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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설 Mar 08. 2024

알 수 있는 마음



  연휴에 친구를 만났다. 사는 지역이 다르기 때문에 보통은 서울 어딘가에서 만나는데, 서울은 어딜 가든 사람이 붐빈다. 이번에 간 한남동도 사람이 너무 많았다. 다행히 음식점에서는 10분 정도 기다림 만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이후 카페로 이동하여 이야기를 더 나누려는데 카페마다 도통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자리의 유무를 카페 입구에서부터 알려주면 좋으련만, 번화가의 카페들이 으레 그렇듯 커피를 제조하고 손님들에게 응대하는 것만 해도 직원들은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보이는 카페마다 들어가 2층까지 올라가보면서 자리가 있는지 확인하고 내려오기를 반복하던 참이었다. 여기에는 자리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한 카페에 들어섰는데 그곳은 반려동물 동반도 가능한지 입구 쪽 자리에 강아지 두 마리가 앉아있었다. 사람들이 주변을 왔다 갔다 하는데 짖지도 않고 조용히 앉아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 귀여워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카페도 2층까지 올라가서 역시나 2층에도 자리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내려오는데, 친구가 “어머, 여기 강아지들도 있었네. 예쁘다.” 라고 놀라듯 말하는 게 아닌가. 입구에서부터 귀여움을 한껏 뽐내는 것들이 친구의 눈에는 이제야 보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겨우겨우 빈자리가 있는 카페를 찾아내어 자리를 잡았고, 점심부터 시작된 수다는 늦은 저녁까지도 쉬지 않고 이어졌다. 이제는 집에 돌아가서 내 반려견 꼬미의 저녁을 챙겨야 할 시간이었다. 


  아쉬움을 누른 채 다음 약속을 기약하며 함께 지하철에 올라타 이런저런 얘기를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어떤 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그곳에 줄지어 있던 승객들이 지하철 안으로 우르르 탔다. 그 승객들을 보면서 역시 이태원 부근에는 외국인들이 많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구는 “아기 너무 귀엽다.” 라고 말했다. ‘승객들’이라는 한 무리로만 그들을 보았던 나와는 달리, 두 아이를 키우는 친구의 눈에는 승객들 중 아기가 먼저 보였던 것이다. 카페에서는 반려견을 키우는 나에게만 개들이 눈에 먼저 띄었듯 말이다. 같은 장면을 바라봐도 관심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르구나, 그렇다면 우리는 점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건 아닐까, 그렇게 사이가 점점 멀어지지는 않을까 아득한 생각이 이어졌다.  



  며칠 뒤 보호자 상담시간에 중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일을 그만둘까 고민 중이에요.” 아이가 등교도 어려울 정도로 힘든 상태니, 아이만 홀로 집에 두기는 마음에 걸린다는 이유였다. 출산 후 경력단절을 겪고 다시 커리어를 힘겹게 쌓아왔다는 것을 알던 터라, 듣는 내 마음도 무거웠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이가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면 직장 뿐 아니라 다른 것들도 전부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아이는 이제 어느 정도는 혼자 있어도 괜찮은 청소년이니까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며 돌봐줄 필요까지는 없다고 어머니를 다독였다.


  심리 상담이 끝난 뒤에도 먹먹한 마음을 안고, 나도 누군가를 위해 온 마음을 다 하여 희생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꼬미나 가족들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떠올려보며,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늠해보려고 해도 절대 그 마음의 깊이엔 도달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처럼 혼자 살아간다면 앞으로 죽을 때까지 그 깊은 마음은 경험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씁쓸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부모 역할을 경험한 적이 없는데, 앞으로 부모 상담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어지다가, 생각을 멈추었다. 사람은 경험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판단은 보류한 채,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 경험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 말이다. 


  심리상담 시간에 내가 경험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을 얘기하는 내담자들의 마음은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듯, 나와 다른 경험을 하는 내담자들이 대부분인데 그럴 때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잘 모르는 정보는 더 자세히 얘기해달라고 요청하고, 주의 깊게 듣고, 역지사지의 입장을 가져보면 그들이 경험했을 감정이 전달되어 나도 함께 느껴진다.  



  아이를 키우며 엄마로 살아가는 주변 친구들이나 학부모들의 마음을 내가 경험할 순 없을지라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더라도, 주의를 돌려 그 대상을 함께 바라보며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1인 가구의 비율이 계속 늘고 있어서 이제 전체 가구 중 35%에 가까워졌다는 기사를 봤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가족을 꾸린 삶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가족을 구성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은 혼자 사는 사람의 삶에 관심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한 집단에만 속해서 여기에만 매몰되어 있는 게 아니라,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삶도 놓치지 않고 바라볼 거라고 다짐해본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며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그날 먹은 것들...
그날 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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