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미 완전한 존재들 8
100일 글쓰기를 하며 인생은 ‘절대’라는 단어로 규정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하고자 하면 다 된다는 그런 가난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글을 쓰면서 의외의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20살 때부터 글쓰기를 뜨문뜨문하며 좀 더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어주면 어떨까, 상상했다. 작가를 꿈꿨다고 하면 되지, 왜 저렇게 늘여 쓰냐고 하실 수 있다. 내겐 작가는 절실히 탐험하고픈 미지의 섬에 사는 사람이었다. 감히 작가가 꿈이라고 입에 올리기 힘들었다.
그게 점점 당연해질 무렵 제법 긴 방황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 보육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수순대로 어린이집에 입사했다. 꿈이라고 인정도 못 했는데, 꿈이 더 멀어진 기분이었다. 구속복을 벗어버리고 싶어 결국 퇴사했지만.
퇴사 후 시간이 남아돌았다. 그림책 수업도 끝났다. 하루를 분주히 보냈던 게 점점 그리울 무렵 한겨레 교육센터 수업 중 가장 긴 수강 기간이 100일이라 100일 글쓰기를 선택했다. 뭔가 이루고 싶어서라기보단 빈 시간을 메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는데.
앞서 말한 대로 글을 쓰며 내 인생에서 가장 의외로운 시간을 보낸 거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게 시작이었다. 사실 그냥 카페에서 같이 글 쓰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말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며 문장과 내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을 관찰하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걸 배웠다. 무엇보다도 대가 없는 아름다운 응원 덕분에 나도 모르게 남아있던 마음속 생채기도 많이 아물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할 수 없는 이유도 많았던 내가 글쟁이, 그림쟁이를 어떻게 하겠냐고 생각했던 나날도 있었다. 선뜻 시작하는 것도 어려웠고, 시작하고 나서도 어려웠다. 내가 쭈뼛대니,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심지어 돈 되는 거 하라고, 전공자도 힘들다고 겁줬다. 나에게 화나는 마음, 북돋아 주지 않는 사람에 대한 원망을 담아 쓸 때도 있었다. 그런데 글을 마무리할 때는 그 원망이나 화도 희망으로 변모해 있었다. 억지 마무리를 위해 희망으로 한 번 덧칠한 게 아니라, 쓰면서 마음이 그렇게 바뀌었다.
천천히 지나면서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찾아갔다. 한때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나에게조차 거짓말했다. 거짓말은 순응의 형태를 띠었다. 원래 하고 싶은 걸 직업으로 삼으면 힘든 거야.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없는 거야. 정작 진짜 하고 싶은 걸 해낸 건 몇 번 되지도 않으면서. 남한테도 거짓말했다. 적당히 철든 척하며 이야기하곤 했다.
글을 쓸 땐 거짓말 하는 게 힘들었다. 내 생각이 글로 바뀌면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객관적으로 내 글은 거짓일 때가 많았다. 밖에서 거짓말을 그렇게 해대는데 글로도 거짓말하기 싫어서 간솔하게 이야기하자 결심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진실하게 적었다. 그 밑에는 그걸 이루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획했다. 원래 계획 짜는 걸 싫어했는데 그땐 즐거웠다. 계획도 하고 싶은 걸 계획할 때는 행복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던 브런치를 열심히 준비해서 통과했다. 소심한 내가 SNS에 글과 그림을 올렸다. 내 성격을 알고 있던 사람들도 놀랐다. 놀라는 모습을 보는데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3월 27일부턴 그림책 아카데미에 다닌다. 내가 생각해도 용기 있게 진짜 하고 싶은 걸 선택했다.
이렇게 못 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게 뜻밖이다. ‘절대’라는 건 없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지. 게으른 사람은 절대 못 해. 겁 많은 사람은 절대 못 해. 틀린 말이다. 혼자 외롭게 쓸 뻔했는데 바쁜 하루를 보내도 더 나은 삶을 위해 글 쓰겠다고 모이는, 드물어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 게으른 사람이 무언가에 단단히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매달릴 수 있다. 겁 많은 사람도 진짜 좋아하는 게 생기면 가끔 뒤돌아볼지언정 걸음은 그것만을 향해 간다.
100일 동안 그런 뜻밖에 순간을 만나 얻게 된 보물 같은 개안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왔을 땐 행복했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여러분은 100일 글쓰기를 모두 마치셨지만, 늦게 시작한 나는 90일 치의 글을 썼다. 100일을 다 채웠을 때 또다시 선물처럼 찾아올 깨달음이 무엇인지 나는 꼭 알아야겠다. 기꺼이 채울 것이다.
*한겨레 고육센터가 주관하는 100일 글쓰기를 수강했습니다. 글쓰기 메이트들과 함께 가입한 카페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