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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서점기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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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Oct 15. 2020

뫼비우스의 띠, 그리고 딜레마

발길이 닿은 곳_서점


“왜 책을 비닐로 포장해요? 서점인데.”  “비닐로 싸 놓으면 책 내용을 어떻게 봐요?”  vs

“디피 된 것 말고 새 책 없어요?” “비닐로 안 싸인 샘플 도서 말고 비닐로 싸인 것 주세요.”


서점 직원으로 일하기 전에는 비닐로 싸인 책과 그렇지 않은 책에 대하여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책을 고르는 기준이 내용이나 삽화 정도 말고는 없었기도 했거니와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 책은 출간 시부터 그렇게 나온 만화책이나 다른 소수 분류의 책들 외에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서점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책 상태에 굉장히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지만 최근 5-6년 동안 부쩍 랩핑 도서 - 비닐 포장된 책에 대한 끊임없는 이의 제기가 늘어났다.


서점에서 책을 보고 고른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충분히 내용을 살펴보고 살 권리가 소비자에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책을 비닐로 꽁꽁 포장하는 서점의 입장은 책을 지키기 위한 생존의 자구책에 가깝다.  망가지는 책들이 너무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서점에 큰 독서 테이블과 탁자가 들어서 있는 것이 유행을 넘어 당연시되어 있다. 줄어드는 독서 인구를 늘려 보자는, 소위 책 보는 문화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였다. 소비자들은 다리 아프게 서서 책을 고르지 않으며 편안히 책을 볼 수 있어 좋았고, 서점도 책을 보는 이미지나 고객의 호응도가 좋아 좀 더 예쁘게 인테리어를 하고 멋진 테이블, 탁자 및 카페 등 각종 편의 시설을 제공하게 되었다. 책 보는 문화를 넘어 책이 하나의 액세서리로 취급되는 형태도 나타났고 여러 SNS를 통해서 독서력을 전파하는 긍정 효과도 높아졌다.


문제는,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다”라는 인식이 약해졌고, 더불어 서점이 가지고 있는 책에 대하여 “사기 전까지는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다”라는 인식도 같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책을 살펴보고 사지 않을 수도 있고, 돈이 없어 한 권을 다 읽고 사지 못 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책을 “막 보는”형태이다.


책을 둥글게 말아서 본다던가, 테이블 위에서 책을 보다 잠시 다른 곳에 다녀오느라 보던 페이지 그대로 엎어 놓는다던가, 책이 잘 벌어지도록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펴면서 보던가. 수험서나 문제집, 컬러링 북 등을 테이블로 가져와서 문제를 풀거나 베껴가거나. 그림동화나 그림 찾기, 미로 북 등을 보면서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표시가 나게 보거나. 계산도 하기 전에 어린이 만화 비닐을 뜯어보고 있거나. 두꺼운 인문학 책을 중간까지 보고 접어놓거나, 서가에서 책을 여러 권 가지고 와서 이 책 저 책 험하게 다루며 보고 있거나. 테이블에서 물기 있는 음료수를 마시다 책 위에 올려놓는다거나. 전면 진열되어 있는 도서들을 살펴보고 구겨진 채로 던져놓다시피 꽂아놓는다거나. 기타 등등.



각 총판에서 혹은 직거래를 통해서 출판사에서 오는 책들은 일부의 책들을 제외하고는 비닐로 포장되어 있지 않다. 책의 보존을 위해서 직원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책을 비닐로 포장하거나 혹은 기계로 포장하는 것이다. (포장 기계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수작업이 일반적이다.) 입고되는 모든 책을 비닐 포장할 수는 없으므로 포장하는 책도 있고 못하는 책도 있다. 입고되는 양이 많은 서점들은 각 파트 담당자들의 재량에 맡기는 경우도 있다. 가능한 온전하게 책을 보존해서 팔기 위해 비닐로 포장을 해 놓지만, 손님의 요청에 따라 내용을 보여드리기 위해 비닐을 다시 푸는 경우가 있다. 그대로 구매하는 분들도 있으나 다른 새 책으로 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여기서 말하는 새 책은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 책을 말한다. 내용을 보지 않는 경우라도, 서점 내에서 비닐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책들을 샘플 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입고될 때의 책 상태를 간단히 설명드리지만 못 미더워하는 분들도 있다.


서점마다 책을 가지고 있는 재고량은 다를 수 있다. 대형 서점들은 규모에 맞게 한 종류당 많은 재고의 책을 가지고 있으며 중, 소형 서점들 및 독립 서점들은 한 종류에 대한 재고가 1-2권 정도에 머무르는 곳도 많다. 그리고 대형서점이라고 하더라도 출간일이 많이 지났거나 비인기 도서, 혹은 소수의 사람들이 찾는 종의 도서일 경우는 가지고 있는 재고량이 적다. 그동안의 판매량이나 데이터에 따라 적절한 재고량을 각 서점마다 달리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중 한 권이라도 팔만한 모양새가 안 나올 만큼 망가진 도서는 책으로서 팔 수 있는 상품 가치가 떨어진 것이므로 서점에서는 가지고 있을 수가 없다. 출판사에서 받아주면 반품을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반품 불가의 도서인 경우 서점의 손실이 된다.


한참 유행하던 큰 테이블이 각 서점에서 사라지거나 규모를 줄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테이블을 들여놓기 전 보다 들여놓은 후의 책이 파손되는 정도가 월등히 심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오는 부모님들 중 서점에서 책을 보고 인터넷에서 구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분들도 있다. 다 좋은데, 책을 곱게 보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는지 아이들은 책을 활짝 펴고 누르며 보고 있다. 책 보기 지겨운 아이들은 표지를 구기면서도 본다. 개인마다 성향과 소비패턴은 다른 것이지만 서점에 와서 테이블에서 책을 함부로 보며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손님들이 예쁘게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간단한 문제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물건을 내 돈으로 구입하기 전까지는 내 것이 아니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열람 가능한 책이라고 해서 샘플이 아니며 막 다루어도 좋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굉장히 당연한 이야기인데 서점에서는 손님들과 부딪히는 일상적인 일 중에 하나이다. 닳고 닳은 책이나 구겨진 책을 사기 싫은 것처럼 내가 함부로 다룬 책은 남들도 사지 않는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건지.


책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 보기만 하고 사고는 싶지 않은 마음, 보면서 내 편한 대로만 보고 싶은 마음, 서점의 책이 공공재가 아니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는 마음, 예쁜 책을 사고 싶어 하는 마음... 그 마음들 사이에서 오늘도 책과 opp 비닐 봉투를 손에 들고 고민을 거듭한다. 과연 이 책은 포장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님아 그 책을 뜯지 마오/구입 전에는 내 책이 아닙니다/곱게 다뤄주세요, 그래야 설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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