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예술의 발견
경기아트센터에서 발간하는 매거진 <예술과 만남> 6+7월호 오피니언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https://www.ggac.or.kr/com/ebook/art156/pdf/art156.pdf
삶이 예술이어야 하는 이유 2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의 삶에 마스크라는 물건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불과 몇 년 후, 예술이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갖게 될 때, 당신은 생존할 것인가 아니면 소멸할 것인가.
발명이 아니라 발견하는 예술
학교에서 생긴 작은 오해로 억울해하는 내 아이를 끝까지 믿고 편들어 주는 일.
가족의 건강을 위해 좋은 재료를 찾아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드는 일들은 꼭 변호사나 요리사가 아니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일상의 한 부분인데 왜 예술만큼은 내가 아닌 특정인의 장르라는 거리감이 드는 것일까? 예술을 우리의 삶과 분리하지 않고 라면을 끓이듯이, 굴러다니는 달력 하나를 휑한 벽에 툭 걸어 놓듯이 쉽게 받아들이고 가볍게 사용할 수는 없을까? 지금까지 예술 없이도 잘 먹고 잘살아온 당신들에게 필자는 왜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고 삶이 예술이어야 한다는 억지스러운 주장을 펼치는 것일까?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이 글은 단지 예술을 사랑하자거나 예술을 익혀서 감성 충만한 사람이 되자는 내용이 아니라 예술 없이 살았던 지난 시절 당신의 삶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정말 이대로 괜찮은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다소 도발적인 글임을 밝혀둔다.
예술은 원래 삶의 기술이다.
예술은 구체적인 쓸모나 실체가 없이도 당신을 기쁘게 할 수 있고 만성두통처럼 늘 달고 살았던 부질없는 걱정을 없애주며 당신이 사는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깨달음을 제공해주는 장치이자 기술이다. 원래 인간은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DNA를 풀(full) 장착하고 태어나지만, 그 DNA들은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거나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한 준비, 다시 말해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사람들이 긴 시간 구축해놓은 가장 실용적이고 손쉬운 방법을 반복해 선택하는 순간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듯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번 사라진 창의적 DNA들을 몸속에 다시 배열하고 재생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편리함을 버리고 불편함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 수 있는 용기와 그 용기가 선물하는 낯설지만 새로운 습관이 결국 다가올 세상에서 자신을 살릴 유일한 무기가 된다는 걸 안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에 스며들어야 가능한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꼭 그런 엄중한 깨달음이 아니더라도 평생 쫓아다니던 돈과 안락, 유희에서 벗어나 뒤늦게라도 예술을 곁에 두고 싶은데 이전엔 고민해보지 않은 영역의 장르라 그런지 도통 좋은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무엇이 예술이고 어디까지를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를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작품만 예술이 아니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고 이름도 묻지 않고 덜컥 손부터 잡을 수는 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느낀 첫인상과 실제 성격과의 차이는 없는지 알아낼 탐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엔 까탈스러워 보였던 사람이 알고 나면 세상 더 없는 다정한 사람인 경우를 우리는 종종 목격하지 않았는가? 예술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충격적인 것이 하나 더 있다. 당신은 몰랐겠지만 우리는 이미 예술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품의 경지에까지 도달하려면 약간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예술 바로 직전 레벨에서 당신들은 이미 만랩이다.
작품에서 받은 예술적 영감을 대중이 쉽게 경험하고 만질 수 있도록 쓰임과 결합해 세상에 내놓는 예술 번역가가 바로 디자이너인데 지금 바로 주위를 둘러보자.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꼼꼼히 살펴보자, 당신을 둘러싼 어느 하나라도 디자인이 없거나 색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있는지를. 그렇게 우리는 평생 색과 모양을 선택하면서 살아왔다, 시장에서 고르는 양말 하나도 모양과 색을 따지기 마련이고 머리카락, 피부, 디저트, 지갑 등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 몸과 삶 구석구석 색과 모양이 아닌 게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세련됨과 촌스러움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 역시 맨 위에서부터 줄기를 타고 내려온 예술의 한 부분이고 존중받아 마땅한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그것조차 예술이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면 마침내 당신이 만만한 예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에 도착했다는 의미이다.
스스로 찾아 즐기지 못하고 의무교육으로만 예술을 접하게 되면 그림을 못 그리거나 노래를 못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자신을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받아들이며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예술로 세상을 촉촉하게 만드는 일엔 직접 행위를 하는 예술가만큼이나 그 예술을 사용하는 예술 소비자가 필요하고 그런 예술 소비의 시작은 사소하고 사사로울수록 좋다는 걸 알아야 한다.
값비싼 화가의 그림이 아니라 형태도 알아볼 수 없는 내 아이의 첫 그림을 액자에 넣어 거실에 걸어두려는 마음,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친근하고 흔한 이미지와 색에 반응하고 그 중 개인적으로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을 기록하고 나열하려는 시도가 바로 당신이 예술을 곁에 둘 자격을 얻게 되는 시작점이다.
예술은 어디에나 있다.
누군가 이름을 부르면 비로소 꽃이 된다고 했던가?
가족, 연인, 버리지 못하는 물건 등 나에게만 소중한 것들을 떠올려 보자
아무리 싹싹한 친구의 동생이라 해도 준 것 없이 밉고 볼 때마다 싸우는 내 동생만큼 각별하고 유일한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 객관화하고 표준화시키기 어려운 예술이 오랜 혼돈의 역사를 뚫고 지금까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남들이 쓰레기라고 불러도 내가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담으면 어느새 예술이 된다는 것. 그것 말고도 예술을 받아들여 당신의 삶을 예술로 물들여야 할 수천 가지 이유가 있는데 작가를 많이 알고 클래식 역사의 계보를 꿰뚫고 있는 것, 그림이나 악기를 다루는 것들은 목록 상위에 포함조차 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동안 당신을 충만하게 했던 돈도, 집도, 차도 아닌, 실용성 제로인 예술에 당신이 매료되었을 때 삶의 기준과 가치관이 이전과는 다르게 변화할 가능성에 있다. 그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예술이나 예술 비스름한 것에 시선을 돌릴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잘 먹고 잘살기 위해 힘을 쏟았던 때처럼 예술을 곁에 두는 일에까지 전투적일 필요는 없다. 그저 해가 질 무렵 동네를 산책하듯 지나가는 풍경처럼 예술을 바라보면서 당신을 반응하게 하는 장르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가를 만나게 될 언젠가를 기다리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삶의 공간 사이사이 당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것들을 글이나 그림, 사진으로 직접 기록하면서 매만지고 감상하다 보면 머지않아 당신의 예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예술은 예술을 즐길 줄 아는 몇몇 사람을 기쁘게 하고 그렇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을 위축시키거나 모욕하기 위해 탄생한 장르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이 먹는 음식, 당신이 하는 일, 당신이 만나는 사람, 당신을 들었다 놨다 하는 감정 속에 예술이 숨어있으니 눈에 힘을 주고 마음을 활짝 열어 발견하면 된다.
<예술을 일상으로 가져오는 다섯 가지 제안>
우선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예술시설의 홈페이지를 찾아 살펴보자.
키워드는 예술, 미술관, 전시, 박물관, 공연장 뭐든 좋다.
우리가 신경도 안 쓰는 사이 얼마나 근사한 전시와 공연들이 다양하게 펼쳐지는지를 알고 나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거장의 작품은 그것대로 깊이와 울림이 있고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은 그것대로 열정과 참신함이 내포되어있으니 예술 초보 단계라면 처음부터 굳이 예술가와 장르를 가리거나 구별할 필요는 없다. 최대한 다양한 예술적 경험을 하고 난 후 자신의 취향에 맞거나 울림을 줬던 작품들을 중심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 몇 가지를 제안한다.
1. 책상 위의 머그잔부터 바꿔보자
-별다방 컵이 아니라 사용자에 대한 고민과 손맛이 담긴 도예가의 컵은 어떨까?
2.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진 예술가들의 시작을 응원해보자
-예술가는 단 1명이라도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포기하지 않는다. 이미 완성된 예술을 탐닉하기보다 서서히 예술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 더 멋지지 않은가?
3. 당신이 서 있는 곳이 곧 당신 삶의 현주소다.
- 지난 시절, 주로 노래방과 카페에 출몰했었다면 이제는 미술관과 공연장이다.
4. 하루에 한 장, 내가 본 것을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해보자. <사진6,7>
하루 단 한 개의 이미지를 선택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지는 물론 의미까지 생각해야 하므로.
5. 내 몸의 낯선 감각과 기능을 자극하자.
당신 집 바로 옆 건물 지하에 예술가의 작업실이 있을지도 모른다. 공방도 좋고 문화센터도 좋으니 더 늙기 전에 새로운 감각과 몸의 기능에 자극을 주자. 당신의 남은 인생을 책임질 당첨 가능성이 꽤 높은 로또가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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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기열
공예, 사진, 글, 음악 등 장르를 망라하는 전방위 예술가이자 이 세상 모두의 삶이 예술이길 응원하는 인문학 강연자이다. 2018 박경림 토크 콘서트의 예술감독을 시작으로 다양한 예술 기반 콘텐츠에 참여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오은영 박사의 강연 “육아 처방전_훈육의 새로 고침‘을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