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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관계의 시작

남다른 아이들과의 만남이 준 선물

by 날마다 소풍

남다른 아이들, 그리고 남들과 다르지 않은 보통 사람인 동료 교사들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내 삶에 일어난 사람들과의 관계의 변화를 깨닫게 된다.




넓고 큰 미국 땅, 수많은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이 곳에서 6년을 살았지만 나는 매우 좁고 빈약한 인간관계 속에 갇혀 살았다. 내가 사는 지역은 한국인을 비롯 아시아권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 아시아권 사람들의 삶의 범위가 유사하다 보니 어떤 날은 미국이지만 미국인보다 아시아계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난다. 특히 한국 마켓에 가면, 이 가게가 미국에 있는 건지 한국이나 중국에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그런 환경이니 미국에 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타국 생활의 불편함을 그다지 체험하지 못하고 산다. 편하다. 그리고 쉽다. 그런데 그 편함과 쉬움이 사람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처음 이곳에 오면 옆집 미국 할머니나 같은 반 미국인 엄마에게 인사도 건네본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한국 사람을 알게 될수록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 사람들과의 쉽고 편한 인간관계가 만들어진다. 커피숍에서 만나 수다를 떠는 사람도 내 아이 한국 친구의 엄마, 주말에 같이 수영을 가는 것도 동네에 사는 한국 가족, 쇼핑을 같이 가는 사람도 영어 수업에서 만난 한국 친구인 경우가 많다. 미국에 살지만 편하게 커피 한 잔 같이 할 미국인 친구 한 명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물론 적극적인 인간관계의 개척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넓혀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도 주로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안 계통 외국인들과 가깝게 지낸다. 가끔 미국인들과 좋은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가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사는 이 곳에서 경험한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 살지만 주로 한국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으며 산다.


물론 타국에서 같은 나라 사람들과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것은 정서와 언어의 교감, 깊은 공감대의 형성 면에서 매우 긍정적이고 또한 타향에서 살면서 경험하는 심리적 공허함과 정서적 불안정함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다만 그런 편안하고 안정된 관계에 안주하다 보니 그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알게 되는 사람들로 관계가 국한된다는 것이다. 미국까지 와서 살면서 타국 생활에서만 경험할 수 있고, 다양한 나라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하고 새로운 경험을 누리지 못하는, 나를 포함한 이곳의 많은 한국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종종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나는 완전 의욕으로 무장되어 어떻게 해서든 미국 사람들과 좀 친해져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외국에서 온 사람들을 위한 무료 영어 수업을 열심히 쫓아다니며 영어를 업그레이드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런데… 수업을 열심히 다닐수록 한국 친구들이 많아졌다. 선생님은 미국인이지만 학생들은 아시안들이다. 그리고 열심히 수업을 다니는 것은 부지런하고 열심이 삶의 모토이자 국민적 성향인 한국인들이다 보니 마지막까지 수업에 함께하는 사람도, 열공하기 위해 만든 스터디그룹도, 수업 후 같이 점심을 먹는 사람도, 아이들을 같이 놀리고 북클럽을 같이 시키는 사람도 한국 엄마들이었다. 그리고 미국이지만 한국어로 살아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그 편함이, 쉬움이 좋아서 그 속에서 사는 동안 나의 인간관계는 빈약해지고 만남의 영역이 좁아졌다.

그러나 나는 점차 그 빈약하고 좁은 인간관계가 주는 관계의 다양한 모순과 아이러니를 경험하게 되었다. 제한적인 관계와 남아도는 시간에서 오가는 한국 엄마들의 아이들 걱정, 학교에 대한 불평 그리고 자의반 타의반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에 대한 험담과 뒷담화로 이어지는 수다. 그 소모적이고 허공에 버려지는 듯한 모임의 쳇바퀴를 돌던 어느 날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멀미가 나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나는 이 관계의 협소한 벽을 소리 없이 깨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꾸 그 관계 속에 소속되어야 안전할 거 같은 강박관념에 그 관계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붙들지 않는데 그 관계가 없으면 소외되고 고립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모든 것을 넘어서서 협소하고 편협해져서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것에서 오는 초조함, 의미 없이 소비되는 시간들에 서글픔의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은 바로 "일"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거의 매을 영어 수업을 다니고 있었고, 수업에 부지런히 다닌다는 것에 나름 보람도 느꼈다. 하지만 매일 배우는데 그것을 써먹지도 못하고 까먹기만 하는 나 자신을 보며 더 이상 무턱대고 수업에 가는 배움은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영어가 완벽하지 않지만 매일 수업을 찾아가며 배운 영어를 어디엔가 쓸 수 있는 곳이 절실히 필요했다. 매일 어딘가를 출근해서 내가 더 이상 소모적인 인간이 아닌 생산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다시 내가 하는 일에 가치를 매겨주고 내 노동과 성과에 보상을 받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가서 알아보고 물어보고, 이것 저것 시도하여 찾아낸 것이 여전히 영어가 어려운, 사춘기 두 아이를 둔 학부모인 나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해준 특수학급 보조교사 자리였다. 이 일은 “나도 미국이란 나라에서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나 보다.”하는 자신감과 만족감을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조교사 자리는 한국어가 아닌 온전한 영어로 사람들과 어울리고 매일 그들과 만나며 내 좁고 빈약한 인간관계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제한된 사람들과 무한한 만남에서 반복되던 아이들 걱정에서 시작되어 다른 사람의 이야기, 그 사람이 아는 사람 이야기로 귀결되던 수다에 참여할 수 없는, 출근하는 사람이 된 이후, 내가 매일 나누는 이야기의 소재가 달라졌다. 우리 담임교사와 5명의 보조교사들의 관심과 대화의 소재는 늘 '남다른 아이들'이었다. 같은 이야기로 두 번 수다 떨 기회를 가질 수 없게끔 남다른 아이들은 매일 다른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주었고, 우리는 함께 문제를 찾아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느라 분주했다. 아이들의 발랄함에 함께 미소 지었고, 아이들의 엉뚱함에 함께 웃었다. 아이들의 괘씸함에 함께 분노할 수 있었고, 아이들의 얄미움에 서로를 위로해주었다. 나는 더 나은 것을 찾아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나누는 그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수다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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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아이들'과의 만남은 내가 그 특별한 열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게 해 주어서 감사하기도 했지만, 넓고 큰 미국에서 좁고 비약한 인간관계 속에 살던 나에게 새로운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폭을 넓히는 기회가 되어 주어 감사하다.


물론, 나는 내 좁고 빈약한 관계의 일원이 되어주었던 그들이 여전히 소중하고, 미국 땅에서 한국 엄마로 살면서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인 그들과 인연의 끈을 이어가며 살고 있다. 하지만 서로가 기쁜 소식,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거기까지일 수밖에 없는 매일 출근이란 걸 하게 된 내 삶이 다행스럽다. 그리고 매일 아침 여전히 어색한 “R”발음에 신경을 쓰며 “Good morning.” 과 함께 남다른 아이들과의 하루에 함께 뛰어들 동료들이 있는 삶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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