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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Sep 30. 2024

현관문 앞에 놓인 결승선

그냥 뛰어 보는 거 어때?

지하 1층에 주민 커뮤니티에서 운영하는 헬스장이 있다.

헬스장의 사용료와 유지비는 관리비에 포함되어 있기에 유료인 듯 무료인 운동 공간이다. 이곳에 산 횟수가 열 손가락이 다 채워져 가는데, 1년 전에 처음 내려가 봤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체형이 점점 외계인처럼 변해가고 있었고, 무엇 보다 고관절에 살짝 문제가 온 듯했다. 업계 직업명인 거북목과 어깨 결림과 손목통증은 이제 특징점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내 일상의 동반자가 되었지만, 배볼록 체형만큼은 봐주기 어려웠다. 거기에 더해  불균형한 자세로 몸이 틀어지고 있었다. 스트레칭을 하고 요가를 해도 통증까지는 아니지만, 은근히 신경 쓰이는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루의 작업을 끝내고 책상에서 일어나면 몸에서는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입에서는 곡소리가 나왔다.


결국, 몇 번의 심호흡과 다짐 끝에 헬스장으로 내려갔었다.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바로 올라왔더랬다. 엘리베이터에서 몇 번 스쳐봤던 맑은 눈의 한 여성분이 헬스장에서 나를 보고 너무 반갑게 웃어서였다. 나는 그녀의 독특한 해맑음을 바로 알아챘다. 움찔! 머릿속 알람이 울렸다. 여러 경로로 익히 들었던, 거의 스토커 수준의 사교성을 해맑게 앞세우는 유명한 오지라퍼였다. 그녀의 맑은 눈빛이 내 움직임을 계속 따라다녔지만, 나는 누구를 찾는 듯한 제스처를 어색하게 연기하며 바로 나와 버렸다. 이후 내 운동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코로나 시절 바디 프로필과 오운완이라는 키워드로 도배되었던 소셜미디어는 골프를 지나 러닝과 마라톤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대회 날까지 얼마나 남았지?

영상의 많은 고수들은 실외 러닝을 하기 전에 실내 러닝머신에서 호흡과 자세를 가다듬고 자신의 속도와 체력을 우선은 체크해 보라고 권장했다. 하지만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지하 1층에 내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외부와의 접점만큼은 자유롭게 선택하고 싶은 지극히 내향적인 고집이기도 했다. 하지만 밖은 30도에서 35도를 오가고 있었다.


‘이런 폭염에 뛰는 건 미친 거 아닌가? 사상체질 검사에서 나 같은 체질은 땀이 곧 피라서 땀을 많이 흘리는 게 좋지 않다고 했는데…. 날이 선선해지면 그때 시작해도…?’     


나, 정말 운동을 싫어하는구나!      


무엇인가를 도전하면 거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한다.

지금까지 나 자신은 밖으로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건 어디까지나 사회적 가면을 쓴 나였다. 그 가면을 벗고 나니 나는 혼자서도 너무나 잘 놀고, 혼자서도 24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완벽한 집순이의 모습을 발견했다. 작업실-집- 서점이 전부였던 생활에서 작업실을 없애고 난 후로는 나에게 외출은 서점과 도서관이 거의 전부다. 해외 체류 하던 시절, 출장과 미팅이 많았던 때가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흐릿하고 기억 속의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의심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서울로 돌아와 정착한 이후로 돈 좀 덜 벌어도 될 수 있으면 혼자 해 나가는 직업과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하고 도시의 익명을 유유히 즐기며 살았는데....  왜 어쩌다 이토록 무모한 결정을 내리고 그 앞에서 쩔쩔매고 있을까?

환불도 뭔가 께름칙하다. 이미 물은 쏟아졌는데 그걸 양말을 벗어 닦아내고 젖은 양말을 다시 신는 느낌이랄까? 이래도 저래도 찝찝하다.     



이 기분과 생각을 없앨 단 하나의 방법은 집을 뛰쳐나가 달리는 거다. 그냥 하면 된다.

생각과 꾀가 많아지는 만큼 몸도 무거워지고 느려진다. 더 무거워지기 전에 억지로라도 나가야 한다.  


'애착 인간 동생이 없어도 나 충분히 혼자 뛸 수 있지 않니?'


새로운 환경에 뚝 떨어져도 언제든 잘 적응해서 잘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는 걸 어려워하는 걸까? 이 또한 전생의 기억처럼 떠오른 누군가의 내 사주 풀이가 기억났다.     

 

‘하기 싫은 걸 하면 잘 되는 팔자야’      


하기 싫은 거 지금까지 타협하며 절충하며 해왔는데 내 인생 잘 돌아가고 있는 건가? 이런 생각 끝에 솔직히 마라톤이 정말 싫은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생각 많은 무거운 머리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뿐이다.


'머릿속 무거운 잡념을 글로 쏟아 내고 가볍게 뛰어 보는 건 어때? '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만 하면 두 팔 벌리고 결승선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 굳건히 믿었지만 내 몸은 여전히 설득되지 못한 채, 집에 틀어박혀 고집을 부리고 있다.


"마라톤 힘들겠지? 그럼 조깅은 어때? 조깅도 싫다고? 그럼 빠르게 걷기는 어때?"

"응, 그건 좀 할 만할 것 같은데?"

"그럼 10km를 빠르게 걸으면 되잖아"


책상에서 현관문으로 발걸음이 거의 다 왔다. 이제 박차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


'요것 봐라, 안 한다 못한다 하더니 여차하면 뛰어나가겠는데, 거의 다 넘어왔어.

자, 이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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