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송의 성별 여행기
저는 중증 우울증으로 오랜 기간 상담을 받았어요. 어느 날 상담 선생님과 "장례식 그려보기"라는 활동을 하였어요. 죽음 이후의 나를 그려보는 것은 꽤나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처음에는 지금처럼 쭉 살아가면, 실제로 일어날 법한 상황을 상상하며 장면을 묘사하였습니다. 저는 명망 높은 학자였고, 동료 교수들은 제 업적을 나열하며 학계에 기여한 점들을 추모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의를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이번에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죽음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 순간,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소박한 장례식장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제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비록 수많은 인파는 아니었지만, 그 공간은 따뜻함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울음이 터져 나왔어요. 그동안 사회가 바라는 모습에만 맞추어 살아왔고, 정작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장례식 그려보기"를 하며 저는 지금껏 명예를 위시하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사실 가정과 사랑을 중시한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또한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저는 저 자신을 솔직하게 대하지 못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는 어릴 적부터 머리를 기르고 싶어 하고 예쁜 옷을 입고 싶었어요. 다만 저의 지향을 철저히 숨기고 죄악시하였어요. 주변의 시선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저 자신에 솔직해지기로 다짐하고, 조금씩 변화를 시도해 보았어요.
먼저 머리를 길렀어요. 주변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움츠려 들었지만, 타인은 놀라울 리만큼 저에게 관심이 없었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머리카락이 뒷목에 닿는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머리를 말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머리 관리 하는데도 비용이 들어갔지만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평생 원해왔던 것이니까요.
맞닥뜨리기 전에는 나를 압도하는 거대한 산맥이었지만, 막상 정상에 다다르고 나니 모든 게 조그마하게 느껴졌어요.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행복은 사회적 지탄보다 훨씬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어릴 적 저는 죽음을 매우 두려워하였습니다. 아마도 평생 가면을 쓰고 인생을 살아왔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살지 못한 채 연명하다, 주어진 시간이 마침내 끝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진정한 저로 살아갑니다. 매 순간 거짓 없이, 제가 추구하는 가치를 이루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래서 언젠가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슬퍼할지언정, 후회는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트랜지션의 길을 걸으며 저는 많은 것을 잃었어요.
건강, 생식권, 인간관계, 은행잔고 등 셀 수 없이 내려놓아야 했어요.
하지만 내가 진실된 나로서 존재하는 것,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나로 설 수 있다는 것.
많은 것을 잃었지만 진정한 나를 찾은 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