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급 외모의 고독한 소년 T의 이야기
긴 목도리를 바람에 날리며 롱다리로 성큼성큼 자신의 별을 거니는 T의 모습은 어린 왕자 동화 속 어린 왕자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이 세상의 사람들과의 부대낌과 쓸모없는 지식쯤은 필요치 않은.
처음 T를 보았을 때, 영화배우 같다고 생각했다. 키도 훤칠하니 나보다 한 뼘은 크고 얼굴도 조각처럼 생긴 5학년 아이가 아직도 영어 단어 한 개를 외우지 못해 분노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T는 긴 목도리를 목에 감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유난히 다른 아이들과 같이 노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면 미끄럼틀 주변의 보도블록을 따라 혼자 목도리를 바람에 날리며 걸어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신나게 뛰어나가서 그 보도블록 위을 오가다가 쉬는 시간이 끝나면 교실로 돌아오는 것이 T가 하는 유일한 놀이였다.
처음에 나는 혼자 블록 위를 오가는 T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고 같이 놀아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T에게 맞는 놀이를 찾아줘 보려고 가위바위보를 하자고도 해보고 뒤를 따라 걸어가서 Tag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T의 반응은 눈썹을 위로 치켜들고 "Stop!"이라고 하고 가던 길을 다시 걷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미끄럼틀 주변의 보도블록이 그만의 별이요 그만의 즐거운 장소라는 것을. 그래서 그의 세계를 존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만의 별은 존중하더라도 가장 쉬운 수준의 단어도 다섯 개 이상을 못 외우고 문장 한 개를 스스로 완성할 수 없는 그의 학습 수준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보고 쓰는 것은 정말 잘하는데 혼자 기억해서 써야 하는 것에는 도무지 발전이 없었다.
어쩌면 요즘 같이 스마트폰이 점점 발전되는 세상에 읽고 쓰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말하고 듣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는 T니까. 그러나 사람을 자신의 별에 들이지 않으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긴 그것도 요즘에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있어도 각자 자기 폰을 보며 따로 있는 듯 한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세상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T가 누군가를 자신의 별에 들이고 함께 걷는 모습을 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다른 별에도 발을 내디뎌 보는 T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장미도 사귀도 여우랑 이야기도 나누고 양이랑 같이 뛰어다니며 놀기도 하는 T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