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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Oct 07. 2024

1년 동안 240회의 요가수업에 갔습니다.(주말제외)

잠시 후 저녁 8시면 요가 수강권의 마지막 횟수 100회를 채우러 난 또 요가학원에 간다. 오늘 아침에도 하타요가를 다녀왔다. 80분의 깊은 수련이었다. 얼굴 뻘게져서 다녀오니 딸아이가

“깊은 수련 잘하고 왔어?”

“너무 깊어서 못 빠져나올 뻔했어.”


대미를 장식하는 오늘의 수업은 히말라야빈야사이다. 그리고 오늘이 요가를 시작한 지 대략 1년이 되는 날이다.


작년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나서 등록한 게 생생히 기억난다. 요가에 원래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고 사실은 헬스장 다니는 것도 지겹고 공산성도 매일 같은 길이니 나를 더는 자극시켜 주질 않아 다른 다이어트의 방법을 찾아보다가 출퇴근 길에 보이는 요가원에 덜컥 등록해 버린 것이다.


내 몸이 어느 정도는 뻣뻣한 건 알고 있었지만, 거의 각목 수준인 것과 잘못된 자세와 긴장으로 단단하게 뭉치고 굽은 어깨, 절대 늘어나지 않는 햄스트링 등으로 선생님들도 이 회원이 과연 한 달이나 제대로 버티고 다닐 수 있을까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필라테스&요가 20회를 시작으로 그다음에는 요가만 60회를 두 번 더 신청했고 2024년에는 100회권을 등록해서 오늘로써 마무리되는 날인 것이다.


축배의 아아라도 마셔야 하는 것인가!


만약 요가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난 그 시간 동안 뭐 하고 살았을까?

퇴근 후 5시에 집에 돌아와 매일같이 똑같은 설거지와 집 안 청소, 아이 공부시키다가 티격태격하겠고 누워서 유튜브 기웃거리다 얼굴에 폰을 정통으로 떨어트리고 곯아떨어져 잠이 들었을 게 뻔하다.


목이 늘어난 티와 거의 잠옷 수준의 반바지를 대충 입고 학원에 가서 남들 시선 의식하지 않고 그냥 열심히만 했다.


 에피소드도 참 많았다. 스트랩으로 후굴을 시도하다 갈비에 2개의 금도 가고 요가에 너무 푹 빠져 제주와 서울로 요가클래스도 쫓아다녔다. 잘 갖춰 입으면 좀 더 잘할 수 있으려나 싶어서 옷장 속을 색색의 요가복으로 다시 채우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과 쉽게 친해지지 못한 내가 성격도 서글서글해져서 학원 원장님, 선생님 그리고 같은 회원님들과 인사하고, 수업 시작 전에 담소도 나누는 그런…. 약간은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는 편안한 면도 갖추게 되었다.


집에 갇혀 있었음 가족에게 더 신경 써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 자신에게는 무관심하고 눈길도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요가를 1년 동안 한 지금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 줘서 고맙다. 가족에게도 가끔 말한다.

요가하게 허락해 줘서 고맙다고.(허락 안해줘도 다녔을 나이지만!)


우스갯소리로 머리 서기를 할 수 있는 날 요가학원을 그만두겠다고 종종 말하곤 했는데 그만두지 말라는 신의 계시인가, 나는 아직도 머리 서기를 못 한다. 그것만 못하는 게 아니다. 대나무에서 벗어나서 조금은 휘어지는 개나리 나뭇가지 정도로는 변하긴 했지만, 갈대처럼 구부러지려면 10년은 더 다녀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나는 무제한 횟수 등록을 했다. 체력만 된다면 하루에 10번이고 요가수업을 들을 수 있다. (사실 수업 1번만 들어도 토할 정도로 힘들고 하루에 요가수업은 5개라는 게 함정).


지금은 딸아이와 특급과외 시간 – 영어독해 : 기회의 신 카이로스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를 가르쳐주면서 또 일장 연설부터 시작한다.


“너도 기회를 잘 잡아. 지금 이렇게 엄마가 후원해 주고 가르쳐줄 때 엄마 맘껏 활용해서 공부해.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면 국물도 없어. 내가 다른데 돈은 아껴도 요가랑 너 공부하는데 아끼진 않을게. 단 학원, 과외는 못 보내. 문제집은 다 사줄 수 있어. 대학교 가면 그때부터는 우리 각자 살자. 엄마는 요가원 차려서 더 재밌게 살 거야. 기회 잘 잡아.”


100번도 넘게 들은 잔소리에 딸아이가 공부 시작 전부터 반감의 눈빛을 나에게 보낸다.     


나도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늘부터 요가학원에 직원처럼 출근을 매일 해서 이번 겨울 즈음에는 자격증을 하나 따고 싶다. 그전에 머리 서기도 벽 대고 말고 그냥 내 힘으로 해내고 싶다. 자격증 코스를 여럿 밟고 나서 내 집에서 나 혼자 수련하기 심심하니 이웃주민 중 요가 배우고 싶은 사람 1~2명 불러서 운동시켜 주고 다이어트 비법 전수해서 살 빼주고 인생의 참다운 재미를 소소하게 같이 공유하고 싶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기회가 왔음을 여자의 육감으로 확! 느낄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잘 안 되고 힘들어도, 다리가 찢어지지 않아도 요가 다닌다고 집안 꼴이 엉망이 되어도, 멈추지 말고 나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요가를 쭉 다니라고 기회의 신이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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