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 법 - 자기 성찰

심사숙고(深思熟考): 신중(愼重)을 기하여 곰곰이 생각하는 것.


우리는 심사숙고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해 보기 전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우린 “심사숙고해서 잘 결정해 봐”라고 조언해주곤 하지요. 아무래도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에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는 우려 섞인 고마운 조언일 것입니다, 도전보다는 안정에 좀 더 방점을 찍는 메시지인 것 같아요. 물론 아무런 생각 없이 섣부른 판단으로 무턱대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데 급급하다면 성공보다는 실패의 확률이 더 높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너무 많은 고민과 걱정과 너무 완벽한 계획 수립에만 치중한다면 일을 아예 시작도 못할 수 있습니다. 제 주위에만 해도 계획 전문가는 많아도 실행 전문가는 많지 않습니다. 계획은 계획으로 끝나는 경우를 더 많이 본 것 같아요, 그러한 분들의 특징은 나중에 꼭 후회하는 것이지요.


‘아, 그때 할 걸 그랬어.’


할까 말까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안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왜냐하면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애초에 내가 시작하려고 마음먹었던 이유는 거의 못 찾고 반대로 오히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더 많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약 3년 전에 가족들과 함께 뉴질랜드로 가서 살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이민을 가고 싶었던 거죠. 물론 온 가족이 함께 말이에요. 가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와 우리 가족의 행복이었습니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 절실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 가족이 좀 더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빡빡하게 돌아가는 우리나라의 바쁜 삶 속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적막할 정도로 조용하고 여유로운 일상 속에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의 영어 공부에도 더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유학원을 통해 그곳에 있는 동안 제가 다닐 학교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운 좋게 한 사립학교 대학원에 합격해서 정식으로 비자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곳의 깨끗한 공기도 저에겐 너무나 큰 매력이었지요. 기관지가 좋지 않은 저에게는 그곳 공기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2년여의 준비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매 단계마다 심사숙고를 계속했습니다. ‘과연 가는 것이 맞을까?’ 그런데 희한하게도 자문을 하면 할수록 심사숙고를 하면 할수록 가면 안 되는 이유들이 계속해서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가면 어떻게 내 직업을 구하지? 영어는 어느 정도 하지만 결국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는 아니잖아. 일자리는 구할 수 있겠지만 여기 한국에서 하던 일만큼 수준 있는 일을 할 수는 없겠지.’ ‘의료 시설은 또 어떻고. 아프거나 치료를 받아야 할 때는 어떻게 하지. 여기 한국만큼 빠르고 정확한 치료를 해 주는 곳도 또 없다던데.’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또 누가 모시지. 나이가 드셔서 장남인 내가 옆에 있어 드려야 할 것 같은데.’ ‘한국에 두고 온 그리운 사람들은 어떡하고…’ 길거리를 지나가다 동남아 사람들을 마주칠 때면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분들도 멀리 타향에 와서 힘들게 살고 있겠구나. 얼마나 외롭고 힘들까? 나도 결국 뉴질랜드에서는 이방인의 삶을 살게 될 텐데…’


결론적으로 저는 뉴질랜드행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삶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당장이라도 뉴질랜드에 가고 싶었지만 마음을 먹고 준비하는 동안 마음이 바뀐 것이지요. 가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다시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들이 저를 결국 붙들었습니다. 결국 처음에는 뉴질랜드를 가기로 마음먹었지만 몇 차례의 심사숙고 끝에 결정을 번복했던 겁니다.


한 심리 실험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게만 배우자와의 결혼이 행복한 이유를 분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나중에 살펴보니 행복의 근거를 요모조모 살펴보았던 그룹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이혼하는 비율이 대단히 높게 나타났다.


- 『스마트한 심리학 사용법』 폴커 키츠, 마누엘 투쉬 -


위의 연구 조사 결과가 이해 가시나요? 처음에는 행복한 결혼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결혼이 행복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입니다. 그 요청을 받고 행복한 부부들은 곰곰이 생각해 봤죠. ‘왜 우린 행복한 걸까?’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생각을 하면 할수록 행복한 이유보다는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더 떠오르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들 중 많은 부부들이 결국 이혼을 택했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물론 이들이 이혼한 이유가 단지 이런 요청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단정하긴 어렵겠죠. 하지만 어쨌거나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결정을 뒷받침하는 이유보다는 그렇지 않은 이유가 더 많이 떠오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뭔가 시작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는 일단 시작해 보세요. 애초에 당신이 그것을 시작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일을 왜 그렇게 시작하고 싶은 건지 너무 자기 성찰만 하다 보면 아마도 결국은 시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막상 생각해 보니 시작하고 싶었던 이유가 너무 빈약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이런 얘기도 하더군요. 문화 센터에 있는 ‘원데이 클래스’란 하루짜리 코스를 등록하고 ‘아, 내가 여기에 소질이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과정이라고요. 그나마 원데이 코스라는 것이 있어서 내가 무엇에 소질이 없는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하루 만에 확인할 수가 있는 셈입니다. 일단 해 봐야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 수 있고 일단 해 봐야 내가 무엇에 소질이 없는지 정확히 알 수 있지요. 일단 가 봐야 그곳이 어떤지 알 수 있고 일단은 먹어 봐야 내 입맛이 어떤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좋은 건 그냥 좋고 싫은 건 그냥 싫은 것입니다. 왜 좋은지 왜 싫은지 너무 따지다 보면 좋은 이유도 싫은 이유도 결국 희석되고 맙니다.


헨리 제임스(Henry James)는 영어로 쓴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소설의 하나로 꼽히는 『여인의 초상』의 작가입니다, 제 마음에 깊이 와 닿았던 그의 후회에 대한 말로 이 꼭지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피가 뜨거웠던 젊은 시절에 저지른 ‘방종’은 하나도 후회되지 않는데 냉담했던 시절에 끌어안지 못한 일들과 가능성들은 후회가 된다네.


- 『고독의 위로』 - 앤서니 스토 -

keyword
이전 10화행복하지 않을 일에 행복 해하는 법 - 하향식 반사실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