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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Sep 26. 2024

뱉은 말의 대가

어쩌다 만난 달리기


올해 초, 가족에게 사고가 일어났다.

사건의 시작점만 기억될 뿐 그 이후 연쇄적으로 일어난 일은 시간의 앞뒤가 구분되지 않았다.

시간과 기억만 무너진 게 아니었다. 켜켜이 쌓여가는 사건에 반응했던 내 감정은 층조차 구분이 안 되는 커다란 진흙 덩어리가 되었다. 유리 심장이 진흙으로 채워지자 외부 자극에 조금은 무뎌져 버틸 수 있을 거라며 혼자 위로랍시고  수습에 우선 나섰다. 힘들 때면 기록에 집착한다. 애써 브런치에 몇 번 글을 올리며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야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글을 써나가다가 어느 순간 그 끈마저 잡고 있을 수 없었다. 강박의 습관조차 깨져 버린 커다란 사건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생과 죽음, 찰나와 억겁이 무한히 반복되는 굴레에서 벗어난 듯했다.

누군가는 발전 없이 제자리로 돌아갔고, 누군가는 같은 자리에 맴돌며 투덜거리기만 했고, 누군가는 초지일관 무관심으로 대응했고, 누군가는 깨달음의 변화를 몸소 실천하려 했다.  

   

나는 모든 관계와 사건에서 물리적 거리를 두며 일상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나에게 사람 만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고 마음의 결심이 필요한 행동이다. 아이러니하게 이 사건은 친구와 지인들의 만남을 적당히 거절할 수 있는 핑계로 좋았다. 그 덕분에 도심을 헤매다 보고 싶다고 연락하는 영혼에게 조차 ‘약속 사절’의 입간판을 내보이며 혼자 침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 인식의 오류였는지 해결 방법의 문제였는지 일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일이 없는 대부분 시간동안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침실 침대와 거실 소파를 왕복하는 게 전부였다. 마음속의 진흙 덩어리를 소화하든 토해내든 제거하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왔지만, 생각만 있을 뿐 의지가 약했다. 나약하고 게으른 합리화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때를 기다릴 뿐이었다. 해가 쨍쨍 나면 진흙이 바싹하게 마르고 다정한 바람이 불면 먼지가 되어 사라질 거라 안일하게 기대했다. 점점 더 소파와 물아일체 되어 무의미한 스마트 폰 영상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들이 많아졌고, 마감이 임박해서야 솟아 나는 도파민으로 일을 처리한 후에, 다시 훅 꺼지는 불꽃이 되어 소파에 늘어져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이렇게만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고  꽉 쥔 주먹 같은 단단한 울분이 불쑥 올라왔다. 누웠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괜스레 청소기를 돌리고 책들을 정리하다가도 반 시간도 못 버티고 등을 대고 누워 버렸다. 생각과 감정에서 도망간 곳은 스마트 폰 속 세상이었다. 도망간 곳에 천국이 있을 리가…. 무의미하게 유튜브 릴스나 인스타그램 피드를 휙휙 올려 볼 뿐이었다.      

그러다 무엇인가 내 눈에 들어왔다. 소파에 푹 파묻혀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획 올려 버렸던 피드를 거꾸로 되찾아 골똘히 바라봤다.      


‘10 Km 러닝 대회’   

   

10Km? ‘겨우’라는 부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사실 이 거리가 얼마나 먼 거리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저 상대적으로 마라톤 풀코스가 42.195 Km이니 짧게 느껴진 것이다. (이후에, 나는 어찌! 감히! ‘겨우!’라는 부사를 사용할 수 있었는지,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무경험에서  나온 무지함을 번번이 어처구니없어했다.)     


혼자 있는 걸 타고나기로 좋아해도 무언가를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동생이다. 동생에게 소심하게 어떤 사전배경 설명 없이 링크를 보냈다. 답이 바로 왔다.     


‘언니 드디어!!!! 언젠가 할 줄 알았어. 멋있다!’     


순간 머리가 소리 없이 복잡해졌다. ‘내가 달리기 하겠다고 일전에 말했었나?’

비글이 땅속에 숨겨놓은 장난감을 파헤치듯 기억 속을 헤집고 다녀도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함부로 약속을 남발하지 않는 내 성격을 잘 아는 동생이 기억할 정도면 분명 내 입에서 나온 말인데…….'

 실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서둘러 신청했다. 손가락으로 스마트 폰 화면을 분주하게 터치하고 마지막으로 신청 완료 확인서를 캡처해서 보냈다.


 ‘같이 뛰자!’    

 

답이 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제부를 설득하고 조카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공휴일에 쉬고 싶은 가족들을 미처 생각 못 하고 괜스레 일을 키웠나 싶어 불안해졌다.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생각해 보니 동생이랑 모 방송사가 주최하는 서울 마라톤 대회를 우연히 구경했던 일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때 둘이서 경험 삼아 마라톤 대회 참가라도 해보자고 했던 거 같은데. 그 순간 답변이 왔다.     


‘언니, 내가 가서 사진이라도 찍어 주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이르고 멀다.’     


비집고 들어갈 틈 없는 완벽한 거절이다.

초등학생 2명과 고등학생 1명을 살뜰하게 살피는 사임당 엄마에게 에너지와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하다니, 오히려 미안해졌다. 동생은 허리 밴드를 선물하겠다며 응원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나는 온종일 소파에 누워 손톱을 깨물다가 일어나 거실을 서성이기를 반복하며 고민했다. 아직 대회까지 3개월이 남았으니 충분히 신청 취소와 환불을 깔끔하게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취소와 포기는 언제나 쉽고 도전과 실행은 언제나 어렵다.

어쩌다 신청한 달리기 대회를 눈 딱 감고 어려운 도전을 해볼지 아니면 신청 취소를 꾹 눌러 쉽게 포기할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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