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미 완전한 존재들 21
우리나라 전래동화 중 「해님과 달님」처럼 주인공들이 극적으로 구출되는 게 또 있을까. 엄마를 잡아먹은 호랑이가 다짜고짜 찾아와 방문을 부술 듯 두드리는 것도 황당한데, 이 몰염치한 호랑이는 이들을 잡아먹겠다며 죽어라 쫓아온다. 하늘은 이를 가엾이 여겨, 이들에게 동아줄을 내리고 승천한 오누이를 해님과 달님으로 만들어 낮과 밤을 관장하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양을 살펴보면, 사실 이들의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뒤에 집채만 한 호랑이는 없지만, 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에 쫓기며 달리는 건 매한가지이다. 사방엔 산기슭과 어둠뿐이라,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달리는지 도통 모르겠다. 어디를 가야 안전한지도 모른다. 안식처도, 도와줄 누군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그런 막막한 순간을 맞닥뜨릴 때가 있고, 지금도 그 속에 있을 수 있다.
아닌가, 나만 이런 건가. 맞다. 생각해보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모두 현명하게 그런 순간을 이겨내실 것 같다. 창피하지만, 솔직하지 않으면 글을 완성할 수 없을 것 같아 써본다. 자기연민이라고 보셔도 할 말 없다. 사실 내가 그런 막막함으로 자주 마음이 울컥했었다. 해로운 생각이지만, ‘너는 쓸모없고, 부족해서 너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순간 아무도 너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넌 추방당했어. 살아갈 가치가 없어.’ 한 번 그런 생각에 쫓기면 끝도 없었다. 멈추고 싶지만, 나의 고민에 대한 답은 보이지 않고 그런 답을 줄 누군가도 보이지도 않아서, 그리고 이미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컴컴해졌다.
그런데 신기한 게, 글쓰기를 하면 그런 생각이 사라진다. 글쓰기를 할 때 기분을 나에게 물어본다면, 발레 슈즈를 신고 춤추는 빌리 엘리어트의 것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처음엔 좀 어색하지만 일단 추게 되면 모든 걸 잊게 돼요. 마치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워져요.”
시작할 땐 과연 오늘의 글을 완성할 수 있을지 걱정되지만, 어느 순간에 그런 두려움을 잊게 된다. 맹렬한 호랑이 같이 나를 삼키려 하는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명확한 해결책이 생긴 건 아닌데도, 그런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아도 이미 불안이 잠잠해져서 괜찮다. 무엇보다 내가 누구인지 알겠다. 사유하고, 글을 쓰는 내가 진짜 나 같다. 나쁜 생각으로 얼어붙은 마음이, 글을 쓰면서 조금씩 녹는다. 그래서 나에겐 글쓰기가 동아줄인 셈이다. 안 죽어도 되고, 죽을 리 없다는 것을 알려 주는 동아줄.
지금은 그 동아줄을 잡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올라가고 있다. 올라가다가도 쭉 미끄러져 내려갈 때도 있지만, 글을 쓰면 ‘살았다’, ‘더 살아도 된다’와 같은 안도감이 생겨서 내려가는 게 이젠 덜 두렵다. 다시 올라간다.
마침내 위로 올라갔더라도 해님도, 달님도 되지 못할 수 있다. 상관없다. 동아줄 아래에서 떠돌아다니는 두려움이 이젠 내 것이 아니니. 하늘을 자유롭게 유영할 것만 남았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 몸과 마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