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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Oct 22. 2023

쟁여두고 쌓아두고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물건 정리는 분류에서부터 시작된다. 

필기구를 예로 들자면 

연필, 볼펜, 색연필, 사인펜으로 분류해서 

칸칸이 정리하는 거다. 

옷도 시즌별로 또는 상의, 하의, 또는 색깔별로 한다. 

이렇듯, 분류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정리하기 쉽게 보편적이고 직관적이면 좋지만 

어디까지나 개인 공간의 기준은 

사용자가 가장 편한 기준을 따르면 된다. 


물건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정리의 기술이 필요하다. 

대저택에 산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순간 찾기 쉬워야 하기 때문에 

정리를 하지 않아서 찾아 쓸 수 없다면 

사물의 가치는 뚝 떨어진다. 


정리를 가장 심미적으로 잘하는 곳은 어딜까? 

모든 것이 죄다 좋게 보이는 

마법의 명품관이나 럭셔리 편집샵이 있다. 

이런 곳을 제외하고 조금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장소를 고르자면 

내 생각에는 박물관인 듯하다. 


역사를 두고 쌓인 수집 물들을 

주제에 따라 기획하고 선별해서 

가치를 돋보이도록 정리하고 진열하는  그 일이

예술 아닌가 싶을 정도다. 

거기에 사물에 담긴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주니

설명을 읽기 전과 후의 사물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 전환이 재밌어 박물관 가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박물관도 있었다.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던 탓에 실망 또한 컸던 곳이다. 

바로 이집트 국립 박물관이었다. 

사람들이 자주 가는 길목에는 그럴듯하게 보였지만 

구석구석으로는 한탄이 나올 정도였다. 

미라가 누워 있는 관이 삐뚤빼뚤 쌓여 있었고 

설명과 이름도 없는 유물들이 뿌연 보호 유리막에 

먼지덩이와 함께 마구잡이로 해쳐 모여있었다. 

그저 수집하고 쌓아두기만 한다고 전부가 아닐 텐데.. 




세상에 이런 일에 자주 등장하는 '저장강박증'을 앓던 예술가도 있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이 그 주인공이다. 

뉴욕의 5층짜리 아파트를 홀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의 광적인 수집으로 방 2개를 겨우 사용할 뿐이었다고 한다. 


그와 비슷한 증상을 가진 사람이 내 주변에도 있었다. 

아버지를 강제로 입원시켰다는 억울함으로 한동안 괴로워했던 지인이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합세해서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려고 119를 불렀고 

아버지의 의사는 무시한 채 정신 병원 치료받도록 조치했다. 

그녀는 고모와 아버지 쪽 친척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다. 

특히 고모는 유산과 보험이라는 엉뚱한 프레임을 드리 밀어 

그녀를 무척 괴롭혔다. 

그녀는 모든 질타를 견디다가 

결국 사진과 동영상을 친척들에게 공개했다. 

강남의 고급 아파트가 온갖 잡동사니와 쓰레기로 가득했다.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재활용으로 

버려진 제품들이 아깝다고 하나둘씩 가져오더니 

찢어진 소쿠리까지 들고 오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어머니는 밤새 버리고 아버지는 다음 날 또다시 들이 고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어머니가 넘어져 다리를 다치면서 거동이 예전만큼 자유롭지 못하게 되자 

집은 급속도로 쓰레기로 가득해졌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비밀을 타지에서 일하는 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당신도 견딜 수가 없어 딸에게 아버지의 마음의 병을 털어놓았고 

딸은 응급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녀 역시 친척들에게 깔끔하고 지적이고 멋진 아버지의 과거 모습을 

지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얼토당토않은 비난에도 참고 참았겠지.... 



저장은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래를 알 수 없으니 계획하고 준비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니까. 

엄마들이 친구들과 여행 갈 때 평소에 먹지도 않는 음식을 

냉장고에 꽉꽉 채우는 거나 

다람쥐가 자신의 집에 도토리를 한가득 쌓아 두는 일이나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이는 자신과 가족 구성원의 생존을 위한 아주 본능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이게 도를 넘어서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언젠가 쓸 것 같다는 실용적인 생각으로 보관을 하는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저장하기 대문이다. 

이 '언젠가'라는 것은 결코 오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95% 이상이 일어나지도 않는 잡생각이며 

이런 잡념으로 미래의 불안을 미리 끌어와 현재를 소진하고 있다. 

그리고 또 '언젠가'가 진짜로 온다면 그때 해결해도 된다. 

저장만으로는 절대 현재의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다. 


그리고 과거의 결핍이 있던 때로 마음이 고착된 경우에도 

저장강박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지인의 아버지는 은퇴하고 딸이 타지로 나가면서 

마음의 공허함을 물건으로 메꾸려 하다가 

마음이 과거의 궁핍했던 시절로 데리고 가 

그곳에 머물러 버렸던 거다. 

현재의 공허함을 추억으로 메꾸려다가 

마음이 비탈길로 미끄러진 경우다. 


나 역시 쟁여두기 달인이었다. 

2+1의 유혹에 번번이 넘어가는 충실한 호구였고 

주인장들의 반값과 깎아주기와 세일의 최면에 

눈동자 빙글빙글 돌리며 카드를 긁어댔다. 

그렇게 해도 사실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 모든 걸 소화해 낼 소비력의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3일에 한 번씩 마트에 들러 카트 한가득 채워 집으로 옮겨와 

냉장고와 생필품 수납장에 챙겨 두어야 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소비력이 사라진 지금, 

나는 마트에서 내 개인 장바구니를 들고 간다. 

딱 내가 들고 올 수 있을 만큼만 구입한다. 

들고 오는 게 힘드니 물건도 적게 사게 된다.

전에는 마트 가는 일이 그야말로 일이었는데 

이제는 산책 삼아 운동 삼아 다닌다. 

낭비도 멈추고 운동도 하고 이런 게 일석이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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