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완완 Feb 14. 2023

예쁘고 사랑스러운  친구

우리 이미 완전한 존재들 10

우리 이미 완전한 존재들 9우

  ‘오늘스케치북’ 수업 첫날이었다. 먼저 선생님이 미리 준비하신 이름표를 보여 주며 1분 동안 자기소개를 마쳤다. 내 또래보단, 연장자인 분이 많다. 사실 10분 정도 지각해서, 도착 전에 단톡방에서 양해를 구했다. 첫 수업인데. 이런 식으로 첫 단추를 잘못 끼고 싶지 않았는데. 걱정했는데 자기소개할 때 보내는 눈빛에 반가움이 담뿍 담겨 있어 안도했다. 그때부터 첫 만남에 대한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마지막이었던 내 소개를 마친 뒤, 강사님의 자기소개를 들었다. 원래 전공이 건축 쪽이었지만, 지금은 일러스트레이터, 강사로 전향하셨다고 했다. 스스로 나는 재능이 없다, 그림 그리기를 싫어한다, 생각하며 낙심한 적도 있었는데, 그림을 꾸준히 그리다 보니, 설계도보다 눈과 마음에 담기는 것을 그리는 게 더 좋다는 걸 깨달았다고. 2018년부터 매일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무려 1,800일을 넘겼다. 그걸 증명하듯, 그분이 그동안 그려온 스케치북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애정과 능숙함이 묻어나는 게 보였다.


우리가 그릴 주제와 커리큘럼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앞으로 사용할 미술도구에 대해서도. 나눠주신 큼지막한 파우치 속에 모두 들어있었다.


“초심자에게 이것보다 괜찮은 스케치북은 없는 것 같아요. 자, 이 스케치북에 이 피그먼트로 밑그림을 그리면, 위에 물감을 얹었을 때 번지지 않아요. 이 수채화용 색연필에 물을 묻히면 수채화처럼... ”


 여러 화가의 작품을 보며 그림을 구상하는 다양한 방법도 배웠다. 무조건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하는 것 외에도, 글씨와 흩뿌리기, 마스킹 테이프 붙이기 등 다양한 기법으로 도화지를 채울 수 있다.


 그리고 대망의 실습. 내 스케치북의 첫 장을 채운 건, 패턴 그리기였다. 전공자가 아닌, 초보에겐 미술도구가 낯설다. 색감과 질감을 보며 내 손에 자연스럽게 익히려면 여러 패턴을 그려보는 게 필요하다. 선생님이 미리 뽑아오신 핀터레스트 자료를 참조하며 그렸다. 유성펜과 스케칭 펜슬은 괜찮은데 워터브러쉬와 만년필을 활용하는 게 처음이라, 낑낑대고 있었다. 선생님이 다가오시더니, 이게 처음이라 어려워요, 웃으시며 조립을 도와주셨다. 수채화용 색연필을 물감처럼 사용하는 법, 물감 흩뿌리는 방법까지. 선생님이 설명해주신 걸 따라 하며 내 첫 장은 완성되어갔다.


  꽃을 그릴 땐, 처음부터 상상해서 그리는 것보단, 자료를 참고하는 게 부담도 덜 되고 실력도 더 향상된다고 하여 열심히 따라 그리는데. 아... 선생님이 주신 자료 보고 그릴걸. 평소 마우디 루이스(캐나다의 화가)의 그림을 좋아해서 겁도 없이 따라 그렸는데 쉽지 않았다. 뚜렷한 색감이 그녀 작품의 특징인데 내 수채화 색연필은 색감이 너무 옅게 나와서 무리였다. 아쉬움을 가득 안고, 첫 첨삭을 시작했다.


 메이트들의 그림을 보는데 모두 훌륭했다. 내 생각만은 아닌지, 모두 “와, 너무 예쁘다.” 하며 서로의 작품을 넋 놓고 보고 있었다. 우리 마음을 알아차린 강사님이 “원래 남의 그림이 더 좋아 보이는 건 당연하죠. 그런데 전 다 예뻐요”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하루만이 아닌, 100일 동안 내가 안고 가야 할 마음이겠지. 다른 이의 작품도 예쁘고, 내 작품도 예쁘고.


 앞으로 같은 장소, 같은 시간, 비슷한 재료로 매일 20분간 그려야 한다. 선생님의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간혹 그리다 보면, 지금 그리는 걸 뜯을까. 넘겨서 다시 그릴까, 생각할 수 있어요. 원래 잘못된 그림은 없어요. 끝까지 완성하세요.” 지당하다. 잘못된 그림은 없다. 하얀 스케치북에 시작부터 끝까지, 넘기지 말고 끝까지 마주해보자.


 때론 의지만으로 힘들 때가 있으니, 기분 좋은 상상력 하나 보태볼까. 헛헛한 스케치북 안에 그림이 찾아왔다고 상상하자. 내가 어떻게든 만나려고 애쓰니 그 마음을 알아주어 어느 순간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친구. 인연으로 스며든 친구. 100일 동안 온 마음으로 반갑게 맞이하며 예쁘게 봐줘야지. 사랑해줘야지.

이전 09화 꽃놀이하러 온 어린이처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