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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설 Mar 05. 2024

혼술러의 기쁨과 슬픔


  임상심리학계에는 하나의 통설이 전해지는데, 그건 바로 졸업생의 석사 논문 주제나 대상을 보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문제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게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가까운 대학원 동기들만 봐도 그들의 특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연구실에서 선배들이 연구하던 대상을 택했다. 하지만 나는 연구실에서는 그때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던 ‘폭음을 하는 대학생’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었다. 그렇다. 폭음자를 구태여 연구 대상으로 선택한 건 내 문제에서 비롯된 관심 때문이었을 거다. 



  술을 좋아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대학교 때는 사람들과 뭘 하든 술과 함께 할 때가 많았다. 입학 전 OT에서도, 신입생 환영회에 가도, 매주 있는 동아리 모임에 가도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책 <아무튼, 술>에 나오는 구절처럼 “술꾼들끼리 밥 먹자는 약속은 결국 술 먹자는 약속으로 변하”(76p.)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20대 초반 한껏 들떠있는 젊음의 패기로 술을 몸 안에 들이부었다. 나이는 성인이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직은 알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하던 마음도 술로 달랬다. 사람들과 시시콜콜한 얘기에 왁자지껄 웃고 떠들던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그저 이렇게 취한 상태로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일상의 고민들로부터 멀어진 채로, 휘청거리는 걸음걸이처럼 이렇게 그저 흔들리면서. 


  내 혼술 역사는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시작됐다. 대학원을 입학하면서 혼자 살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바로 혼술을 즐겼던 건 아니었다. 졸업까지는 당장 한 학기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논문을 다 쓸 수 있을지 불안해졌다. 진행하는 실험의 데이터들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 그 내용들을 잘 버무리고 조직화하여 논문이라는 걸 써낼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만약 꾸역꾸역 졸업은 한다 해도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재수, 삼수까지 하고도 수련처를 들어가지 못하는 석사 졸업생들이 누적되는 상황인데, 졸업 한다고 해도 백수로 전락하는 건 아닌지 걱정은 계속 꼬리를 물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불안에 잠식되어 좌절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연구와 수련 준비 공부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매일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연구실에 있었고, 주말에는 좀 느즈막히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을 수 있는 컵밥이나 샌드위치 따위를 사서 연구실로 향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엔 매우 지친 상태였지만 그대로 잠이 들기엔 아까웠다. 놀고 싶었다. 그때 아주 짧은 시간 나를 이완시키며 휴식과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술이었다. 집에 와서 맥주를 마시면서 무한도전이나 1박 2일 같은 예능을 보고 깔깔 웃다 잠들면, 그날 하루의 피로는 모두 잊히는 듯 했다. 다행히도 그 학기 졸업을 할 수 있었고, 더욱 운이 좋게도 병원 수련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수련생일 때에도 이런 일상은 지속되었다. 그 시절 혼술은 고된 일상과 고민들을 잠시 잊고, 휴식과 여가 시간으로 빠르게 전환해줄 수 있는 역할을 했다. 



  수련을 마치고 본가에 돌아온 뒤에는 자연스레 혼술도 줄어들었다. 일상도 그리 고되지 않았고, 짧은 시간 안에 술을 홀짝이는 거 말고도 놀 거리와 즐길 거리는 많았기 때문이다. 또 가족들에게 매일 술만 먹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도 했다. 이렇게 혼술러의 역사는 잠시 중단되었다가 이혼 후 혼자 살게 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 괴로워서 마시기 시작했지만, 괴로움이 사라진 후에도 종종 술을 찾았다. 하루 일과가 고단했으니 노동주의 느낌으로,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할 거라서, 유튜브 보면서 쉬고 싶어서... 이유는 매번 다양했다. 


  ‘탁. 꼴꼴꼴꼴.’ 맥주 캔을 따서 투명한 유리잔에 맥주를 따르면, 그 소리는 얼마나 경쾌한지. 보리 색에 가까운 액체에 위에는 부드러운 흰 거품이 있는 유리잔을 입에 대고 목으로 넘기면 내 몸 속까지 청량하고 시원한 기분으로 가득해진다. (이 문장을 쓰는 지금도 입맛을 다셨다!). 술이 그리 세지는 않아서 맥주 500ml 한 캔 정도면 곧 불콰해지고 만다. 하지만 술기운이 올라온 뒤에는 맨 정신에서는 하지 않을 인지적 오류가 생기고 만다. 더 많은 술이 들어오면 내 기분은 더 좋아질 것이니 아주 많이 취할 때까지 마셔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그렇게 술을 한 잔에서 끝내지 못하고, 폭음을 할 때가 잦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내 석사 논문 연구 대상을 떠올려보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자제력이 좀 더 생기겠지만, 혼자 마시는 술은 쉽게 자제력을 잃고, 또 대화를 하지 않으니 빨리 마시게 된다. 매번 이런 식이라면 맥주를 한 캔이나 두 캔 정도만 사오면 좋을 텐데, 하필이면 수입 맥주는 4캔을 사야 할인이 된다. 이럴 때에는 꼭 알뜰함을 따지면서 4캔씩 사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엔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질 때가 많다. 20대까지만 해도 좋은 기분으로만 끝이 났다. 하지만 이제는 술 마신 당일 날 잠깐의 즐거움만 있을 뿐, 다음 날엔 숙취와 소화되지 않는 느낌까지 견뎌야 한다. 오전에는 술이 덜 깬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으며 몽롱하다. 오전 상담이 있기 전날은 일부러 술을 마시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술을 퍼붓고 숙취로 인해 오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낼 때도 있다. 저녁마다 맥주와 안주 삼아 먹은 과자들 때문에 체중도 엄청나게 늘었다. 


  이러다보니 술 마신 다음 날엔 팔할도 아니고 구할도 아니고 구점 구구구할 정도는 후회를 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술을 마실 때만 잠깐 좋을 뿐, 살이 찌고 건강에 해가 되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도 충분히 안다. 이렇게 해가 되는 걸 아는데도 쉽게 술을 끊지 못한다는 건 알코올 중독으로 가고 있다는 중요한 신호이기도 하다. 이젠 정말 각성해야 할 때다. 


  이제는 혼술러의 삶을 끝내든 아주 조금만 즐기든 해야 할 것 같다. 이제까지 술은 내 옆에 항상 있어주며 즐겁게 해주고 나에게 도움을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내 편도 아니었고 나에게 해가 되는 존재였다. 아쉽지만 이젠 멀리하자, 우리. 안녕…….


술술술술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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