1919 to 2022

by 시드니


전쟁은 끝났지만, 종대는 돌아오지 않았다. 종대가 떠난 후 서울은 수복되었지만, 다음 해 다시 전선이 밀리자 분옥은 서슴없이 부산으로 떠났다. 서울에서 종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도 생각했지만, 또다시 서희를 두고 아무 대책도 없이 사지에 내몰릴 수는 없었다. 분옥은 살아 있는 것이 만날 수 있는 길이라 믿었다.


서희는 전쟁 통의 부산에서도 학교에 다녔다. 사실 서희가 그리 학교에 다닌 것은 분옥의 극성 때문이었다. 책상이 없어도 칠판이 없어도 분옥은 어디든 학교가 있으면 서희를 무조건 집어넣었다.


"배우다 죽는 일이 있어도 배워야 한다"


분옥은 그것이 이 혼란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분옥은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미군사령부로 가 어렵사리 미군정에서 알았던 스미스 대위를 찾았다.


스미스는 분옥에게 집을 내어 주겠다고 했지만, 분옥은 사양했다. 분옥에게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스미스와 너무 가까워지면 정대의 일이 알려질까 두려웠다.


긴 전쟁이 끝나고 분옥과 서희는 서울로 돌아왔다. 서희는 어느새 열여덟이 되어 숙녀티가 났다. 서희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직장을 가지겠다고 했지만, 분옥은 한마디로 서희의 말을 내쳤다.


"학교는 마쳐라. 네 할아버지는 죽어서도 날 가르치셨다"

"거기까지가 내 할 일이고, 그 다음은 너의 일이다"


대학은 어수선했다. 전쟁 직후의 대학은 선생도 학생도 모두가 어수선했다. 이승만은 4.19를 버티지 못했고, 5·16 쿠데타로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었다. 서희는 그 어수선한 혼란 속에서 어른이 되었다.


서희는 대학을 졸업하고 스미스의 소개로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분옥은 종대의 일이 내심 걱정이었으나, 여자가 대학을 나왔다고 직장을 가지기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분옥은 스미스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서희는 분옥과는 달리 밝고 기가 셌다. 대사관에서 어느 미국 남자들에게도 기가 꺾이지 않았다. 스미스는 서희가 자신의 양딸이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서희는 그런 스미스를 향해 혀를 쏙 내밀고 도망쳤다.


미국 대사관은 한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었다. 담 하나 사이를 두고 모든 것이 달랐다. 그 안은 부자 미국이었고, 문을 나서는 순간 가난한 한국이었다. 한국은 가난한 자도 부자도 모두 빈곤했다. 서희는 대사관에서 남은 음식을 몰래 가져와 분옥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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