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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Oct 15. 2024

다시 생각해 봐요

서점 퇴사기 #4


A서점을 퇴사하고 B서점으로 바로 입사한 것은 아니었다. 퇴사 기념으로 이곳저곳 다른 서점 구경 다니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기에 두 달 정도를 가열차게 백수로 살았다. B서점의 공고를 보고 입사한 후  경제/자기계발 파트를 맡았고 처음에는 기본 정리 위주로 일했다. 이전 담당자가 소분류에 대한 숙지가 잘 되어있지 않은 신입이었던 터라 책들이 서가별로 섞인 상태여서 분류작업부터 들어갔다.


B서점에서의 초반 3개월 정도는 의문과 질문의 연속이었다. 많이 엉망이었던 해당 파트를 정리하며 생긴 의문들, 완전 쌩초보에게 파트를 왜 맡기는 건지, 어느 정도 기본 교육이 될 때까지 여러 파트를 순환하면서 배우고 담당이 되면 안 되는 건지부터 시작하여 서점별 업무방식의 다른 부분과 일의 숙지 과정에서 오는 질문들 등등으로 머릿속이 매우 분주했다. 더불어 개인서점인 A서점에 비하여 기업형인 B서점은 의사결정의 과정, 소소한 의견에 대한 컨펌이 느릴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한 갑갑함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종수와 거래처를 보유한 덕에 A서점에서는 알지 못했던 도서들을 실물로 구경하는 재미, 출판사 담당자들과의 직접적인 대화에서 오는 정보, 기본 정리가 끝날즈음 시작된 모음 진열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큐레이션 업무에 대한 욕심이 갑갑함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많은 의문점들은 사수였던 과장님을 들들 볶아 어느 정도의 답안을 얻어내는 것으로 잠재울 수 있었다. (그 많은 질문을 다 받아주셨던 과장님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평대에 생각하던 대로의 모음 진열이나 주제를 내건 큐레이션을 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디자인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POP업무도 해보는 등, B서점에서 쌓은 실무 경험은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퇴근을 재시간에 못하거나 안 하는 것도 일절 개의치 않을 정도로 일에 미쳐있던 시간들이었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열심히 해보려는 사람을 최대한 지원해 주시려 했던 사수와 선배들에게도 감사했다.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어도 만족감이 그보다 더 컸으므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쉽게 물어볼 수 없는 의문점이 머리 한구석에 작게 피어오르더니 나중에는 가득 차 버렸다. 필요 이상의 입고, 그로 인한 시간 낭비로 느껴질 정도의 반품량, 결정적으로, 과한 입고분량 때문에 있던 책이나 자리를 밀어내고 새로운 진열공간을 만들어야 해서 파트별로 개인들이 진행했던 진열 부분을 장기간 해볼 수 없는 문제가 크게 다가왔다. 어차피 장기간 진열을 원한다고 해도 이슈, 시즌 관련한 기획들은 그 특성으로 말미암아 한 달 내지는 길면 두 달 정도만 모음진열이나 큐레이션을 하는 것이 적당하긴 했다. 하지만 과한 물량으로 입고된 도서들로 인하여 채 2주도 되지 않아 기획 진열을 밀어야 할 때는 불만을 넘어 이러한 비효율 상태를 유지하는 회사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를 않았다.


종수가 많이 입고되는 것은 문제가 안되었다. 되도록 많은 종류의 책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대형 서점의 장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서 1 종당 입고량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문제가 된다. 베스트 도서 혹은 이슈도서의 경우는 입고량이 많아도 상관없지만, 그 외의 일반적인 도서는 적정량이 필요하다.


매입량이 많아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매입률을 낮추기 위한 출판사와의 계약조건으로 신간 혹은 베스트 출고 시 일정 부수 이상을 매입하기로 약속했을 때, 광고비를 받고 진행하는 기획도서들의 입고 시, 신규 거래 출판사나 총판의 초도 물량일 경우 등등. 이러한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에 의문을 가진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출판사별 신간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판매부수를 예상하고 매입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았다. 매입률이 크게 낮지도 않은 상태에서 많이 나갈 수 있는 분류의 책이 아님에도 1 종당 30부 - 100부 이상씩 들어오는 신간들을 다 진열하기에는 파트별 평대가 부족했다.(수량이 많으면 그중 일부는 재고칸이나 창고에 보관하기는 한다.) 신간이 다 이렇게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종수도 많고 종당 권수도 많은 날은 다른 일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업무량이 많아진다.


부족한 자리에 밀려들어오는 도서들을 정리하려면 평대에서의 회전율을 높여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평대에 진열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지기 마련이다. 노출을 목적으로 1 종당 많은 부수를 입고시키는 이유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신간이 많은 것은 좋다. 하지만 아무리 대형 서점이라 하더라도 진열의 한계는 있다. 애지중지하며 출간한 신간들을 잘 보이는 자리에 있게 하고픈 각 출판사들의 입장도 안다. 한 달은커녕 몇 주 되지 않아 평대에서 내려가는 많은 책들을 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많이 들어온 종을 얼마 지나지 않아 서가로 옮길 경우, 고객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재고칸 혹은 창고로도 잔여분이 이동된다. 팔리지 않는 책을 너무 오래 가지고 있는 것은 공간의 문제도 있고 해당 출판사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존에 있던 책들을 포함하여 반품율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대형서점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매입량이 지나 칠 정도로 많았다. 입사한 지 1년이 지나 아동코너로 파트 이동을 하고 시간 나는 대로 자료를 만들어 보았다. 아동파트가 한가해서 분석할 시간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반 서적에 비하여 판형과 부피가 큰 아동분류의 도서들이 산처럼 쌓이는 것을 보며 저 밑에서 올라온 악의 감정을 순환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전산에 남아있는 지난 몇 년간의 데이터들을 근거로 판매량 대비 매입량과 반품량 등을 산출했고, 매입률의 등락도 참고한 결과 당시의 매입량이 과하다는 것을 수치로 확인했다.




하지만 그 결과를 토대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비롯한 일반 직원들과 사수는 수치를 통제할 힘이 없었고, 보고서를 읽은 더 위에 있는 분도 참고의 여지가 있어 해당 사항에 대하여 협조를 요청해 볼 수는 있으나 비슷한 요청을 과거에 해보았음에도 변하지 않은 회사 분위기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회사의 재무구조까지 의심이 들 때 즈음, 다시 퇴사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들어앉았다.


도서가 많이 들어오는 것 자체에는 큰 불만이 없었다. 종수가 많이 들어오는 것은 오히려 환영했고, 체력적으로 힘든 것은 일정별로 일의 분배를 통하여 조절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한 부분이 지속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서점에서 내가 하고 싶은 업무들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시간이 갈수록 단호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결정을 내리고 퇴사 의사를 밝혔다.


A서점에서의 퇴사 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퇴사 사유를 다 이야기드렸다는 것이다. 불만을 터뜨리는 퇴사 희망자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미우나 고우나, B서점은 서점일에 대하여 실무적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곳이었다. 해서, 문제가 있는 부분을 수정하고, 직원들을 불필요한 업무에 사용하는 시간을 줄여 좀 더 책 자체에 신경을 쓰도록 한다면 좋겠다는, 발전을 바란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드린 것이다.


덕분에 반려 기간이 늘어나기는 했다. 그동안 보고서를 통하여 이야기했던 점이나 솔직한 퇴사 사유를 들은 분들이 기약 없는 약속을 하기도 하고 만류도 하며 돌아가면서 상담을 했기 때문이었다. 퇴사 결심을 굳힌 뒤의 면담이었지만 귀찮지는 않았다. 시원하게 다 이야기하고 갈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때요?
우리 시스템이 크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내가 노력은 해볼게



하지만 나도 알고 모두가 아는 사실, 회사 시스템은 한 개인의 미미한 노력으로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


나의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물 빠진 독에 투자하는 것보다 원하는 사양에 가까운 시스템을 가진 곳을 찾아보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 하에, B서점에서의 업무는 퇴사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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