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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Oct 0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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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의 첫 번째 날, 그리고 6일 후면 마라톤...

오늘은 금강공원을 뛰지 않고 도로 주행에 나섰다. 차도 옆 인도에서 발길이 닿는 데로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금강 주변을 도는 공원트랙도 훌륭한 코스지만 이것도 벌써 익숙해졌는지 점점 재미가 떨어진다. 힘들게 뛰는 훈련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색다르고 재미있게 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접 실전 코스에 나서봐야 알 것 같았다.

며칠 전 도착한 팜플렛에 코스는 나와 있었지만, 길치인 나에겐 알아보기가 어려웠고 그렇다고 네이버 지도앱 켜고 보면서 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을 알기에 일차적으로는 10킬로를 뛰는 것을 목표로 삼고 발걸음을 떼었다.


새벽 5시 30분 출발! 옆으로 쌩쌩 지나가는 차들 옆에서 달리는 나란 여자 참 멋지다. 고가도로 다리 위에서 강을 바라보며 달리는데 떠오르는 해와 주위가 점점 환해져 오는 영상을 혼자 독점해 보다니 내가 더 대단해 보였다. 감성이 충만해져서 잠시 멈추고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지금은 이성을 찾고 기록을 1초라도 단축해야 할 때였다.  


금강 다리를 건너고 어디로 갈까 발걸음이 주춤주춤 하다가 그래! 딸이 다니는 학교까지 가보기로 했다. 똑똑이 내 딸은 3학년 말부터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한다. 처음 한 번만 같이 가보고 그다음부터는 혼자 다녔다. 아침 시간에는 중고등 언니, 오빠들과 혼잡한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릴 때도 있지만 여태껏 잘 다녀주고 있는 기특한 딸이다. 심지어 요즘은 지옥 버스를 안 타려고 아침 7시 5분 정도면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나간다.


공개수업, 학부모 상담 때도 안 와봤던 딸의 학교를 마라톤 연습한다고 와본다. 달리면서 학교를 향해 가고 있는 기분이 웃기기도 묘하기도 하고 아침에 더 잘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이 빙빙 머리에 돈다. 뱅뱅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우리 딸은 무슨 생각을 하며 학교에 갔을까? 기분 좋게 현관문에서 인사를 할 때와 아침부터 한 소리 듣고 버스를 탔을 때 분명 다른 차창 밖 풍경이 달리 보였으리라. 앞으로는 되도록 아침에는 웃으면서 파이팅 하고 학교에 보내야겠다.  

다행히 지금 나의 기분은 괜찮았다. 처음 새로운 코스로 달려보니 신선하기도 했고 평소에 북적이던 산성시장 옆 도로도 한산하니 명절인 게 잘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공복 상태의 러닝에 적응됐다고 여겼는데…!


아뿔싸! 시장 옆 온갖 종류의 식당들, 카페, 분식집, 도너츠 가게, 빵집…. 당연히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때마침 갑자기 뱃속에서 꼬르륵의 신호탄이 터졌고, 그냥 막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어졌다. 그때부터 나는 ‘그래, 저기 카페까지 가서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면서 조금 걷자.’ 그리고는 출입문에 도착해서 눈으로 아아를 한번에 들이키고 그 앞을 지나갔다. 빈속에 아메리카노를 마시니 뭔가 기름지고 묵직한 것이 먹고 싶어졌다. 원래 한식이나 매콤한 것을 거의 먹지 않고 싫어하기까지 하는데 순두부찌개, 아귀찜, 얼큰이 칼국수 이런 간판만 눈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손이 달달 떨려오기 시작했다.

‘아! 사탕이라도 챙겨 나올걸!’

해가 다 떠서 벌써 더워지고 겨드랑이와 가슴 앞의 옷은 다 젖은 지 오래됐을 즈음 <눈꽃빙수>라고 광고판이 걸린 카페를 지나가게 되었다. 경기를 잘 마무리하고 눈여겨뒀던(그리고 한 번도 실물로는 보지 못했던) 공주의 명물 김피탕을 먹고 후식으로 눈꽃빙수로 마무리를 해야지 하며 메뉴구상에 잠시 힘든 것을 잊었다.


그렇게 나는 음식점 간판을 보며 저기 해장국집까지 뛰고 걷자, 떡집까지 뛰고 떡 구경 좀 하면서 걷자면서 눈으로 온갖 음식을 먹으면서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했다.

드디어 딸의 학교 앞에 도착! 증거를 남기기 위해 먼저 할머니 댁에 간 아빠랑 딸에게 자랑을 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평소에는 얼씬도 안 하던 찌개, 중식류, 분식집이 눈에 들어오는 게 신기했다. 내 식성대로라면 카페에서 아메리카노와 티라미수 같은 부드럽고 달콤한 것들에 더 눈길이 갔을 텐데 말이다.     


달리기라는 게 참 묘하다. 요가와는 또 다르다. 요가는 그 동작을 해내기 위해 잡생각을 안 하는데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수많은 주제를 붙잡고 생각을 하면서 뛴다. 인간관계, 앞으로의 나의 미래, 사춘기인 딸과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까, 다음 주에 있을 공개수업은 과연 각본대로 제대로 될까, 달리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어디를 어떤 순서로 청소해야겠다는 등 평소에는 사는 게 바빠서 아무 생각 없이 눈앞에 닥치는 대로 하던 것들을 다리는 바쁘게 움직이면서 차근차근 머릿속에서 정리하게 된다.

물론 힘들어 죽겠다는 생각이 90% 이지만.     


보통의 나라면 하지 않던 것들을 달린 덕분에 딸의 학교까지 와보고, 딸의 아침 시선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달리기도 마라톤을 신청하기 전까지는 내가 알지 못하고 감히 도전해 볼 상상도 못 했던 미지의 영역이었다. 덜컥 접수하고 주말마다 러닝을 하면서 단축되지 않는 기록과 점점 심해지는 발목 통증에 왜 돈 들여 사서 고생하나 이런 생각도 절반이지만 지금 내 나이에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음에 그리고 뛰고 나면 안 뛴 사람은 모를 기분 좋은 에너지가 몸을 구석구석 흐른다.


셀 수 없이 많은 운동이 있고 각자에게 맞는 종목이 있다지만 처음부터 운명처럼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가도 처음에는 나의 딱딱한 몸과 맞지 않아 낯설고 창피했다. 그렇지만 요즘은 요가 강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을 정도로 과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달리기도 중고등학생 때 제일 싫어하는 체육 시간 활동이었는데 다음에는 어디 마라톤에 신청할까? 다음에는 21킬로 도전을 해볼까... 또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면서 고관절이 아파 울상을  집에 겨우 돌아왔다.

눈으로 온갖 종류의 식당에 들어가 그림의 떡을 잔뜩 먹어서인지 막상 집에 오니 수저를 들어 올릴 힘도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오늘도 해냈으니까, 시간 안에 못 들어오면 어때!(라고 위안을 삼고 싶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사실!)


내일은 하루 쉬어야지 하면서 또 하루 해냈고, 안 가본 길을 가봤고, 아직 오지 않은 나의 미래를 잠시나마 생각하면서 하루를 열었으니 이렇게라도 기록으로 남겨 나중에 뛰기 싫을 때 꺼내어 읽어보려 한다. 뛰면서 가보지 않은 세계를 더 멀리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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