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6 댓글 7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Sugar를 듣고 어떻게 안 뛸 수가 있겠어?

하루키와 나는 닮은 점이 참 많아!

by 연우맘 Sep 01. 2024

Sugar~

어떻게 이 대목에서 안 뛸 수가 있을까? 내 귀에 당 충전이 되었으니 다시 뛰기 시작한다. 어제의 실패를 딛고 나는 오늘도 다시 금강 변에서 마라톤 연습을 하고 있다.


어제보다는 더운 아침이다. 어제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딸의 mp3를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마라톤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기록이 좀처럼 줄지 않아 도움이 될만한 게 없을까 했는데 1Q84를 읽다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달리기에 진심이라는 것을 어찌어찌 알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라고 얘기하면 내가 그와 동급이 되는 것 같아 몹시 쑥스럽지만 좋아하는 작가가 마라톤도 열심이라고 하니 같은 부류인 거 같아 여하튼 좋았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을 바로 사서 읽으니 나는 여자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당연히 단계가 한참 낮은 단계의….


하루키가 달리기 할 때 음악을 들으면서 달린다고 해서 나도 도움을 좀 받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그동안 딸의 재생목록에 담아줬던 음악들이 하나하나 흘러나왔는데 어떤 곡은 박자와 발의 속도가 맞지 않아 이게 뛰는 건지 걷는 건지 삭제해버리고 싶은 곡들도 있었다. 코니 탤벗의 <count on me>가 one, two, three를 카운트하고 있었지만 이곡은 three 다음의 숫자들을 불러주지 않아서 그냥 즐겁기만 했다.

그다음엔 뭔 곡이려나 했더니만 정성하의 <Canon rock>이 나왔다.

이 곡을 듣고 걷는다면 유죄! 하루키는 마라톤을 하는 동안 절대 걷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이 규칙이다. 만약 자신이 정한 규칙을 한 번이라도 깨트린다면 앞으로도 다시 규칙을 깨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은 아마도 어렵게 될 것이다.”

하루키의 규칙은 절대 걷지 않는 거라지만 나의 달리기 규칙은 중간에 반드시 걸어주기이다. 그렇지 않으면 10킬로를 절대 완주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빠른 비트의 캐논락을 들으면 조금은 빠르게 뛰었기 때문에 잠시 쉴까 했더니만 마룬 5의 <Sugar>가 흘러나온다.


이 노래도 만만치 않게 중독적이다. 설탕을 계속 외쳐대지만 나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빠른 박자에 맞춰 조금이라도 기록을 단축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루키는 달리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공복 상태로 나와 뛰고 있지만 배고프지도 않았고(어제저녁에 오늘 아침 달리기를 위하여 많이 먹어서인지) 설탕이나 초콜릿처럼 달달한 음식은 더더군다나 생각나지도 않았다. 오로지 10킬로를 뛰고 다리를 멈추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루키도 같은 대답이었다.


귀에 설탕으로 범벅이를 제대로 하고 느린 곡에서는 걸어주었다.

Fools garden의 <레몬트리>도 흘러나온다. 어머낫! 오늘 내 상의가 레몬빛 크롭탑이었다. 이때쯤에 팔을 위로 쭉 뻗어 스트레칭도 하고 올라간 티 사이로 바람도 시원하게 집어넣어 주었다. 움직이지 않고 피곤하다고 침대에만 누워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레몬트리의 가사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는 이렇게 나와서 비록 다리와 심장은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비행기 드론과 같이 날아가는 새떼의 멋진 광경도 보고, 땀도 한 바가지 흘리는 보람찬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undefined
undefined

음악에 취해 기록을 단축해야 한다는 것도 잊다 보니 뮤지컬 안중근의 <단지동맹>이 흘러나온다. 안중근과 그 독립투사들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맹세를 했다지만 나는 꼭 1시간 30분 안에 10킬로를 완주하겠다는 새끼손가락 건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금강신관공원을 2바퀴 돌아도 10킬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나처럼 뛰는 사람은 10명 중 2명꼴인 것 같았다. 다 내 앞을 스쳐 지나간다. 걷고 계시는 분들은 열심히 팔을 휘둘러가며 속도의 흔들림 없이 가고 계셨다. 몇몇 지인들은 요가하고 달리기 하는 나를 보고 100살 넘게 살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저스틴 비버의 <Love youself>가 흘러나오는데 딱 들려주고 싶은 노래이다. 하루키도 그런 얘기 참 많이 들었나 보다.

“설령 오래 살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라고 책에 쓰여 있다.


또 한 번 나와 일치하는 하루키! 요가를 하고, 달리기를 하면서 정신력이 많이 강해진 걸 느낀다. 참을성도 늘었고 허벅지에 미세하게 근육이 한 올 한 올 단단해지고 있는 걸 만져보면 단박에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 달리는 걸 부러워하지 말고, 얼마나 오래 살까 비아냥이 섞인 가식 칭찬 말고, 지금 당장 조금이라도 뛰고 걷거나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고 돌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루키랑 나랑 노래랑 맞아떨어지는 게 참 많네…. 그런데 1시간 30분은 점점 다가오는데 10킬로에 다다르려면 아직 1.2킬로가 남았고 기분이 몹시 말이 아니었을 무렵 주토피아의 <Try everything>이 흘러나온다. 실수를 더 많이 해도 실수로부터 배우고 포기하지 말라고 주문 같은 가사가 나오지만 이미 1시간 30분은 넘어섰고 나는 10킬로를 뛰지 못했다.     


노래에 너무 심취했나, 하루키와 비교하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너무 많이 한 것인지 오늘은 실수가 아니라 잘못 뛴 것이다. 하루키와 내가 공통점이 참 많지만 (혼자 일하는 걸 즐겨한다든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달리는 일이 성격에 맞는다는 것 등….)

한 가지 안 맞는 게 있다면 음악을 들으면서 뛰는 것이었다. 나는 그냥 내 호흡에 맞게 뛰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하루키가 좋다. 10킬로를 시간 안에 완주해서 메달을 걸고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같은 나만의 글을 몇 년은 더 쓰고 싶다는 희망찬 마음 한가득에 기름칠이 덜 된 삐걱거리는 허벅다리를 겨우겨우 들어 올리며 집에 돌아가는 길 위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주 동물원 옆 전주 도서관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