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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일진 Sep 10. 2024

9화: 내 마음의 빛

시간을 넘은 목소리

서현은 여전히 그날의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며 사라져 가던 그 기묘한 순간, 그녀는 눈앞의 현실과 함께 자신 내면에 깊이 잠재되어 있던 상처와 마주했다. 모든 것이 사라질 것만 같은 공포 속에서, 서현은 자신의 존재를 다시 찾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리고 그녀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게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 결심에도 불구하고 서현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확실히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다.   

  

그날 저녁, 서현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닷없이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가까운 벤치에 몸을 기대며 숨을 고르던 그녀는 다시 한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에서부터 팔까지, 점점 희미해져 가는 모습이 다시금 나타났다. 이전의 그 공포가 서현을 덮치기 전에, 그녀는 갑자기 주변의 모든 소리가 멈추는 듯한 고요 속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디선가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늘 서현의 마음에서만 이야기 나누던 서현의 혼잣말의 대상이었던 목소리.   

  

“서현아, 이제는 그만 괴로워해도 돼.”     


서현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목소리는 분명히 언니, 지연의 것이었다. 돌아서 보니, 그곳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연이 서 있었다. 언니의 미소는 여전히 따뜻했고, 그녀의 눈에는 서현을 향한 깊은 사랑이 담겨 있었다.     


"언니...?" 서현은 놀란 눈으로 지연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여기에...? “    

 

지연은 조용히 걸어와 서현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내가 사라졌다고 네 곁을 완전히 떠난 건 아니야. 너를 지켜보고 있었어. 그동안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다 알고 있었어.”     


서현은 언니의 손을 잡고도 믿기지 않았다. 너무나도 그리웠던 언니가 눈앞에 다시 서 있었고, 그녀의 손길은 여전히 따뜻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서현의 가슴속에는 죄책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언니의 죽음은 자신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서현은 고개를 숙였다.     


“언니... 내가 그때 언니를 구할 수 있었어야 했어. 내가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지연은 서현의 말을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서현아. 나는 너를 위해, 그리고 나 스스로 그렇게 선택한 거야. 네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넌 이미 나에게 소중한 존재였어."    


서현은 언니의 말에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향한 죄책감과 그동안 느꼈던 상실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하지만 지연의 말은 그 모든 감정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녀는 다시 서현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속삭였다.     

“서현아, 네가 느꼈던 그 모든 고통은 네가 혼자 감당할 필요가 없었어. 그리고 너는 이미 충분히 사랑받는 존재야. 내가 떠났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진 건 아니야. 내가 네 곁에 없었어도, 너는 언제나 사랑받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서현은 잠시 말없이 지연의 말을 되새겼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 그리고 누구에게도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그녀를 괴롭혀 왔다. 그러나 지금, 언니의 말을 들으니 마치 안갯속에서 길을 잃었던 마음이 다시금 명료해지는 듯했다.    

 

"내가 정말 그렇게 사랑받을 만한 존재일까?"      


서현은 여전히 믿기 어려운 듯 물었다.

지연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랑받기 위해 어떤 특별한 이유가 필요한 게 아니야. 네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너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소중해.”     


서현은 언니의 말을 천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녀는 항상 스스로를 책망하고,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준호와의 이별도, 언니의 죽음도 그녀를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지금, 언니와의 재회는 그녀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고 있었다.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그녀가 외롭다고 느꼈던 순간에도 그 사랑은 여전히 그녀의 곁에 머물러 있었다.   

  

"언니,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     


서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연은 부드럽게 서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어, 서현아. 이제는 자신을 사랑할 시간이지.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기억해. 그리고 그 사랑을 너 자신에게 돌려줘.”     


서현은 언니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고, 스스로를 무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지연의 존재가 다시금 그 깨달음을 확신하게 만들어주었다.     


“언니, 고마워.”   

   

서현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지연은 부드럽게 서현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항상 그걸 잊지 말아 줘."

 

서현은 눈을 감으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팔은 더 이상 투명하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다시 온전하게 돌아왔고, 그 안에는 따스한 온기가 가득 차 있었다. 서현은 언니가 남긴 사랑의 흔적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다. 지연은 이미 떠났지만, 그녀의 사랑은 여전히 서현과 함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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