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음악을 찾아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 교실 칠판 옆 게시판에 모 단체의 어린이 합창단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게 재밌을 것 같아 합창단을 해보고 싶었지만, 조용하고 소심했던 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마음을 일기장에만 조용히 써놓았는데, 일기를 본 엄마가 오디션을 보러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결과는 기쁘게도 합격이었다.
합창단원이 되어 다른 지역이나 외국에도 다니면서 공연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 복병은 오디션이 아닌 다른 데 있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합창 연습을 할 때마다 어린 나를 데려다줄 수 없었던 거다. 연습실은 번화가인 부천역 부근에 있었는데, 인근에 술집이나 모텔이 많아 나 혼자 버스를 타고 다니기엔 위험하다고 했다. 조금 아쉬웠지만 오디션에 참가해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어린이합창단은 끝이 났다.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학년이 되자 교내 합창단을 모집했다. 하고 싶었던 합창단이 학교 안에도 있다는 게 기뻐, 교내 합창단에 들어가 메조소프라노 파트를 맡아 노래했다. 파트 별로 소리를 내고 그 소리가 어우러져서 하나의 곡이 만들어지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초반에는 불협화음이지만 연습을 할수록 딱 맞아떨어져가는 순간이 참 좋았다. 중창대회를 나가기 위해 같은 반 친구들과 중창단도 꾸려 연습했다. 학교에 일찍 등교해서 연습을 했고, 점심 식사를 일찍 마치고 모여 카세트테이프 반주를 틀어가며 노래를 불렀다. 좋아하는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게 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됐다.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합창단은 자연스레 끝이 났고, 좀 더 공부에 집중하라는 부모님 말씀에 피아노 학원도 그만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공부는 뒷전이었던 난, 늘 놀기 바빴다. 학교 근처에는 한 시간에 삼 천 원인가 하던 노래방이 몇 군데 있었는데, 방과 후 친구들과 그곳에 종종 들렀다. 셋이서 한 명당 천 원 씩, 넷 이상이라면 몇 백 원 씩만 들고 가도 한 시간 넘게(서비스도 많이 줬다!) 실컷 놀다올 수 있었다. 음악과 하모니에 대한 욕구를 노래방에서 풀던 나날이었다. 만날 놀러만 다니니까 엄마는 그렇게 공부도 안 할 거면 아예 작곡을 배워보지 않겠냐며 솔깃한 제안을 던지기도 했다. 반항심에 가득 차 엄마 말이라면 뭐든 따르고 싶지 않았기에 ‘싫어’ 한 마디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렇게 주구장창 노래방을 다니면서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생활의 로망이었던 동아리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동아리 박람회를 둘러보다가 로망의 끝판왕인 기타 동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잔디밭에 모여 앉아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도 부르고, 막걸리도 마시는 로망을 실현시켜 줄 그 동아리! 알고 보니 통기타가 아닌 클래식 기타 동아리라 김은 좀 빠졌지만, 그래도 뭐 기타는 기타였다. 동아리에 들어가면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의 송승헌 같은 선배가 있을 거라는 환상은 말 그대로 환상이라는 걸 깨닫는 것도 금방이었다. 그래도 선배들이 기타 개인 레슨도 해주고, 연습하여 함께 연주회도 할 수 있다기에 동아리 생활을 시작했다.
베토벤이 클래식 기타를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말했다던데, 기타 합주는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여러 악기가 어우러진 듯한 소리를 냈다. 연주회를 앞두고서 30~40명 정도의 동아리 원들이 함께 모여 합주 연습을 했다. 두 명에서 네 명 정도가 모여 중주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합창을 하면서 느꼈던 즐거움, 음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의 희열을 또다시 느낄 수 있었다. 합주나 중주를 할 때는 나만 잘해서는 안 된다. 잘난 체하며 내 소리만 크게 내면 관객들이 듣기에(물론 내 귀에도) 좋은 연주가 아니다. 다른 팀원들과 속도를 맞추어가고, 함께 강약을 조절하기도 하면서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괜찮은 음악을 완성하게 된다. 합주와 중주의 매력에 푹 빠진 나는 좀처럼 독주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동아리 활동을 끝내고 합주나 중주 연주를 할 기회가 사라진 내 기타는 결국 몇 년 째 케이스 안에서 바깥 공기를 쐬지 못하는 중이다.
얼마 전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갔다가, 내가 음악 중에서도 유독 여럿이 화음을 맞추는 음악을 더 좋아한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음악 뿐 아니라, 결혼을 통해서 경험하고 싶었던 것도 타인과 함께 하모니를 맞추는 삶이었다. 결혼 초기에는 듀엣 연주로 시작해서, 아이를 낳아 인원이 늘면 삼중주를 하거나 사중주를 하는 그런 삶을 바랐다. 내가 멜로디를 연주하면 상대는 그에 맞추어 반주를 하고, 상대가 멜로디를 연주하면 나는 반주를 하는 삶. 서로 리듬을 맞추고 호흡에 함께 공명하며 하나의 곡을 완성하는 삶.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로 팀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불협화음만을 내는 사람이 하모니를 만들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무던한 노력과 시간을 들인다면 바뀔 수도 있겠지만 굳이 인간 개조를 하느라 내 평생을 희생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짧은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결혼을 통해 두 사람이 하모니를 이룰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멋있고 행복한 일이겠지만, 주위를 살펴보면 결혼이 아닌 다른 방법들도 있는 듯 싶다. 앞으로의 나도 어떤 형태가 되었든 간에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살아가고 싶다. 독주곡 보다는 협주곡이 좋고, 하나의 악기가 돋보이기도 하는 협주곡보다는 교향곡 쪽이 내겐 언제든 더 좋게 느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