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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설 Dec 05. 2023

짧은 결혼 생활이 나에게 남긴 것

“지연아. Plan B도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가을에 이어서 다음 해 봄 입시에서도 대학원에 불합격하자 당시 만나던 애인이 나에게 물었다. 하나의 길만 바라보고 가는 게 아니라 다른 길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거였다. 본인도 증권사 입사를 목표로 삼고 준비해왔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더라면 은행이나 보험사 같이 비슷한 분야에 지원할 계획이었다고 덧붙였다. 언제나 내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그였기에 그 말이 섭섭하지는 않았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plan A만이 아니라 plan B, 심지어는 plan C, D도 염두에 두는구나 싶어서 놀랐을 뿐이었다.



   심리학 중에서도 임상심리학이라는 분야가 끌렸던 건, 사람 마음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타인을 도울 수 있는 학문이기 때문이었다. 심리검사를 통해 한 사람의 내면을 파악하여 진단할 수 있고, 근거 기반의 심리치료를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된다는 게 멋있었다. 상담심리학을 전공하더라도 유사한 일을 할 수 있지만, 정신병리적인 측면까지 더 심도 있게 공부하고 병원에서 정신과 환자를 보며 수련 받을 수 있다는 점, 심리검사에 대해서도 더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자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대학교를 다니는 도중, 졸업 후 대학원에 가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고 그 뒤로 다른 전공이나 진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첫 번째 대학원 입시야 당연히 공부가 부족했으니 불합격을 예상했다. 하지만 두 번째 입시 때는 달랐다. 대학 졸업 후 매일 오랜 시간을 도서관에 앉아 공부했기에 이 정도면 됐다 싶었는데, 지원했던 모든 임상심리 대학원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임상심리 전공을 하겠다는 지원자들은 많은데 비해 대학원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부족했다. 그렇기에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학부 성적도 그리 좋지 못할뿐더러, 타대생인 나는 대학원 입장에서는 그리 탐내는 학생은 아니었을 거다. 


  두 번째 입시에서도 불합격하고 나니 대학원 합격 여부는 내가 열심히 준비하는 정도와 무관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열심히 해도 불합격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니, 다음 입시까지 준비하는 기간이 무력하게 느껴졌고 늘 우울했다. 그렇다고 다른 건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임상심리학자가 되어야만 내가 행복해질 거라 여겼다. 스터디 모임에 가서 함께 입시를 공부하는 친구들과 서로 신세 한탄을 하며 그 반년을 버텼다. 다행히 세 번째 입시에서는 합격을 했다. 자연스레 Plan B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Plan A만 가지고 살아가는 게, 삶의 목표를 이뤄나가는 데 더욱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결혼이라는 영역에 대해서도 하나의 길만을 생각했다. 가정을 꾸리는 삶 말이다. 남편과 간혹 다투기도 하고, 자식이 말을 안 들어 속을 썩이더라도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함께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웃는 것, 그런 삶이 행복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혼자 산다거나 결혼이 아닌 다른 형태로 사는 장면은 머릿속으로 그려보지 않았다. 간혹 친구들과 농담으로 독거 마을을 만들자는 얘기도 했지만, 큰 호응이 없자 그것도 금방 잊혀졌다. 


  전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이 사람과 나는 잘 맞지 않는구나 생각했던 적이 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거 같고, 가치관도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데이트를 해도 재미가 없었다.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계속 나를 붙잡고, 달라지겠다고 노오력이라는 걸 하는 모습에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거기다가 이 사람이랑 헤어지면 또 언제 누군가를 만나서 연애를 하고, 어느 세월에 결혼을 하겠나 싶었다. 삼십대 초반 아직 젊은 나이였는데, 그땐 좀 조급했던 것 같다. 따져보면 전 남편은 성격이 온순하여 내 의견을 많이 따라주는 편이었기에, 결혼을 하더라도 그리 큰 갈등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헤어지고 싶은 마음을 돌려,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과는 파국이었다. 결혼을 준비하는 도중, 나와는 생각도 가치관도 다른 그에게 매번 실망을 했고 자주 싸웠다. 이 준비 과정만 버티면 내가 원하던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행복한 결혼생활은커녕, 전남편이 가진 더 큰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식을 올린 지 채 두 달밖에 안 되었을 때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하루빨리 이혼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는 삶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혼하는 게 두려웠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오래도록 주저앉아 있었다.  



  이혼을 하고 수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떠올려보면 왜 그렇게 결혼이라는 가치에만 매몰되어 있었나 싶다. 생각해보면, 결혼 전 혼자 자취를 하던 시절에도 난 충분히 행복했다. 결혼 생활이라는 하나의 길에서 빠져나오고 보니, 다른 삶의 형태들도 꽤 괜찮아 보이기 시작했다. 책이나 영상을 통해 접한 많은 1인 가구들의 삶도 자유롭고 멋있어 보였다. 굳이 결혼이라는 길만 고집할 필요는 없었던 거다. 생각하지 않았던 다른 길들도 충분히 살아볼 만한 길이었다. 굳이 하나의 길에만 매몰되어 있지 않았다면, 이혼을 하게 된 상황에서도 덜 좌절하고 조금만 힘들었을 것 같다. 아니, 그전에 다른 것들을 따져보면서 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다. 이제야 plan A만 가지고 사는 삶의 단점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정해놓은 하나의 길만을 가려고 노력했던 삶에서 벗어났다. 유연해졌다. 덜 고단했다. 그럼에도 인생의 어떤 목표를 생각할 때마다 Plan B를 생각해야 하는 건지, 그것이 더 나은 일인지 헷갈리곤 한다. ‘plan B를 생각했다면 임상심리전문가가 될 수 있었을까?’, ‘Plan B를 생각해서 plan B대로 했다면 행복했을까?’ 라는 물음에는 고개가 저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안 되면 말고, 하는 마음으로 살았더니 금방 나태해지고 말았다. 


  진로나 업무 성과 같이 혼자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Plan B는 생각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처럼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일이어서 나 혼자의 노력으로만 되지 않는 영역에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긴 어렵다. 


  인생은 살면 살수록 어렵다. 장애물을 겨우 통과하여 답을 찾은 것 같다가도 다시금 그 답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또 다른 장애물이 찾아온다. 오늘도 좌충우돌하며 인생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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