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의 먼지 Dec 21. 2023

그때는 밍밍했고 지금은 고소하다.

 스타벅스가 한국에 들어오고 한국의 커피 프랜차이즈도 늘었다. 주로 모임이나 약속은 카페에서 만나기 시작했다. 약속 장소였던 카페에서 올려다 본 메뉴판엔 잘 모르는 메뉴가 있었다. '카페라테'였다. 카라멜 마끼아또나 카페모카는 커피에 뭐가 들어가는지 짐작이 가는 이름이었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라테'가 뭔지 몰랐고 무작정 호기심에 따뜻한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오 마이 갓. 세상에. 세상 밍밍하네. 커피 맛도 안 나고 우유 맛도 안 나. 그리고 왜 쓴 건데...? 나는 커피도 좋아하고 흰 우유도 좋아하는데! 심지어 비려!!!! 이 딱딱한 우유 거품은 뭐야...? 원래 이런건가?'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맛의 커피였다. 당연히 '삼각커피우유'같은 맛일 거라고 상상하고 먹으니 더 밍밍하게 느껴졌다. 그 후로는 카페라테는 무조건 피하는 메뉴가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카페=커피, 라테=우유'라는 뜻이다. 카페라테도 이름에 재료가 아주 정직하게 쓰있는 메뉴였던 것이다. 다만, 내가 그걸 몰랐을 뿐.


 그 당시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나는 바리스타 한길에게 물었다.

"카페라테는 무슨 맛으로 먹어? 밍밍하고 네 맛도 내 맛도 아니던데."

"잘 만든 카페라테는 고소하고 부드럽고 커피 맛도 잘 느껴져. 언제 한 번 들러. 맛있게 해줄게."

 곧장 한길을 찾아가 발을 동동거렸다. 조바심이 났다. 진짜 맛있는 카페라테는 무슨 맛일까? 재료야 어차피 커피+우유인데 차이가 있을까? 하는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내 앞에 놓인 반짝이는 미색의 커피잔을 조심히 들어 올렸다.

 입안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밀크폼. 기분 좋게 따끈한 온도와 고소함. 그리고 적당한 온도로 데워졌을 때 느낄 수 있는 우유의 단 맛까지. 피날레로 머릿속 가득 퍼지는 커피향이 나를 붕 뜨게 했다. 기억 속에 있는 카페라테와는 완전히 다른 커피였다. 카페라테의 맛을 알려준 자! 복이 있을지어다! 포근한 밀크폼에 온몸을 푸욱 담그고 노곤노곤한 느낌마저 들었다. 창밖을 봤다. 함박눈이 온 세상에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고 있었다.


-

 카페라테는 개인의 취향이 많이 들어가는 음료다. 신기하게도.

우유와 에스프레소가 전부인 아주 심플한 음료이지만, 각자의 '라테 맛집'의 기준도 다르고 마시는 방법도 다르다. 아이스 카페라테의 경우 섞어 파와 안 섞어 파가 있다. 또 얼음을 녹여서 먹는 파와 얼음이 녹기전 파가 있다. 시럽 역시 취향이다. 쌉쌀라테 파와 고소라테 파도 있다.


 아침 일찍 한 노부부가 카페를 찾아오셨다. 따뜻한 카페라테를 주문하시곤, "여기가 라테가 맛있다고 해서 와봤어요."라고 하셨다. 어느 호텔에서 마신 카페라테가 너무 맛있어서 그 맛을 찾아 전국 어디든 다니신다고 했다. 아내가 너무 좋아해서 꼭 다시 맛 보여 주고 싶었다고. 어떤 맛이었는지 여쭙자, 돌아오는 대답은 "허브향이 살짝 나는 라테였어요." 나는 잠시 상상했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 노인이 된 한길과 나. 여행 차 들른 호텔에서 짐을 풀고 잠시 쉴 겸 내려온 호텔 로비의 카페. 편안한 볼륨의 음악과 적당한 조명, 그리고 푹신한 소파. 내내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마시는 커피는 어떤 맛일까. 두 분과 잠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꼭 잡은 두 손. 언젠간 꼭 다시 두 분만의 카페라테를 찾으시길 바라본다.  


이전 02화 아무 커피나 안 드시겠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