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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Jeon Jun 14. 2020

머리카락을 자르고, 더 빠르고 가볍게 뛰어보기

집에서 머리카락을 댕강 잘라버렸다.


나는 가끔 너무 충동적이다. 그 충동 뒤에 따라오는 리스크에 대해서 어떤 자신감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라는 무책임감인지 나도 모르겠다. 허리까지 오던 머리를 집에서 가위로 어깨까지 싹둑 잘랐다.


이야기는 이렇다. 연말에 나갈 마라톤 연습을 하기 위해 긴 머리를 묶고 동네 대학교 운동장을 돌았다.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오자, 무게가 꽤 나가게 되었다.  무게 때문에 묶었던 머리가 자꾸 흘러내리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 긴 머리를 고수하고 있었지 생각해보니, 외모를 유지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모델 같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살을 빼기 전에는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머리까지 짧은데 뚱뚱하기까지 하면 최악이니까. 그런 모습을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도저히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날 이 모든 욕망이 귀찮아지고, 욕망의 크기가 너무 커져 오히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워지는 변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그때 나는 여성으로서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마음을 비웃으며, '나는 XX 멋있다’ 생각하며, 마치 이 시대의 영웅이 된 것처럼 가위를 들었다.  머리카락을 자를 때의 마음은 거의 흥분에 가까웠다. 가위로 무거운 머리를 뚝뚝 잘라버리면서 환희와 쾌감을 맛보았다. 제멋대로 삐뚤빼뚤 잘라버린 탓에 어깨와 옷에는 머리카락 잔해가 가득이었다.




다음 날, 나는 다시 미용실에 가서 아주 아주 짧게 머리를 잘라버렸다. 거의 머리가 남아있지 않을 정도였는데, 쑥스러워 머리를 긁으려 해도 손에 잡히는 머리카락이 희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머리를 처음 자르고 친구 브루스를 처음 만났을 때 반응이, 살짝 인상을 쓰며 ‘왜 이렇게 머리를 짧게 잘랐어!’였다. 누군가에게는 감당이 안될 정도로 짧은 머리였다는 의미였는데, 사실 내가 원하던 바이기도 했다.


사실 좀 더 세련되고 긱한 모습을 원하긴 했지만, 둥글 둥글게 흔히 하는 귀엽고 만만해 보이는 숏컷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머리는 시간이 지나면 길러지는 것이고 보통 남자들보다 짧은 머리를 할 기회는 평생에 다시 오기 힘들 것 같았다.


미용실을 나오며 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추웠다. 머리카락이 없어서 휑했고, 무엇인가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익숙해지는데 2주가 걸렸다. 머리를 자른 나 자신에게 익숙해져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때로는 화들짝 놀라고 뒷골이 차가워진다. 순간 후회의 감정이 감돌기도 했다.




나는 마드리드 스페인어 수업에서 만난 '리사'를 떠올렸다.  중국인인 그녀는 런던에서 스페니쉬 남편을 만나 같이 마드리드로 왔다. 그녀는 큰 입으로 호탕하게 웃으며, 늘 식당 밖에서 이탈리아 친구와 담배를 피웠다.


리사는 아주 짧은 숏컷이었는데, 마드리드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집에서 큰 가위로 길고 풍성한 파마머리를 스스로 댕강 잘라버렸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녀를 이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보다, 스스로를 위한 자유와 낯선 도시에서 혼자 서있고 싶은 담대함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2주 정도 지나자, 주위 사람들이 모두 내 새로운 머리에 익숙해졌다.  당혹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멋있다고 말해주었다. 머리카락은 머리카락일 뿐이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다만 나는 달리기를 더 빠르고 가볍게 뛸 수 있게 되었고, 나 자신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 차오르는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긴 머리카락을 잘라버리는 행위는 여성에게 스스로 용기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몸과 마음의 자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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