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설 Dec 08. 2023

잘 맞지 않는 사람과는 bye

  요가를 시작했다. 예능에서 가수 이효리가 요가하는 모습을 본 탓이다. 몇 해 전 한창 <효리네 민박>을 방영할 때에도 요가를 수련하는 이효리를 보며, 유연하고 근력 있는 몸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새벽부터 요가를 하는 일상이 부지런하고 건강해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뻣뻣하고 근력도 적은 내가 어떻게 요가를 하겠어.’ 라는 생각에 요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까지 들진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마침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고 싶기도 했던 차였고, 어딘가에서 ‘유연성과 근력이 적을수록 요가가 더 필요하고 좋다.’는 글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우선 포털 사이트 지도 앱에 들어가 집 근처에 있는 요가원 몇 군데를 살펴보았다. 플라잉 요가나 서핑 요가, 힐링 요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빽빽하게 진행하는 요가원도 있었지만, 한 가지 요가를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요가원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또 여러 강사들이 있는 곳보다는 한 명의 강사에게 요가를 배우는 것이 더 연속성이 있을 것 같아, 원장 혼자 운영하는 요가원을 찾아갔다.  


  상담 예약이 약속된 시간에 요가원에 방문해 원장과 이야기를 하는데, 어쩐지 느낌이 이상했다. 난 언제든 설득되고 결제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강사는 설득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요가를 하면 뭐가 좋은지, 이 요가원이 다른 요가원들과 어떻게 다른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설명해줄 거라 예상했지만 별다른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업에 보통 몇 명이 들어오는지 내가 먼저 물었을 때도 그때그때 다르다 했다. 사람이 적거나 나 같은 초보자가 많은 시간대가 있냐고 물었지만, 그것도 그때그때 다르다고만 했다. 이 불친절한 답변은 뭔가 싶었다. 그래도 집에서 제일 가깝기도 했고,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를 비교해봤을 때 다른 요가원보다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우선 한 달을 등록했다. 




  수업 시간에 맞추어 요가원에 방문한 첫 날, 카운터에 앉아있던 원장은 방 한쪽에 있는 공용 요가매트를 깔고 자리 잡고 앉아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양말을 벗어 탈의실에 두고 룸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요가매트를 깔고 앉아 스트레칭을 하거나 명상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빈자리를 찾아 쭈뼛쭈뼛 요가매트를 펼쳤다. 가만히 있기도 민망해 평소에는 안 하던 스트레칭 동작을 괜스레 해보았다. 수업 시작 시간이 되자 원장이 들어왔다. 


 “자, 두 다리 앞으로 뻗고 단다아사나.”

 “배를 붙이고 바닥에 엎드려서 부장가아사나”

쭈뼛거리던 마음이 당혹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말로만 지시를 하니 무슨 동작을 하라는 줄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익숙한 듯 강사의 지시에 맞추어 동작들을 해내고 있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힐끔거리며 따라가기 바빴다. 


  어리둥절하고 당혹스러웠던 수업이 끝나고 나니 강사는 미소를 지으며 힘들지 않느냐고, 첫 날은 몸에 알이 배길 수 있다고 얘기했다. 처음엔 비슷하게 따라만 하더라도 몸에 자극이 오니까 자세를 잡아주지 않은 거라 했다. 그러면 그렇지. 불친절하고 설명이 적다고 느낀 건 그냥 그때뿐이었나 했다. 지도 앱에 달린 후기들을 보면 사람들은 수업 좋다고 말하던데, 오래 다닌 것 같던데, 불친절하고 별로인 곳이라면 그런 좋은 평이 달릴 리가 없지 생각했다. 요가원은 조명의 조도도 낮고 고요하며 인센스 향까지 더해져 차분한 분위기였다. 온몸이 아팠지만 시원한 느낌도 들어 요가원에 다니기 참 잘했다 싶었다. 



 그런데 그 다음 주가 되어도 강사는 계속해서 동작을 보여주지 않고 서서 말로만 지시했다. 난 다른 수강생들을 살피며 겨우겨우 동작을 따라했다. ‘숩타비라 아사나’라는 동작에서는 양발이 엉덩이 바깥쪽에 놓이도록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에서 뒤로 등을 대고 눕는다. 그런데 유연하지 못한 나는 그 자세로 눕기는커녕 앉는 것조차 되지 않았다. 다른 자세야 비슷하게 되는 데까지만 따라하면 됐는데, 다들 뒤로 누워있는 상태에서 나 혼자 멀뚱멀뚱 앉아 있으려니 얼굴이 점차 발갛게 달아오르는 듯 했다. 한 동작을 1분 넘게 유지하는 하타 요가이기에 그 민망한 시간이 더욱 길게만 느껴졌다. 혼자만 멀뚱멀뚱 있는 동안, 그리고 수업이 끝난 뒤에도 강사는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나중에 요가 책을 읽다가 요가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혀 안 되는 동작이 있다면 그냥 그 시간 동안에는 사바아사나 자세로 잠시 누워 있어도 되는 거였다. 되는 데까지만 하면 된다 생각하니 마음은 편해졌지만 이렇게 초보 회원을 방치해도 되는 건가 싶었다. 강사는 오고갈 때 인사하는 것 외에는 따로 설명을 해주지도 않았고, 자세를 보여주거나 잡아주지도 않았다. 등록한 한 달 중 삼 주 정도가 흘렀다. 요가원에 계속 다닐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길지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다른 곳을 알아 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왕 다니기 시작한 거 한 곳에 계속 다닐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다른 수강생들은 이 요가 강사에게 큰 불만을 품지 않는 거 같고, 오히려 만족하며 오래 다니는 숙련자들도 많은데 왜 나만 안 맞는다고 느끼는 건가 싶기도 했다. 강사의 방식이 맞지 않는다면 내가 거기에 맞추어서 적극적으로 물어도 되는 일 아닌가. 급기야는 내가 불만만 많고 끈기가 없어서 딴 데를 찾아가려는 건가 싶은 생각까지 이어지다가, 아차 싶었다. 잘 맞지 않는 상대를 만날 때 내가 빈번히 보였던 패턴이다. 불만을 갖는 내 자신을 탓하며, 상대에게 맞추려고 애를 쓰고, 계속해서 불편함을 느끼는 관계 패턴 말이다.  




   몇 년 전 교육분석을 받을 때도 그랬다. 주변 동료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 커뮤니티 정보까지 싹싹 뒤져 추천 받은 한 곳을 찾아갔다. 박사 학위를 가지고 경력이 많은 원로 선생님이었는데 이상하게 얘기가 잘 통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나와 맞지 않는 상담자구나 생각하고 다른 곳을 찾아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도 난, 상담의 대가라는데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끈기가 없어서 금방 관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아닐까, 장기상담으로 가면 좀 다르지 않을까 싶어 10회기 동안이나 상담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코로나 바이러스가 처음 발생하기 시작해 잠시 상담을 중단했다가 그 상태로 종결을 해버렸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오래 지속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다른 선생님에게 교육분석을 받기 시작했는데 벌써 삼 년 넘게 지속하고 있다. 이 선생님과의 상담은 좋다. 얘기가 튕겨나가지 않고, 선생님은 내 마음을 잘 알아차린다. 선생님과의 관계에서는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 걸 보면 나와 잘 맞는 사람은 따로 있구나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쉽게 만족을 못한다거나, 끈기가 없다거나 한 게 아니라 말이다. 



  결혼 생활도 그랬다. 결혼 준비는 보통 여자들이 더 많이 한다는데 나만 힘들어하는 거 아닌가, 이 사람은 다른 장점도 있는데 왜 단점을 크게 보면서 불편해하나, 나를 탓했다. 그가 가진 단점이 나에게는 더 중요한 문제이기에, 그게 크게 보였다는 걸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사람이거나 괜찮은 사람이라고 해서 나와 잘 맞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훌륭하고 유능한 상담자이겠지만 나와는 안 맞을 수 있는 것처럼. 친절하고 잘 가르치는 요가 강사도 나와 잘 맞지 않았듯이.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과 만나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면 어느 정도 맞추려는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그럼에도 잘 맞아지지 않고 불편하다면 굳이 그 관계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내 에너지와 감정, 시간, 돈을 모두 희생하면서 말이다. 



  결국 그 요가원은 그만두었다. 다른 요가원으로 옮겼다. 새로운 요가원의 강사는 수업 때 먼저 자세를 보여주어서 마음 놓고 강사를 보며 따라하면 된다. 수강생 중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중간중간 가까이 와서 알려준다. 밀착케어 시스템이다. 어떤 시간대 수업에 들어가던 내가 제일 못하는 사람이라 그 대상은 주로 내가 된다. 만약 요가원을 옮기지 않았더라면, 이 좋은 경험들을 못했겠구나 싶다. 오히려 내 자신을 탓하고 강사에게 불만만 품은 채로 요가를 배웠을 것이다. 짧은 결혼 생활도 예상하지 못한 상대의 큰 문제 때문에 끝나게 되었고, 잘 맞지 않는 상담선생님과의 교육분석은 코로나 때문에 그만두게 되었다. 오히려 잘 되었다. 이제는 애먼 나를 탓하기보다는, 오히려 나에게 좋은 경험을 주는 사람과 기회를 찾아나가야겠다. 나와 잘 맞지 않은 사람에게는 먼저 안녕이라고 고하고. 







이전 02화 짧은 결혼 생활이 나에게 남긴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