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호르몬 치료 (1) 본격적 시작

송송의 성별 여행기

by 새롬

저는 F64.0 진단서를 받고 나서, 곧바로 HRT(Hormone replacement therapy)를 시작하지 못하였어요. 오히려 거의 6개월 동안 깊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저는 남성적인 생물학적 특성을 지우고 여성적인 신체를 갖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HRT를 시작하면 다시 남성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생각에 망설여졌고, 앞으로 몇십 년 동안 인위적으로 호르몬을 주입해야 한다는 점도 번거롭게 느껴졌습니다.


새벽녘에 고민을 하던 저는, 일기장에 HRT의 장점과 단점을 나열하였습니다.

장점
- 근본적인 우울감을 해결할 수 있음
- 한번 사는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 싶다
-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의 첫걸음이다

단점
- 재생산권 박탈
- 연애와 결혼이 어려워질 수 있다
-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 일정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가기 어렵다
- 사회적 시선이 무섭다

이윽고 해가 뜨자 무작정 HRT 치료를 진행해 주는 병원으로 떠났어요. 수많은 단점이 있음에도 역시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저에게는 제일 중요했어요. 사실 저에게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단순히 실행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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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과 간략히 상담을 한 후, 에스트라디올 데포 주사 (여성호르몬 주사)와 안드로쿨(남성호르몬 억제제)을 처방받았습니다. 주사실에 가자 간호사 선생님께서 주사를 놓아주셨습니다. 병원 1층 약국에서는 안드로쿨을 처방받아 매일 반알씩 복용하로 하였어요. 병원에 가기까지는 많이 불안하였지만 막상 치료를 시작하고 나니 오히려 불안감이 사라졌습니다. 지금까지도 치료를 번복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사실 그때 두 가지를 간과했던 것 같아요.

1. 모든 트랜스젠더가 HRT를 하지 않는다.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반드시 HRT나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 어디까지 할지는 자유이며, 자신의 속도와 방식에 따라 선택할 수 있습니다.


2. HRT를 시작한 후에도 중단할 수 있다.

HRT를 시작했다고 해서 반드시 계속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간에 마음이 바뀌거나 건강상의 이유가 생기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어요.

트랜지션은 정해진 목표나 기준이 있는 과정이 아니에요. 모든 트랜스젠더가 똑같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며, 각자의 편안함과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누군가는 HRT나 수술을 선택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나에게 물어보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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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불안감이 컸고, 시작하기 전 두려움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몇 번이고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습니다. 굳이 후회를 꼽자면, 조금이라도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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