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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Oct 03. 2024

옷이 없어!

옷, 그것이 뭐가 중헌디? 


폭염의 연속이다. 

오래전에 사라진 장마는 국지성 소나기가 되어 시도 때도 없이 공기를 한증막으로 만든다. 폭염 주의보와 함께 낮의 외부 활동을 자제하라는 안전 재난 문자가 매일 온다. 하지만 나는 나가야 한다. 이대로 러닝 대회에 참가한다면 출발을 알리는 신호와 동시에 응급실로 바로 실려 갈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민폐를 보이면 안 된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새벽이나 밤에 나가는 건 어떨까? 아침형 인간이니 새벽이 좋겠네. 눈을 뜨면 핸드폰 만지작거리다 한 시간 훌떡 보내고 마는데, 그 대신 잠결에 미친 듯 몽유병 환자인 듯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내가 나를 속여 보자.     


그런데 뭘 입어야 하지? 

운동복 종류의 옷들을 다 꺼내 본다. 에슬릿 룩이라고 유행하며 요가복으로 잘 입었던 쫙 붙는 레깅스를 꺼내 입어 본다. 하…. 이건 아니다. 요즘에는 이런 옷 입고 등산도 간다고 하던데, 나는 이렇게 몸매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용기가 전혀 없다. 나 편하고 나 좋으면 그만이라는 요즘 트렌드와 반대로, 난 누군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민망한 시선을 처리할 감정적 용기가 없다. 차라리 반바지를? 그래, 구매한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스포츠 브랜드 반바지와 아이가 초등학교 때 입었던 체육복이 있다. 이 두 개면 충분하다.      


그럼, 상의는? 

가느다라면서도 잔 근육이 보기 좋게 올라온 러너들이 민소매를 입은 모습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멋지다. 그런데 나는? 고개를 절래 절래 돌린다. 이번에도 아이들이 남기고 간 옷들을 뒤져본다. 고개를 올려다봐야 보이는 아이들의 옷은 나에게 완벽한 오버핏이다. 걸쳐 보니 허벅지 중간정도까지 내려온다. 그런데 팔을 흔들어 보니 뭔가 걸리적 거린다. 재단 가위를 들었다. 소매를 잘라낼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나처럼 아들 둘을 다 키우신 연세 지긋하시지만 엄청 세련되게 스타일 좋으신 작가님이 나에게 반농담으로 던진 말이 떠올랐다.      


‘아들들이 남기고 간 옷, 편하다고 막 걸쳐 입지 마, 그때부터 진짜 아줌마 되는 거니까, 뭘 하든 잘 차려입어야지 대우도 받는 거야.’     

 

그분이 이런 나를 보면 미간에 인상을 찌푸리며 궁상맞다고 놀릴지도 모르겠다.

나도 스포츠 브랜드 화보 속의 인간들처럼 멋지게 차려입고는 싶은데, 과연 내가 얼마나 이 취미를 유지할지도 모르겠고, 뭘 시작하기도 전에 지름신이 자주 내려와 잘 사두고 쟁여두고 안 쓴 물건이 많아서 클릭 하나로 끝내는 쇼핑을 극도로 자제하고는 있는 중이다. 


스타일도 몸매도 관리의 영역인 건 맞는데, 운동복을 새로 사 입어야 하나? 아주 오래간만에 모이는 허영과 허풍이 뒤범벅된 동창회에 초대라도 된 듯, 다음날 무조건 눈 딱 감고 뛰어 나가라고 해 놓고는 옷을 걱정했다. 산넘어 산, 이제는 옷을 핑계로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건가...     


‘아냐, 옷이 뭐가 중해? 우선 달려 보는 게 중요하지.' 



쏜살같이 달려 버려!


 내 몸 어딘가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군살들은 타인의 눈에 들어갈 틈은 분명 없을 거다. 핑계 만들지 말고 무조건 눈 딱 감고 뛰어 나가기로 결심했다. 결심 끝에 입고 나갈 옷을 미리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참 어색하다. 이 몸으로 반백 년을 살았는데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건 내 얼굴 모양새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렇게 생겼나? 내 몸이 이런 모양이었나? 

팔자 주름과 미간 주름이 깊어졌고, 볼은 쏙 들어갔고, 잘못된 자세로 오래 앉아 있던 탓인지 어깨 수평도 맞지 않고 앞으로 굽기까지 했다. 커다란 외계인이 내 어깨를 잡고 앞뒤 옆으로 비틀었다가 제자리로 맞춰 놓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 것 같다. 여성의 생애 주기 표에 나오는 할머니 체형이 되는 것 같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면서 어깨와 허리가 굽고 엉덩이는 뒤로 빠져 있다. 지구의 중력을 버티며 살아온 반백 년 동안 뒤틀리고 비틀린 내 몸이 적나라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무관심과 무신경 속에 이렇게 변해 버렸네. 직관한 내 몸이 만족스럽지 않다. 이제는 머릿속에도 가슴속에도 운동해야 할 이유가 이제는 차고 넘친다. 옷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의 자세와 건강이 심각해졌다. 


뛰어 나 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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