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송의 성별 여행기
친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은 꺼냈습니다.
"OO아... 나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잠깐 들어줄 수 있어?"
"무슨 일 있어?? 어어 말해봐."
" 나 사실은 트랜스젠더야. 남자 좋아하고. 저번 달에 민증 바뀌었어"
"아 근데 그럴 것 같았어 ㅋㅋ. 그동안 고생 많았어. 후련하겠다."
트랜스젠더로서 살아가면 원하던 원치 않던 어쨌든 커밍아웃을 하게 됩니다.
커밍아웃은 'Coming out of the closet'라는 영어 문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인의 정체성을 숨겨두던 벽장에서 벗어나 주변에 자신을 알리는 것입니다. 지금은 수없이 하며 많이 무뎌졌지만, 트랜지션의 초기만 하더라도 손을 벌벌 떨고 몇 번씩 곱씹어가며 하였습니다.
기억 속에 강렬히 남아있는 커밍아웃 중 하나는 정신과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담 선생님께만 저 자신을 알리고, 주변에는 남성을 연기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다만 트랜지션을 하기로 마음먹었기에 정신과에 진료 예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알리는 것에 큰 부담이 있었습니다. 크게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휴대전화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한 후 정신과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뚜루루... "네 OOO의원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다름이 아니라... 어... 성츄체 아니... 죄송합니다 성주체성 검사를 받고 싶어서 전화드렸어요"
"아 네. 성주체성 검사 맞으시죠? 성함이...?"
"네네 OOO이고요, 혹시 가장 빠른 검사날짜가 언제일까요?"
"12월 OO일이네요. 시간 괜찮으세요?"
"네네 괜찮습니다. 예약 부탁드릴게요."
"네 예약금 OO만원 입금하셔야 확정되시구요. 문자 남겨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한국에서 의료적 트랜지션의 첫 단추는 정신과에서 'F64.0' 진단을 받는 것입니다. 정신과 대분류 'F', 그중 성인 인격 및 행동 장애 '6', 그리고 세부 분류로서의 성주체성장애입니다. 아래는 진단기준입니다.
아래 항목 중 2가지 이상을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경험해야 하며, 이로 인해 임상적으로 중대한 심리적 고통이나 사회적/직업적 기능 장애가 동반
- 지정성별(출생 시 성별)이 아닌 다른 성별이 되고 싶은 강한 욕구
- 지정성별이 아닌 다른 성별로서 대우받고자 하는 강한 욕구
- 자신의 성 정체성과 신체적 성징 사이의 중대한 불일치감
- 지정성별의 성징이 아닌 다른 성의 성징을 갖고자 하는 강한 욕구
- 자신의 성 정체성과 일치하지 않은 자신의 성징을 없애고 싶어 하는 강한 욕구
- 지정성별과 다른, 자신이 정체화한 성이 보이는 일반적인 행동과 정서를 자신이 지니고 있다는 강한 믿음
F64.0 코드를 받게 되면 이후의 호르몬 치료나 성확정 수술이 가능해집니다.
어느 겨울, 트랜스젠더분들이라면 대부분 알만한 서울의 한 정신과에 내원하였습니다. 나무로 된 인테리어가 고풍스럽게 느껴져서인지 약간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개미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저... 성 주체성 장애로 검사 예약되어 있어요" 한 후 대기실에 앉았습니다.
몇 분 후 이름이 호명되고, 백발의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제 얘기를 꺼내는 것을 무척 망설였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계기가 무엇인지, 생각이 확고한지. 짤막한 대화를 나누고 길다긴 MMPI 검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로는 임상 심리사 선생님과 비슷한 말씀을 나누고 풀배터리 검사 중, 나머지 SCT, HTP, 벤더-게슈탈트 등 다양한 검사를 마치고 귀가하였습니다. 검사를 진행하며 복잡했던 마음은 이내 차분해졌고, 나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에 집중하였습니다. 병원 문을 나서며 꽤나 후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주일 후 등기가 도착하였습니다. "질병명: 성전황증. 질병 분류번호: F64.0"
정신과 진단은 저에게 확신을 주는 분기점이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 자신만의 판단이 의학적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의구심이 컸었습니다. 저 자신에 대한 의심의 잔불이 약간은 남아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진단을 받은 이후에는 확신 있게 저 자신이 트랜스젠더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를 가둬두고 있던 벽장으로부터 한 발짝 내딛는 계기이기도 하였습니다.
"나, 트랜스젠더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