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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설 Apr 11. 2024

4월의 마음


  가족을 잃은 슬픔을 이야기하던 내담자와 상담 시간이 끝난 뒤였습니다. 잠시 창 밖을 내다보며 내가 감히 그 깊은 슬픔과 고통을 헤아릴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참이었죠. 우연히 대기실에 있던 김기택 시인의 시집에서 이 시를 발견했습니다. 대기실 시 필사 존에 펼쳐져 있는 시집의 바로 다음페이지에 이 시가 있었던 겁니다.


  <유족>이라는 이 시를 보면서 상담을 하고 간 내담자의 마음이 정말 이렇겠구나,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몇 주 뒤 내담자도 대기실에 놓인 그 시집을 발견했고, 그 시가 꼭 자신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말로는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을 작가들은 더 섬세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는 듯해요. 마음을 울리는 이런 글들을 발견할 때,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함께 공유되는 그 순간이 정말이지 감동입니다.


  4월은 애도와 슬픔을 더 많이 떠올려야 하는 달입니다. 4월 3일(제주 4.3 사건)도 있고요. 4월 16일(세월호 사건)도 있으니까요.. 모두 다 같이 시를 공유하고 싶어 사진 올립니다. 슬픔을 겪는 사람의 마음을 함께 이해하려 한다면, 그 부피는 줄어들지도 모릅니다.





<유족>

             김기택 


숨 막힘을 숨 쉰다


안 삼켜지는 덩어리를 삼키다가

안 뚫리는 콧구멍을 뚫다가


튀어나오려는 붉은 눈알로 숨 쉰다

들뜨는 피부로 숨 쉰다

곤두서는 머리카락으로 숨 쉰다

식도가 딸려 나올 것 같은 목구멍으로 숨 쉰다


내장과 핏줄을 뽑아 올려서 숨 쉰다

근육과 골수를 짜내서 숨 쉰다


남은 수명을 단축시켜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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