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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Feb 11. 2021

유산 위험, 위기가 찾아오다

[다운 천사 꿈별 맞이]

입덧이 시작됐다.

첫째 때도  냄새를  맡는 입덧이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향긋하고 고소한  냄새가 입덧이 시작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역한 냄새가 되고 말았다. 첫째 때는 남편이 출근한 사이에 빵으로 끼니를 때웠다. 냄새 맡기가 힘드니 저녁까지 먹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퇴근한 남편이 무심코 냉장고 문이라도 열면 안방 침대에 누워있다가도 구역질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혹독했다. 문제는 밥을 챙겨줘야 하는 첫째가 있다는 사실이다. 마스크를 쓰고, 거즈 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겨우겨우 첫째의 아침밥을 차리고 도시락을 쌌다. 둘째 엄마는 입덧하는 와중에도 누워서  수가 없다는  몸으로 알게 되었다. 제일 역한 음식의 냄새도 참으며 첫째 밥을 챙기다 보니,  이상 낳은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존경심이 절로 생겨났다.

6kg 빠졌다. 이제  첫째를 어린이집에 적응시키고  시간을 가져보려고 운동도 예약하고 육아 강의도 신청해 두었는데 어지러워서 운전도  하고 지하철을 탔다가  다니던 길인데 갈아타는 곳을 찾지 못했다. 빵도 향이 거의 없는 바게트나 치아바타 등을 허기를 채울 만큼만 조금씩 먹을  있었다. 다행히 이민 준비를 위해 남편이 육아 휴직을 하고 영어 학원에 다닐 때라 내가 첫째의 아침과 도시락을 챙기면 저녁에는 그가 아이 끼니를 챙겼다. 이사를 앞두고 있었기에 조금씩 정리를 하다가 며칠 앞두고는 밤늦게까지 필요 없는 물건을 비우고  정리를 했다.

이삿날 아침 매트리스까지 흠뻑 적실 만큼 하혈을 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산부인과로 달려갔다. 피만이 아니라 양수까지 새고 있어서 유산 위험이 있으니 당장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삿짐 싸느라 무리를  바람에 아이가 잘못될까  죄책감이 몰려왔다. 자궁 수축 억제제 링거를 달고 입원실에 누웠다. 남편은 이사 때문에 다시 가봐야 했다.  시간 거리에 계신 엄마께 와달라고 청했다. 입원실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점심때가 되자 다른 환자들에게 병원 밥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입덧 중이던 내게 다인실에 누워있는  너무  곤욕이었다. 링거를 갈아주러  간호사에게 1인실이 없냐고 물었더니 조리원 방을 1인실로   있다고 했다. 밥을  먹는 나를 위해 빵을  오신 엄마의 부축을 받아 1인실로 옮겼다.

내가 다니던 산부인과는 외래 진료와 분만, 조리원, 소아과까지  건물에 있는 곳이었다. 1인실은 조리원답게 쾌적하고 따뜻했다. 병원밥을 먹지 않겠다고 전하고 병실 문을 닫고 있으면 입덧을  괴롭게 하는  냄새를 맡지 않을  있었다. 문제는 신생아들의 울음소리였다. 조리원 병실이니  태어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당연지사. 무사히 세상에 태어나 우렁차게 앙앙 우는 아기를 안고 씨름하는 산모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첫째 때도 임신 초기에 피고임이 사라지지 않아서 퇴사를 했지만 그때는   몸만 챙기면 되었기에 내내 누워서 안정을 취할  있었고 금세 건강한 임신부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도 놀랄 정도로 많은 피를 쏟았고 양수까지 계속 새고 있어서 불안했다. 유산을 경험한 친구에게 위로를 전한 적이 여러  있었지만  마음을 진정으로 공감했던  아니구나, 뒤늦게 깨달았다.   아이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과 공포, 슬픔은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격렬한 감정이었다.

산부인과 1인실 침대에 누워 자궁수축 억제제를 맞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내가 둘째라고 너무 조심하지 않아서 그랬나 , 내가 첫째 챙긴다고 너무  쉬어서 그랬나 , 내가 듣고 싶던 강의를 들으러 가서 그랬나 , 내가 이사 앞두고 쪼그려 앉아  가르기를 해서 그랬나 , 내가 비울  정리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랬나 ....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책이 쏟아졌다. 첫째는 잠깐 면회를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되자 엄마랑 같이 가고 싶다고 병원이 떠나가라 울었다. 첫째는 엄마 껌딱지였다. 태어나 대부분의 시간을 아빠도 없이 엄마랑 단둘이 보냈기에 갑작스러운 엄마의 입원으로 떨어져 있게   날벼락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너무 서럽게 울어서 부둥켜안고 같이 울었다. 소리를 듣고 들어온 간호사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하는 짓이냐고, 얼른 누우라고, 남편에게는 어서 아이를 데리고 나가라고 훈계를 했다. 아무리   상태가  좋다지만 우는 아이  달래줄 수도 있는  아닌가, 간호사의 단호함이 야속했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남편이 빵을 사들고 면회를 왔다가 하원 시간에는 집으로 돌아갔다. 만화책을 잔뜩 빌려다 줘서 침대를 비스듬히 세우고 빵을 뜯어 먹다가 만화책을 보다가 다시 누워 있기를 반복했다. 옆방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눈물을 짓다가,  만화책을 보며 웃다가,  실컷 잠을 자기도 했다.

하루는 수제비가 먹고 싶어 근처에 사는 동생에게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비건 지향 채식인이라 동생이 분식집에 맹물에 수제비 반죽과 채소만 넣어서 조리해 달라고 했다는데 막상 포장을 열어 보니 조개가 들어 있었다. 입원 중인 산모가, 병원밥도  먹는 입덧 중에, 이건 비건식이 아니라서  먹겠다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제비 반죽과 채소만 조금씩 건져 먹었다.

유산 위험으로 입원해 있던 며칠 사이에 나는 생명에 우선하는  없다는  배웠다. 다른 생명을 존중하고 싶다는 채식조차  몸이 건강하지 않을 때는 지키기 힘든 가치였다. 첫째를  욕심대로 돌보고 챙겨주고 싶어 하는 마음도, 배움의 욕구도, 운동도, 미니멀 라이프도,  무엇도,   아이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없었다.  아이만  버텨준다면,  살아준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종교도 없는 내가 손을 모으고 제발 아이를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때  속에서 스르륵 뭔가 움직임이 느껴졌다. 배에 손을 대보았다. 다시 스륵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이 느껴졌다. 태동이구나! 직감했다. 첫째 때는 평균보다 조금 늦게 태동을 느꼈던  같은데 입덧으로 살이 많이 빠진 상태여서 그런지 12주라는 빠른 주차였는데도 태동이 느껴졌다. 회진  의사에게 물었더니 둘째 이상 경산모는  정도 주차에도 태동을 느끼곤 한다며 아이가  버텨주고 있나 보다고 안심시켜 주셨다.

걱정과 자책으로 하염없이 우는 엄마를 위로하려고  괜찮다고, 꿈별이가 신호를 보냈다. 꿈별아 너는 살아 있구나. 엄마의 마음을  느끼고 있구나. 고마워. 우리  건강히 만나자. 마침내 눈물을 거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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