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완완 Jan 06. 2023

새들의 세상

우리 이미 완전한 존재들 3

  여수에 다녀왔다. 아버지와 친한 분이 계시기도 하고 우리 가족은 산보다는 바다 쪽으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니 안성맞춤인 여행지이다. 그런데 작년 여행에 비해 이번 여행은 조금 심심하다. 아마 뇌리에 깊이 각인된 플라잉 그네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관광지 팸플릿에 한 면을 차지할 만큼 소문났다 하더라도 레저스포츠를 즐기지 않는다. 나도 고집이 참 대단한 게, 옆에서 깔깔대고 함성을 지른다 한들, 나쁜 마음 없이 재미있게 사신다고 생각하는 게 끝이다. 나, 그리고 성품이 비슷한 가족들은 맛집, 카페에 가거나, 자연휴양림, 산책로를 가는 걸로 족하다.


  

 그런데 그날은 아버지의 친구분, 친구분의 아내 되는 분이(이하 사모님이라 호칭하겠다.) 동행하셨다. 말씨에 사투리도 베여 있고, 여수 곳곳에 뭐가 있는지 물어보면 탁 나오는 분이라, 토박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래도 자신을 ‘여수 홍보대사’라며, 우리가 가야 할 곳을 한 곳 한 곳 성의 있게 골라 주시고, 여수의 유명한 갓김치, 각종 장을 정성껏 챙겨주시는 게 너무 감사해서 모두 그분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 그분이 추천하신, 현지인들이 잘 가는 식당에서 반질반질한 향토 음식 한 상을 먹고 배를 통통 치며 차에 올라탔을 때였다. 나를 보시며 대뜸 “너 플라잉 그네 타야 하는데.”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플라잉 그네요? 그게 뭐예요?”

“한 번도 타본 적 없니? 있어 봐. (사진을 보여주시며) 이게 플라잉 그네야.”


 그러니까 사모님이 말씀하시는 플라잉 그네가 무엇인가 들어보니, 한 마디로 바닷가 쪽 높은 절벽에서 매달은 그네를 타는 것이었다. 안전장치가 있다고 하지만, 절벽은 생각만 해도 아득해져 “아, 전 겁이 많아서요.”라고 대답하며 웃으면서 거절했다. 그런데 사모님은 “아, 그러니? 그런데 이미 예약했는데.”라고 간단히 내 거절을 거절하셨다... 가족들도 이왕 온 거, 해본 것만 하지 말고, 안 해본 것 좀 하라는 눈치를 줬다. 글쎄, 전 겁이 많다니까요!


 그렇게 내 마음과 다르게 몸은 그분의 진두지휘를 따라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보니 사진을 제대로 찍으려면 거기서 대관하는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고 해서 드레스를 입고 있고, 어느 순간 보니 플라잉 그네의 안전장치를 허리 쪽에 단단히 잠그고 있고. 아 이런, 정말 살고 싶은데... 그네 자체가 무거워서 혼자 힘으로 탈 수 없으니, 뒤에 밀어주시는 분도 계셨다. 내려다보니 세상에, 우리가 있는 곳이 얼마나 아찔한 절벽이었는지 실감이 났다. 머리가 핑핑 돌 것 같아서 옆에 그넷줄을 나도 모르게 단단히 사로잡았다.


“저 잠시만요. 이건 좀 아닌 것 같았으아아아아악_와아아아아아아아...”

 

 저 우스운 비명 안에 내 감정의 변화가 모두 담겨 있어, 글에 담지 않을 수 없다. 그때의 내가 본 풍경을 이 글에 다 담기엔 내가 알고 있는 찬탄의 어휘가 참 박약하다. 그날은 여름이었고, 여수가 특별히 덥지 않았지만, 원체 체질이 땀이 많아 찝찝했다. 에어컨 바람을 쐬더라도 땀이 말라붙은 옷 때문에 시원한 물로 샤워하는 게 그리워졌는데, 그 그리움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인간의 힘으론 만들 수 없는 하늘 속 산뜻한 바람이 넘실대며 내게 흘러왔다. 하늘 위에는 하얀 솜을 쫙 펼친 것처럼 구름이 떠다니고, 바로 밑에는 코발트블루 바다의 지평선까지 보이고. 짭조름한 바다 향기가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데 텁텁했던 목구멍 안의 먼지가 걷히고 향긋해졌다. 위로 올라가는 순간 하늘과 가까워지고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바다와 가까워졌다. 이곳의 새들은 비상할 때, 낙하할 때 이런 풍경을 보는구나. 새들의 세상을 조우하는 기분이었다. 내 몸이 하늘과 바다에 이토록 가까워졌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겁을 집어먹은 것도 잊고, 또 어른이었던 것도 잊은 채, 마치 어린아이가 신나는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발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공중을 걸었다. 낮은 목소리로 와와 거리며 감탄했다. 시끄러운 함성을 내지르면 바닷가의 파도 소리도, 뱃소리도, 새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그때 찍은 한 컷은 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걸어두었다. 지인들이 언제 이렇게 재미있는 걸 탔냐고, 사진이 예쁘다고 칭찬하는데 목소리에 호기심도 묻어 나왔다. ‘너처럼 겁이 많은 애가 이런 것도 하니?’하는 듯한. 괜한 노파심인가. 아무튼 꽤 오랜만에 뽐내듯, “플라잉 그네라는 건데, 이게 처음에는 엄청 무섭거든? 근데 막상 타면...”하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상대가 들으면 너무 시적이라고 부담스러워할까 차마 이야기 못 했지만, 두고두고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있다. ‘너는 새들의 세상도 보고 왔잖아.’ 피식 웃게 되지만, 이것만큼 그때의 느낌을 잘 설명해주는 표현도 없다. 가만히 온몸으로 느껴졌던 그때의 풍경과 감각을 떠올리곤 한다. 그토록 충만했던 여행의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때로는 다른 의미로 나를 안심시킨다. ‘이렇게 두려움이 많은 내가 인생의 충만함을 누리고 살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들 때마다 그 기묘하고 감각적인 하루를 떠올린다. 정말 예상치도 못했는데 사모님에게 잡히듯 플라잉 그네를 타러 가고,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었던 것도 잊고 바다와 하늘을 온몸으로 느낀 그 시간을 떠올리며, 내가 아무리 피한다 한들, 불가항력적으로 만나게 될 빛나는 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안심을 느낀다. 그때가 되면 또다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순간을 맞이하러 가겠지. 아직 보이지 않는 인생의 아름다움에 벌써 감동된다.

이전 03화 틀 밖 세상 참 좋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