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미 완전한 존재들 7
매일매일 하는 글쓰기를 마치 ‘의식’처럼 행하고 있다. 일과가 아닌, 의식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글쓰기 전과 그 과정에서 나 나름의 의례를 갖추고 지키기 때문이다.
먼저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주변에 시선을 빼앗기고 싶지 않으므로, 옷가지를 잘 걸거나, 글을 쓰는 공간인 이부자리 깃을 잘 편다. 요란하게 청소하지 않는다. 글을 쓸 때마다 거하게 치우는 게 습관이 돼버리면 쓰기도 전에 벌써 지치고, 시작을 아예 부담스러워할 수 있으니까. 거의 저녁에 글을 쓰는데, 배를 채우는 간식보단 간간이 목을 축이거나, 피곤함을 덜 수 있는 마실 것을 함께 준비한다. 차도 좋고, 디카페인 커피도 좋다. 디카페인으로 준비하더라도 혹여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수 있으니, 커피의 향 정도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연하게 타서 준비한다. 다 마시지는 않는다.
예전엔 영감을 일으키고 감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음악을 틀곤 했지만, 요즘은 잘 듣지 않는다. 한 번에 두 가지를 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오히려 능률과 사고력을 떨어뜨린다는 기사글이 자꾸 떠올라서이다.
마침내 글을 쓴다. 쓰기 전에 이 모임을 하면서 결심한 두 가지 맹약을 기억한다. 첫째, 솔직해질 것. 한 문장, 한 문장을 극진히 쓰되, 내 진심을 잘 담아야 한다. 수사보다 중요한 건 진심이다. 진심으로 내 생각과 내 표현을 드러내야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고,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나로 살 수 있다. 대단한 글을 만드는 것보다 나로 사는 연습이 더 긴요하다는 걸 망각해선 안 된다.
둘째, 기다릴 것. 글을 쓸 때 영감보다 지속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머리에 번뜩 솟구치는 좋은 생각이 있으면 당연히 그걸 중심으로 글을 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거기에 다른 문장을 보태 유기적인 글로 바꾸는 과정은 쉽지 않다. 내 마음에 불을 지핀, 굉장하다고 여긴 그 사유가 사실 별거 아니었나, 아니면 그걸 끄집어낼 역량이 부족한가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실망할 때도 있다. 하지만 기다린다. 때로는 키보드에 손을 뗴기도 하고, 침대에 벌러덩 누워 버릴 때도 있다. 막연하지만, '언젠가 글을 완성할 거야', '시간이 필요해'라고 나를 다독이며 쓴다. 그러다 보면 신기하게도 글은 완성된다.
'어느 순간에'라는 미학은 참 놀라운 것 같다. 포기할 정도로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달리 한 것 없이 붙들고 늘어졌을 뿐인데 어느 순간에는 완성되니까. 어느 순간에 완성된 글은 어떤 모습이든 반갑다.
다른 분들보다 한 주 늦게 시작해서 아직 한 달을 채우지 못했지만, 한 달, 두 달 다 채우고, 마침내 목표한 백 일까지 완주하더라도 글쓰기를 지속하고 싶다. 글쓰기를 진행하며 지킨 나만의 의식에서 배운 것이 많기 때문이다. 분주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며 환기하기, 지속을 위해 나를 다스리는 방법,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솔해지는 것. 말의 힘, 나로 사는 힘은 마음속에 있는 작은 진심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되니까.
비단 글쓰기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고, 적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백일이 지났을 때, 그리고 백 일 후에도 글쓰기를 지속했을 때 나는 어떠한 사람으로 변할까. 나의 삶의 부분이 어떻게 달라질까. 그 모습이 아직 뚜렷한 상상이 되지 않는데도 자꾸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진다.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