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퇴사기 #3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경치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나의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경치를 만나 새로운 눈을 얻게 됨으로써 시작되었다. 우연히 방문한 대형서점에서 책을 고르다 진열 방식과 분류가 당시 다니던 A서점과 다른 부분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생긴, ‘서점마다의 다름에서 오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눈이었다. 달라서 어색한 것이 아니고 재미있어하는 바람에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적어도 나의 경우는 새로운 경치를 보다 새로운 눈을 얻어 발견의 여정이라는 문이 열린 것임에 틀림이 없다. 개인의 성향과 경험 문제이기는 해도 진정한 발견의 여정을 마주하려면 새로운 경치를 주기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 문제는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서점을 다니지 않았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서점에서 일을 시작한 뒤에는 다르게 다가왔다. 다름을 발견하는 재미에 이끌려 이곳저곳 방문하는 것이 일정에 들어가는 때가 많아졌다. 그 경험이 차곡차곡 쌓인 A서점에서의 어느 날, 서가 진열 상태를 변경하거나 평대를 직접 바꿔 보고 싶어지는 시기가 와버렸다. 모든 진열과 정리 시스템에 사장님의 방식이 강하게 들어간 곳이라 쉽지 않을 것이기에 마음에만 품고 있었다. 의견을 내기에는 경력이 부족하다 싶었다.
서가와 평대의 변경은 사장님과 실장님이 상의해서 진행하고 그 방식은 기존의 것과 크게 변하지 않는 정도의 것이었다. 쉽게 변경되지 않는 틀을 만들어야 일을 잘하는 직원이 퇴사한 뒤에도 서점이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쉽게 변경되지 않는 틀 안에서 변화가 가능한 부분을 찾아 주기적으로 바꿔 보는 것이 서점에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은가라는 의견이 마음속에서는 이미 덩굴처럼 자라고 자라, 어느덧, 그것은 A서점 시스템에 대한 반감으로 자리 잡았다.
파트별로 담당자가 있는 곳은 직원의 자율성이 좀 더 커 보였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인테리어나 공간을 개조하지 않는 한 크게 달라짐이 없지만 각 파트별 서가와 평대는 시기별 이슈별 달라지는 부분이 다양했다. 속칭,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느낌에 내가 다니는 서점도 그렇게 바꿔보고 싶고 변화를 주었을 때 고객들의 반응도 궁금했다. 하지만 모든 일은 내 머릿속에서만 둥둥 떠 다니며 섞여있었다.
가끔 나보다 먼저 다닌 직원들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해보면 그냥 하나의 생각이자 희망 사항일 뿐으로 ‘그렇게 할만한 사람이 부족해서 하지 못할 일’ 또는 ‘사장님이나 사모님은 하지 않으실 종류의 일’ 혹은 ‘밀려들어오는 책이나 기본적인 업무를 내려놓고 해야 하니 지금은 못할 일’로 매번 결론이 났다. 개혁을 원하는 투덜이 스머프 종으로 분류되어 버리는 느낌도 들었다.
3년 반정도 일했을 때 나는 ‘절이 마음에 안 드는 중’이 되어 있었다. 업무 자체가 싫다기보다 내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이 크게 대단하지 않음에도 해볼 수 없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A서점에서의 업무는 숙련되어 가는데 나 스스로는 만족감도 없고 공허한 공간도 커졌다. 그리고 지쳐갔다.
결국, 1년 먼저 들어온 선배에게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식사 시간에 하게 되었다. 그 선배도 다른 직종에 있다 서점으로 들어왔고 나이도 많아 종종 상담을 하는 일이 많은 사람이었다. 네가 젊은 애들이라면 말리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있으니 다른 곳에 재취업하기 힘들 거다, 집도 가까운데 여기에서 정년까지 있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 돌아왔다. 한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꾸준히 일하는 능력이 장점인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라 쉽게 반박할 수는 없었다. 이것저것 해주시는 말을 밥을 먹으며 설렁설렁 듣고 있는데 어떤 말이 귀에 꽂혔다.
그럼 나가도 상관없지, 어차피 결론은 네가 내는 거니까.
그리고 며칠 뒤, 나는 퇴사를 신청했고 다음 달에 그만두었다. 어느 정도 서점일이 익숙한 경력직이 되어 버린 상태라, 만류하는 사모님과 제법 긴 상담을 했지만 결국은 내 뜻대로 퇴사가 받아들여졌다. 퇴사 사유는 쉬고 싶다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다 말씀드리지는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술병이 나서 그만두었던 사람을 7년 뒤에 다시 아르바이트로, 정직원으로 일하게 해 주셨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드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가끔 A서점에 들른다. 내 첫 서점이자 서점일의 기본기를 잘 가르쳐주셨다는 생각이 경력을 쌓을수록 들어 감사한 마음으로 간다. 집에서 가깝고 같이 일했던 직원들이 아직까지 일하고 있는 곳이라 수다가 목적이기도 하다. ‘그 절이 마음에 안 들어 떠난 중‘이지만 절을 거부하는 중이 있던가. 그래서 나는, 여전히 서점과 함께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