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혼자 카페에 왔다. 아직은 날이 풀리지 않아 창밖에 보이는 나무의 가지가 앙상하지만, 그럼에도 하늘과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보니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예쁜 찻잔에 담긴 따뜻하고 달달한 라테를 마시니 몸 안에는 후끈한 열기가 퍼진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 선율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와 커피 머신이 작동하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듣기 좋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노트에 적기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한 때는 이렇게 혼자 카페에 가는 걸 좋아했는데, 너무 오랜만에 왔다. 마지막으로 혼자 카페에 갔던 게 반년 쯤 전일까?
이전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혼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쉬는 날은 물론이거니와 퇴근 후에도 집으로 바로 향하지 않고 홀로 카페를 찾았다. 일하는 날에는 주로 직장 근처나 집 근처의 카페를 찾았고, 쉬는 날에는 일부러 영종도나 파주같이 조금 멀어도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가기까지 했다.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에서 느끼는 새로움과 약간의 각성, 거기에 향이 좋고 맛있는 커피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혼자 가기 좋은 카페를 찾아 지도 앱에 저장해 두는 것도 나만의 소소한 취미였다. 혼자 가는 카페는 너무 시끄럽지 않고, 좌석이 편하고 테이블 높이도 적당하여 혼자 앉아 무언가를 하기 편한 곳이 나에겐 좋다. 카페에 가면 주로 다이어리에 뭔가를 끼적이기도 했고,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고, 노트북을 챙겨가 서류 작업을 하곤 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나 소음은 아주 시끄럽지만 않다면 백색소음 같이 느껴져 집중도 잘 되었다. 이렇게 자주 찾던 카페를 최근에는 홀로 간 적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문득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외출하면 반려견 꼬미는 홀로 있게 되니 집에 함께 있고 싶은 까닭도 있었지만, 그 이유만이 전부는 아닐 테다.
나의 경우엔 카페에 가서 어떤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최대 2시간 정도다. 그러고 나면 이내 지겨워져서 화장실도 다녀오고, 딴 짓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자리에 가만 앉아 딴 짓을 하게 되면 다시 집중할 만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한참동안이나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의미 없는 가십거리 기사들을 찾아 읽다가 이내 더 지루해지고 일을 다시 시작할 마음도 안 나서 결국 집에 돌아오고 만다. 반면, 집에서 일을 하다가 집중이 안 될 때는 세탁기를 돌리거나 빨래를 개고 설거지를 하면서 몸을 움직이거나 스트레칭도 하면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 다시 환기가 되어 집중할 수 있다. 같은 시간 동안 일도 하고 집안일도 하니, 일석이조의 삶 아닌가?
이전에 가족들과 살 때 난 집에서는 일이든 공부든 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따져보면, 집이라는 공간 때문은 아니었고, 집에는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지연아 잠깐만 나와 봐라.” 라는 엄마의 부름에 나가서 엄마의 심부름을 하고(대부분 왜 부르냐고 짜증내기 일쑤였지만), 풀이나 가위 따위를 찾아 내 방까지 찾아 온 언니에게 그것을 찾아 건네 주다보면, 어느새 집중은 흐트러져 있었다. 카페에 가는 건 사실 방해받지 않을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집에 혼자 살면 다이어트 같이 내 생활 습관을 바꿀 때에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다. 다이어트 중 냉장고에 다른 가족들이 사둔 음식의 유혹을 견디고 참을 필요가 없다. 내가 먹을 수 있는 다이어트 음식들로만 냉장고를 채워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밤에 주방에서 풍겨오는 라면 냄새에 주린 배를 붙잡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치킨을 시킨 뒤 한 입만 먹어보라는 가족들의 달콤한 제안을 뿌리치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의 원고도 거의 대부분을 집에서 썼다. 혼자 사는 집은 안온하게 휴식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제 2의 일터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곳에 가고 싶을 때 아주 가끔만 카페에 가면 된다. 문득 내 집이라는 공간과 이렇게 살 수 있는 삶에 고마워졌다. 혼자 살면 이렇게 집에서도 할 게 많은데, 혼자 사는 게 얼마나 좋은데. 예전에는 왜 이런 삶을 꿈꾸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