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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서점기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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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Oct 30. 2020

남의 집

발길이 닿은 곳_서점


서점에서 일하기 전에도 비정기적으로 서점들을 방문하는 것은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다 가지지 못하는 책들이 가득 꽂아져 있는 서가, 책 냄새, 책 보는 분위기가 좋아 신간이며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구석에 있는 안 팔리는 책들까지 철저히 나의 기준으로 둘러보고 잠깐씩 읽어보는 그 기분이란 다른 것과는 바꿀 수 없는 아주 소중한 경험이다.


서점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후 다른 서점을 방문하는 일은 ‘시장조사’라는 이름으로 하게 되었다. 말이 ‘시장조사’이지 사실 남의 집에 가서 놀다 오는 기분이다. 근무시간에 시장조사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주로 개인 휴무일에 ‘남의 집’을 방문해서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보고 감탄하고 아쉬워하고 질투하거나 우쭐해했다.


내 집이 아니었기에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서에 쓸만한 어떤 것을 찾아다녔지만 때로는 내 집과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그곳에서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진상들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일도 가끔 있었다. 사람 사는 곳 다 비슷하구나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뒤통수를 노려보는 눈이 아파 올 때쯤 시선을 돌려 진열 상태, 서가 배열, 주제 큐레이션에서부터 소소한 소품 사용이나 인테리어까지, 서점에서 일하기 전에는 그저 좋다 하며 지나치던 것들이 이렇게 바꾸면 더 좋을 텐데 라던가 요거는 우리 서점에서도 써먹어야겠다라던가 하는 업무적 시점으로 바라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괜찮은 남의 집 방문하는 기분은 늘 두근두근 한다.


코로나 이후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런 시장조사를 거의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방역 수칙을 지키며 집과 직장만 왔다 갔다 해서  이기도 하거니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 조심스러웠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장조사를 빙자한 남의 집 나들이를 못하게 되니 우울하기까지 했었다. 지금은 SNS를 통한 방문으로 만족하며 우울감은 줄어들었지만 아쉽기는 마찬가지이다. 되도록 조심하면서 시장조사를 다시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도 있다.


첫 번째 서점에서 두 번째 서점으로 갈 때도, 두 번째 서점에서 세 번째 지금의 서점으로 올 때도 시스템 상의 낯섦은 있었지만 서점이라는 장소가 변경된 것에 대한 낯섦은 없었다. 그곳에 책이 있고, 책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주는 즐거움은 낯섦의 장벽을 넘는다. 한 서점에서 계속 있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서점의 형태를 찾는 고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점의 기본을 배울 수 있었던 서점, 대규모의 책이 있고 파트별 세분화를 할 수 있었던 서점, 좀 더 매대 진열에 자유도가 높은 서점.. 서점에서 일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형태의 서점을 찾게 되었고 옮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이직을 했다. 현재는 지금의 서점에 만족하고 있지만 또 다른 이유로 다른 서점으로 이직을 할지는 알 수 없는 문제이다. 이제는 나이도 어느 정도 있고 여러 가지 상황이 받쳐주어야 될만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서점을 직접 운영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일하는 곳이 기존의 시스템을 바꾸면서 나에게 맞추어 줄 수는 없으므로 절이 싫은 중이 떠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서점에서 일하지 않는 서점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처럼 시장 조사할 때 괜찮은 남의 집 들어가는 기분은 나지 않겠지만 그 또한 나름의 즐거움으로 생활할 수 있을 듯하다.

서점요정/남의집정리/때로는오지랖/가끔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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