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
동생은 가장 지독한 사춘기 한복판을 지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고 목소리가 굵어졌지만, 집 안에서 동생의 존재감은 기묘하리만치 희미했다. 동생은 마치 투명 인간처럼 소리 없이 방을 오갔고, 우리는 그런 동생을 모르는 척 내버려 두었다. 사실 우리 중 누구도
"오늘 기분이 어떠니?"라거나 "힘든 일은 없니?" 같은 평범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아니, 던질 수 없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 사소한 안부 인사가 우리에겐 가장 위험한 불씨였다. 그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억눌러왔던 아빠에 대한 미움, 뼈를 깎는 듯한 그리움, 그리고 버려졌다는 수치심이 댐이 터지듯 쏟아져 나올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정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이 가난과 고립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오직 '오늘 벌어야 할 돈'과 '내야 할 학비'라는 차가운 현실 뒤로 숨어 서로의 눈을 피했다. 동생은 그 폭발할 것 같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학교 운동장에서 보냈다.
해가 지고 서늘한 보랏빛 어둠이 깔릴 때까지, 동생은 텅 빈 코트에서 홀로 농구공을 튀겼다. '텅, 텅' 하며 아스팔트를 때리는 규칙적인 소리는 고요한 공기를 가르며 위태롭게 울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골대를 향해 거칠게 내던지는 동생의 공 소리에는 차마 뱉지 못한 비명들이 섞여 있었다. 손가락 끝이 갈라지고 농구화 밑창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공을 던지며, 동생은 아빠에 대한 원망과 설명하기 힘든 울분을 쏟아내고 있었다. 골대에 부딪혀 튕겨 나가는 공은 마치 닿을 수 없는 아빠에 대한 대답 같았고, 골대를 통과하는 공은 아주 잠깐의 해방감이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동생의 등은 늘 땀에 젖어 축 처져 있었다. 저녁 식탁에서 마주 앉아도 우리는 동생의 까칠해진 손마디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가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서로를 다독여줄 마음의 여유조차 우리에겐 사치였다.
"다녀왔습니다." "씻고 밥 먹어라." 그게 전부였다. 우리는 서로의 슬픔을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위태로운 모래성 같았다. 동생은 농구공에 비명을 담아 던졌고, 나는 빵집의 밀가루 먼지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으며, 엄마는 거실의 적막 속에서 자신을 깎아내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고통이 더 아프다는 것을, 우리는 그해 여름 농구 코트의 거친 숨소리를 통해 배워가고 있었다. 돈 생각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던 그 시절, 동생의 농구공은 우리 가족이 차마 내뱉지 못한 가장 슬픈 언어였다. 시간은 멈춘 것 같으면서도 무심하게 흘러갔다. 빵집의 밀가루 먼지 속에서 보낸 나의 열아홉과 스물은 그렇게 동생의 고등학교 졸업장으로 치환되었다.
나는 내 꿈보다 동생의 미래가 더 급했다. 장녀로서, 그리고 이름 없는 가장으로서 내가 가진 유일한 목표는 동생을 무사히 대학교에 보내는 것이었다.