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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완 Feb 06. 2023

틀 밖 세상 참 좋아.

우리 모두 살아남을 존재들 14

  내가 직접 그리고 쓴 처음 그림책 ‘상자틀세상’에는 기묘하게 생긴 주인공이 나온다. 손가락은 12개, 눈은 세모와 동그라미, 몸의 색깔은 파란색. 세상에는 네모난 상자 틀이 가득한데 주인공은 어떻게든 몸을 그 틀 속에 욱여넣으려고 한다. 몸에 무언가를 붙이기도 하고, 떼기도 하고, 칠하기도 하지만, 맞지 않는 상자 틀에서 신음하며 상처받는다. 고통을 당하고 나서야, 틀 안이 얼마나 좁고 답답했는지, 그리고 틀 밖 세상이 얼마나 넓고 아름다웠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마침내 주인공이 드넓은 세상을 걷고 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우연히 다지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다지증이란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수효가 정상보다 많은 기형(네이버 사전)을 의미한다. 옛날에는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도 있었지만, 요즘은 대부분 일찍이 수술을 받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없다. 생활하기에 불편함도 따르지만, 하도 사회적으로 백안시되고, 심지어 이들을 낮잡아서 ‘육손’이라고 부르니, 이를 견딜 수 없어 손가락을 절단한다고 들었다. 손가락이 12개, 13개인 게 그렇게 대수일까. 사람들도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손가락만 10개일 뿐 이들과 내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누군가의 시선을 참다못해 스스로 나의 무언가를 떼어 내버리고 있었다.

 나는 목회자 가정에서 자랐다. 목회자의 아이는 반은 목회자나 다름없다는 게 가장 슬픈 운명이다. 교회에선 ‘목회자는 이래야 해’. ‘목회자의 가정은 이래야 해’라는 틀이 있었다. 그 거룩한 틀에 맞지 않을 때마다 꽤 여럿이 수군덕거렸다. 그런 환경에서 오랜 시간 자라다 보니 늘 스스로 검열했다. 일요일만이 아니라, 월요일도, 토요일도. 늘 떼기도 하고 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교회에서 아이들을 봐주고, 아이들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서 나는 아이들을 꽤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자연히 이쪽으로 직업을 가졌는데, 내 생각보다 내가 이 직업군에 잘 맞지 않는 성격임을 알게 되었다. ‘상당히 내향적이네요’라는 말을 실습 때부터 자주 들었다.

 매일 웃는 눈과 입꼬리, 평소 톤보다 한껏 올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대해야 그나마 그들과 비슷하게 물들 수 있었다. 그렇게 필사적이었지만, 모종의 사건을 겪고(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아동학대는 절대 아닙니다.) 이곳에 적응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뒤 퇴사했다. 졌다고 생각했다. 끝내 그 틀에 들어맞지 못한 패배자가 된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모임의 진행자가 자꾸 나에게 물었다. 완님이 펼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고. 그림책은 아름다워야 할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꾸며낸 이야기만 말하고 있는데 질문을 들을수록 그건 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고민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뭘까. ​

 문득 ‘내가 왜 밝아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목회자의 가족은 화목해야지. 어떤 가정이든 화목하게 살아야 하는 건 맞잖아. 뭐든지 잘하고, 열심히 해야지. 내가 선택해서 이 직업을 가졌으니, 나의 반 아이들에게 늘 친절해야지.’ 이해가 되긴 하는데, 내가 왜 밝아야만 하는지 자꾸만 의문이 들었다. 이런 의문을 품고 나서야 그동안 나는, 나로 살 수 없었고, 그럴 자유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거였구나. 나로 살 수 있는 자유. 이를 담은 스토리보드를 짰다. 내 첫 그림책 스토리보드의 대주제는 ‘자유’였다.

 캐릭터를 구성할 때는 꼭 여섯 손가락이어야만 했다. 시선 때문에 주인공은 손가락을 자르게 되니까. 그리고 눈은 동그라미와 세모이다. 네모난 상자 틀을 동그랗고 세모나게 보는 것만으로 주인공은 ‘별종’ 취급받는다. 피부 색깔, 색의 언어로 파란색은 슬픔을 의미한다. 늘 웃는 가면을 써야 하는 상자 틀 세상에서 파란색은 인정받는 색깔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주인공은 곧 나의 페르소나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넘어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다. 꼭 붙이지 않아도, 떼지 않아도, 칠하지 않아도 된다고. 틀 밖에서 나올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나는 아직 틀 밖으로 나오지 못한 것 같다. 그 걸음을 떼기가 조금 무섭다. 그래서 지금은 매일 연습한다. 글쓰기를 하면서 내 이야기를 꺼내는 연습. 나로 사는 사람은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요즘엔 일부러 SNS에 공개한다.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인 줄 내 친구들과 지인들 모두 안다. 그러니까 더 연습해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 그걸 말하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곧 머지않아 내 이야기를 시각화할 수 있는 다음 그림책을 완성할 것이다. 지금의 나에겐 변변한 직업을 가지는 것보다 나로 살 힘을 갖는 게 훨씬 중요하다.

 언젠가 나와 같은 고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내 책이나 글로 위로받으면 좋겠다. 뛸 수도 있고 걸을 수도 있는 틀 밖 세상 참 좋다고. 그 세상에 도달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는 그 길고 긴 시간을 응원할 수 있다고. 당신은 그런 삶을 살 수 있으며 그러고도 남는다는 나의 위로가 나와 타인을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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