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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완 Jan 06. 2023

불안은 넘지 못할 벽도, 파도도 아니다.

우리 이미 완전한 존재들 6

우리 이미 완전한 존재들 5

  지금 내 안에 어떤 감정이 흐르는지 들여다보았다. 왠지 모를 불안함과 찜찜함, 또 감정이라고 말하기엔 거리가 있지만, 답답함이 느껴졌다. 평소 방에서 사용하는 책상과 의자는 내 신체와 잘 맞지 않아 불편한 터라, 부엌 식탁에서 글쓰기나 공부를 하는데 바로 옆에 거실에서 엄마가 TV를 시청하고 있다. 모두가 생활하는 공간인 만큼 당연히 이해해야 하나 소음은 소음이다. 


 글을 쓰기엔 편안한 마음 상태도, 환경도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 매번 좋겠어?’라고 생각하며 애써 글쓰기를 시작하려 했는데 ‘이 감정을 그대로 방치할 필요는 없잖아?’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 감정을 환기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선 기모 재질이라 따뜻하긴 하나 목 주변을 갑갑하게 만드는 후드를 벗었다. 그리고 보풀이 조금 일었지만, 자주 입는 편안한 검정 니트로 갈아입었다. 구매한 지 얼마 안 되었고 춥기도 해서 아무 생각 없이 입었는데 벗고 보니 이 옷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알게 되었다. 몹시 추운 날, 밖에 나갈 때나 입어야겠다. 그러고 나서도 몸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아침을 먹고 남은 그릇들을 모두 설거지했다. 계란말이를 먹고 남은 프라이팬에 세제를 묻혀 뜨거운 물에 잠시 불린 후, 그 사이에 행주로 싱크대 주변을 닦으며 마지막으로 프라이팬도 함께 설거지했다. 요새 자주 마시고 있는 도밍고 홍차 티백에 우유 200mL를 부어 냉장고에 미리 냉침해두었다. 그동안 침대 위에 있는 겉옷들을 옷걸이에 걸고, 푹신한 쿠션을 침대 머리맡에 두었다. 더 이상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베드테이블 위에 노트북과 밀크티가 담긴 텀블러를 올려놓았다. 쌀쌀한 방에서 추위를 막아줄 무릎담요를 펼쳐 덮었다. 평소에 끼던 블루투스 이어폰 대신 오늘은 스피커로 음악을 듣기로 했다. 억지로 기분 내려고 틀어놨던 크리스마스 캐럴 대신 빌 에반스의 재즈를 들었다. 잔잔하고 서정적이라 듣기에 더 편안하고 좋았다. 


 조금 후련한 마음이었다. 비록 시간은 조금 지났지만, 기분이 아까보다 훨씬 나아졌다. 문득 오은영 박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피곤함이 쉽게 가시지 않는 사람들은 사실 정말 피곤해서가 아니라, 뇌의 각성이 덜 되었기 때문이라고. 뇌의 각성을 막는 것은 대개 부정적인 감정인 경우가 많은데, 불안함이나 우울감을 들 수 있다. 


 방금까지 나는 불안에 좀먹는 느낌이었다면, 이제 스스로 불안을 야기하는 주변의 요소를 제거하면서 비록 작은 부분이지만 환경을 통제할 수 있었다. 사실 내가 무엇 때문에 불안을 느꼈는지 나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환경에 지배받는 대신 환경을 다스릴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피곤함이 가셨고 머리가 훨씬 개운해졌다. 


 내 감정을 아는 사람은 나, 그리고 그 감정을 돌봐야 하는 사람도 나. 그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지금보다 어렸고 철이 없던 과거의 나는, 그런 감정을 통제할 힘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울감과 불안을 무슨 파도나 넘지 못할 벽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신만이 나의 감정을 돌볼 수 있다고 믿었다. 지저분한 방에서 피곤함에 절은 채로 침대 위에 누워 내일은 아주 조금이라도 바뀌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어제와 다름없이 나는 나를 돌보지 않았고 당연히 똑같은 하루, 우울감을 느꼈다. 우울함은 곧 비참함이 되었고 신을 비난했다. 정작 아무것도 안 한 것은 나였는데. 그러나 이제는 감정을 돌보는 연습을 시도해보면서 우울감을 기쁨으로 전환하기는 어렵지만, 훨씬 더 나은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시도를 하는 나를 예전보다 좀 더 사랑하게 되었다. 


 잠시의 불안함과 우울감을 해결했다고 또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애석하게도 인간의 감정은 시시각각 바뀌므로 또다시 내 마음은 우울감에 휩쓸릴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나를 버려두면 안 된다. 거대한 파도나 벽처럼 보이게 하는 환상에 속지 말아야지. 나를 돌봐야지. 몸을 움직이면서. 움직이는 걸로 안되면 좋아하는 카페에 가거나, 아니면 작은 것을 성취해내면서라도. 그렇게 나를 돌보다 보면 이제 근본적으로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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