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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아이들의 졸업식

미국에서 만난, 평범하지 못해 특별한 아이들의 이야기

by 날마다 소풍



현재, 나는 미국공립초등학교에서 심리적, 정서적 장애로 인해 일반 학급에서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이 모여있는 특수학급의 Full Time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다.





소보다 이른 알림 소리에 눈을 뜨자마자 이불속에서 꾸물거리고 싶은 생각이 밀려오기 전에 벌떡 일어났다. 졸업식 날이다. 열세 명의 남다른 우리 반 아이들 중 5학년 아홉 명이 졸업하는 날이다. 어제 우리 반 담임교사 Ms.R이 졸업 일정과 함께 아침부터 할 일들을 알려주며 일찍 오기를 기대하는 눈치여서 마음이 바빴다. 씻고 평소보다 조금 신경을 써서 마스카라까지 칠했다. 담임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다 보면 학부모들도 많이 만날 테니 보조교사일 뿐이지만 나름 전문직스럽게 보이고 싶었다. 후다닥 온 가족의 간단한 아침식사를 챙기면서 내 몫의 빵 한 조각과 바나나를 우유와 함께 꿀꺽 넘기고 곧 내 뒤를 따라 학교와 일터로 갈 가족들에게 “엄마 다녀온다. 여보 잘 다녀와요.”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업식 날이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일찍 왔는데도 학교 주차장에 차가 가득하다. 겨우 빈자리를 찾아 차를 대고 서둘러 교실로 향했다. 내가 졸업하는 날도 아니지만 미국 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처음 맞는 졸업식이어서인지 슬며시 긴장이 되었다. ‘와우~’ 교실에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Ms. R의 연한 핑크빛 드레스가 눈에 확 띄었다. 머리의 꽃장식도 화사했다. 나와 같이 Full Time 보조교사로 일하는 Ms. T는 검정 가죽 바지에 하얀 재킷을 입어 아주 도시적인 여성같이 보였다. “You look gorgeous!”라고 탄성을 던지고 아이들 맞을 준비를 하면서 ‘좀 더 차려입을 걸…’ 혼자 생각했다. 남다른 아이들과 부산스럽게 지내다 보니 편하고 실용적인 옷이 교복이 되어 살다가 오늘은 나름 좀 차려입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수수했나?


졸업식은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행사인 만큼 간간히 평소 입던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멋지게 차려입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대부분 한껏 차려입고 왔다. 공주님 JA는 반짝이가 붙은 여성복 드레스를, MK는 보랏빛이 도는 귀여운 스커트 정장 입고 굽이 있는 샌들을 신었다. K와 T는 왁스로 평소보다 더 머리를 바짝 세우고 새 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고 왔다. 게다가 나비넥타이까지. 식장 입장을 위해 우리 남다른 아이들 자리를 찾아 줄을 세우며 늘어선 5학년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보니 조금 과장하자면 마치 칸 영화제에 참여한 할리우드 스타들 같았다.


내 아이들의 졸업식에 학부모로 참석했을 때도 느꼈지만 오늘 졸업식에서도 미국인들의 자유로우면서 모두가 참여하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졸업생 전원이 한 명씩 무대에 올라가 담임에게 졸업장을 받고 교장 교감을 비롯한 5학년 담임들 모두와 악수를 한 뒤 계단 중앙에 서서 포즈를 취한다. 자기 아이 이름이 불리어 올라갈 때 포토존 앞에서 미리 기다리던 부모가 사진을 찍은 뒤 아이는 무대를 내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이 노선을 짜느라 이틀 동안 5학년 교사들은 숙고를 거듭했고 아이들과 몇 번을 연습했다. 졸업하는 100여 명의 5학년 아이 모두가 한 번씩 박수와 환호 그리고 주목을 받는 이 졸업식의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졸업식이었다면 우리 남다른 아이들은 한 명도 수백 명의 환호 속에 무대에 올라가서 포즈를 취하는 기회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남들보다 몇 배는 더 긴장한 남다른 아이들이 무사히 한 명씩 올라갔다 내려올 때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졸업생 전원이 무대에 올라가 Tom Petty의 “I won’t back down”을 불렀다. 다른 5학년 아이들은 다 외워서 목청껏 부르는데 교실에서도 연습하고 그제도 어제도 리허설을 했지만 우리 남다른 아이들은 여전히 가사를 제대로 따라 부르지 못했다. 그래도 반복되는”I won’t back down”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 부분을 부를 때, 다른 아이들 속에서 남다른 아이들의 목소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남다른 아이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노래였지만 나는 노래 가사가 참 좋았다. 특히 우리 남다른 아이들에게는 더 의미 있는 가사처럼 느껴졌다. 여유 있게 오늘의 주인공 역할을 즐기는 다른 5학년 아이들과 달리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도 불편한 무대 위의 남다른 아이들의 어색한 표정, 웅얼거리는 입 모양이 안타까워서 나는 무대 아래에서 함께 노래했다. 소리는 낼 수 없었지만 힘껏.

미국의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달리 과목마다 교실도 이동해야 하고 수업 시간마다 다른 친구들과 수업을 해야 한다. 유난히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많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데도 오래 걸리는 우리 남다른 아이들에게는 정말 도전이 것이다. 졸업식을 마치고 풍선과 꽃을 들고 신나게 학교를 나서는 남다른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아직은 아이들이 실감하지 못한 어려움을 극복하기를 마음을 다해 응원했다. “오늘 너희가 부른 노래 가사처럼 You won’t back down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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