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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완 Jan 05. 2023

도망치지 않기

우리 이미 완전한 존재들 1

  조금 부끄럽지만, 돌연 “너는 대학에 다녀야 해.”라고 말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늦은 나이에 재수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밤에도 하얀빛으로 가득한 재수학원의 교실이 아직도 기억난다. 첫날 아는 이들 하나 없이, 영어 단어와 문법, 국어 문법을 줄기차게 노트에 쓰고 외웠었다. 그리고 둘째 날, 셋째 날, 수학과 국어 시간, 칠판에 미적분 공식을 하얀 분필로 가득 채우는 선생님이 갑자기 학생들을 쳐다보며 “설마 이 반에 시그마 모르는 학생이 있는 건 아니겠지? 이거 모르면 재수 못하지.”라고 말했다. 유감스럽지만, 그게 나였다. 그리고 국어 시간, 비문학 지문을 분석하는데, 세상에 우리나라 국어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수학이면 몰라도, 국어가 이해 안 되면 정말 답이 없는 게 아닌가.


 그날 밤, 엄마에게 말했다.


“나 재수 안 해.”

“왜?”

“수업 이해가 안 돼.”

“이해하라고 거기에 너 보낸 거 아니야. 일단 거기에 있어.”


  창피하지만, 엉엉 울면서 새벽에 학원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살던 대로 살게 해 주지. 그리고 내 공부 플래너를 살펴보던 담임선생님에게도 물었다. “저 같은 학생이 정상 맞아요? 학원 못 다니는 거 아니에요?” 그러자 선생님은 “다녀봐. 계속 다녀보면 네가 이해되는 게 있어.”라고 말해며 나를 돌려보냈다. 그래도 분명 수학 선생님이 그랬는데. 나 같은 애는 재수 못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막막함과 함께 교실로 향했다.


 짐이라도 싸야 하나. 도망이라도 가야 하나. 주변에 보니 애들은 모두 이해하는 눈치인데. 나 같은 애는 없는 것 같고. 꼭 이방인처럼 외로워졌다. 그래도 눈앞에 있는 수학 문제는 내 마음을 찜찜하게 했다. 그렇게 어렵게 생겨 먹은 주제에 꼭 ‘안 푸니. 대학 안 갈 거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문제집을 갖고 질문하러 선생님(앞에 말한 수학 선생님과는 다른 분)께 찾아갔다. 설명은 해주는데 앞에 있는 애는 전혀 이해를 못 하는 눈치이니 “너 솔직히 말해봐. 지금 내 말 안 들리지?”라고 물었다. 이해가 안 되냐도 아닌, 내 말이 안 들리냐는 게 내 처지에 더 들어맞는 말이었다. 이해는 고사하고 뭔가를 들을 여유조차 없었다. 그리고 나는 “하나도 이해가 안 돼요.”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 선생님은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너 온실 속 화초처럼 컸지.”

온실 속 화초. 따지고 보면 맞았다. 나는 유학 가기 위해 다녔던 국제학교에서도 그렇게 잘 적응한 편은 아니었다. 이 ‘마음이 다친 화초’가 상처를 입을까 부모님은 나에게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두는 건 더 이상 나를 망가뜨리는 것과 다름없다고 결론을 낸 부모님이 마침내 재수학원에 보낸 것이다.

“사막에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 힘 좀 갖춰라. 너 지금 표정 보면, 그리고 네가 말하는 거 보면 애야 애. ‘못 버티겠어요. 못해요 나.’ 네 표정만 봐도 알겠다. 몸은 다 컸는데, 나이는 다 찼는데, 그냥 애라고. 너 지금 도망치고 싶은 거 알아. 그런데 지금 도망치면 앞으로 계속 도망만 칠걸? 나는 24살에 재수했어. 난 너처럼 국어는 진짜 모르겠더라. 그런데 나 담당해주신 선생님이 그랬어.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너도 마찬가지야. 너도 시간이 필요해.”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외워야 할 기초공식을 몇 개 짚어줬다. 그리고는 “머리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머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넌 얼마 못 가겠다.”라고 말하며 나를 돌려보냈다.


 문제집을 들고 교실로 향하는데, 창피한 마음 반, 화나는 마음 반이었다. 내가 왜 못 버텨. 몇 달 뒤에도 내가 없나 봐라. 그렇게 책상 자리에 앉았건만, 굳은 결심이 무색하게도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는 내 속을 답답하게 했다. 학원이 끝나면 밤 11시인데, 따로 수학 기초 인터넷 강의까지 듣고 오니 진짜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신기하게 석 달을 그렇게 끙끙대니 5월 달에는 수업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다. 문제가 다 풀리는 건 아니었지만, 공식이나 문제 자체는 이해가 됐다. 틀리는 게 전에는 당연했는데 인제는 좀 화가 났다. 언젠가 말이 안 들려서가 아니라,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나에게 뼈를 깎는 충고를 한 선생님께 찾아갔다.


 “이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데 다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설명해 주고) “요즘은 할 만해?”라고 묻는데

“네. 버틸 만해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내 어깨를 손으로 살짝 때리며 “이제 좀 어른 같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망의 수능일. 사실 모의평가나 사설 시험지를 풀 때는 진짜 아는 게 거의 없어서 문제 푸는 시간보다 자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런데 그날은 시험 마지막 시간까지 풀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 옆에 학생들은 대부분 엎드려 자고 있었다.


 오랫동안 공부를 놓았고 1년도 아니고 2월부터 시작해 10개월 준비한 사람이 성적을 뒤집을 수 있겠는가. 그 정도 준비하면 나올 수 있는 성적이 나왔고 거기에 맞춰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교정을 걷다 보면 가끔 재수 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정말 막살 수 있었는데,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재수를 했고, 학원을 끝까지 다녔고, 대학에 오게 되었고. 재수 전까지는 도망치는 게 익숙했던 내가 뭔가 하나를 통과해낸 게 기쁜 것보단 신기했다. 만약 재수마저 도망쳤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갔을까.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이후에 강철멘털이 되어 내 앞에 있는 모든 문제를 무찌르고 그런 건 아니었다. 생각보다 훨씬 평범한 나는, 나와 맞지 않는 직장에 다닐 때는 정말 탈주하고 싶다는 심정으로 다녔고, 결국 그걸 실행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의미를 찾았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이라고 나도 거기에 휩쓸리듯 살아가는 게 아니라, 뭔가를 좀 더 찾아보자. 지치도록 좋아하는 걸 배워보자. 그러다 무섭다고 남들 다 가는 길로 도망쳐서 또다시 허우적거리지 말자’와 같은 걸로.

 

 내 인생에는 도망의 의미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말 가야 할 길을 피해버린 도망. 나머지는 마땅히 찾아야 할 것을 찾지 않고 피해버린 도망. 그때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이 요즘 계속 떠오른다. 한 번 도망치면 계속 도망치게 된다고. 이제는 도망치고 싶지 않다. 용기를 내고 싶다.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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